[[분류:연천군의 역사]]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연천군)] ||<-11> 연천군의 유래 || || 마련현[br](麻漣縣) |||| → |||| 연천현[br](漣川縣) |||| → |||| '''연천군[br](漣川郡)''' || [목차] ==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남진정책이 진행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 때는 공목달현(功木達縣)으로 불렸으며, '공목달'은 '[[곰]][[산]]'의 [[고구려어]]를 음차 표기한 것으로 '웅섬산(熊閃山)'이라 훈차 표기하기도 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이 지역을 요새로 삼았는데, 현무암 절벽이 있고 좌우로 긴 지형이라 요새가 들어설 좋은 조건이 되었다. 당포성, 은대리 성, 특히 [[호로고루|호로고루 성]]이 그 중심이었는데 남한에서 잘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이 다량으로 발굴되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다.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1071300083_1.jpg]] 특히 호로고루는 강안평지성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성곽이 일부 복원되기도 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진흥왕]]이 한강 유역으로 영토 확장을 하면서 [[신라]]가 주인이 되었으며 [[나당전쟁]] 시기에는 청산면 대전리에서 최대 격전이던 [[매소성 전투]]가 있었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90914452335455|#]] [[통일신라]] 전까지는 시세에 따라 바람 잘 날 없던 곳. 신라 [[경덕왕]] 때 공성현(功城縣)으로 개칭되었다. 공(功)은 '곰'을 음차한 것으로 '웅진'이 '공주'가 된 경위와 같다. == [[고려]] == 고려 초 장주(獐州)로 개칭되었다가, 1310년 [[충선왕]] 때 연주(漣州)로 개칭되었다. 충선왕의 [[휘]](이름)가 '장(璋)'이라, 음이 같은 한자 지명들을 [[피휘]]하려 했기 때문.[* [[경상북도]] [[경산시]]도 원래 '장산(章山)'이었다가, 이때 같이 이름이 바뀌었다.] == [[조선]] == [[태종(조선)|태종]] 때 전국의 '주(州)'자 지명을 대거 '산(山)', '천(川)' 등으로 바꾸면서 연천(漣川)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이후 마전현과 병합되어 마련현(麻漣縣)이 되었다가 곧 재분할되어 다시 연천현이 되었다. 1895년에 연천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당시 연천군의 영역은 현재의 연천읍, 군남면, 중면에 해당된다. 한편, 이때 재분할 되었던 마전현은 지금의 연천군 [[미산면(연천)|미산면]] 마전리를 중심으로 미산면과 왕징면, 백학면에 해당된다. 1909년 철원군 관인면을 편입하였다. 부산진 전투에서 싸우던 [[정발(조선)|정발]] 장군이 여기 출신이며, 그의 무덤 또한 여기에 있다. == [[일제강점기]] == 1914년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전군]]과 [[적성군]]의 전역, [[삭녕군]] 일부[* 삭녕군을 폐지해버린 뒤 둘로 쪼개서 하나는 연천군, 다른 하나는 [[철원군]]에 각각 붙여버렸다.], 양주군 영근면을 연천군에 병합하였다. 1941년 영근면을 전곡면으로 개칭하였다. == [[소련군정]] / [[미군정]], [[북한]], [[대한민국]] == [include(틀:강원도(북한)의 시군)] 해방 직후 [[삼팔선|38선]]이 설정되면서 적성면, 남면, 전곡면 및 백학면의 일부를 제외한 연천군의 전역이 소군정([[북한]]) 치하로 넘어갔다. 이에 미군정([[남한]]) 치하로 남은 위의 지역들은 [[파주시|파주군]]에 편입되었다. 이 중에서 적성면은 현재까지 파주시 관할로 남아 있으며, [[남면(양주)|남면]]은 1946년 [[양주시|양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38선 이북의 연천군은 1946년 9월 [[소군정]]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원도(북한)]] 관할의 군이 되었으며, 동년 12월 폐지된 [[영평군]]에서 청산면과 창수면을 편입하였다. 그리고 [[북한]] 정권 수립 이후에도 이어져 [[6.25 전쟁]] 이전까지 '''강원도 련천군'''이었다.[* 북한의 [[두음법칙]] 무시로 인하여 연천이 련천으로 불렸다. 6.25 이후 명목상 행정구역은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련천군으로 부른다.] 그러다 전쟁 중 전선이 현재의 [[군사분계선]] 형태로 고착화되며 연천군 대부분이 남한으로 넘어가 남한의 [[수복지구]]가 되었고, 북한의 연천군은 [[군면리 대폐합]]으로 폐지되고 북한에 남은 지역은 [[장풍군]]과 [[철원군(북한)]]에 편입되어 사라진다. 이후 1954년 수복지구의 행정이 대한민국 정부로 정식으로 넘어오고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연천군은 [[대한민국]] [[경기도]] 소속의 군이 된다. 그리고 전곡면과 백학면은 [[6.25 전쟁]] 휴전 이후 연천군으로 환원되었다. 1963년 [[철원군]] [[신서면]]과 [[장단군]] [[장남면]]을 편입하여 장남면은 [[백학면]]에 흡수하였다. 또한 [[적성면(파주)|적성면]] 눌목리와 간파리를 전곡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연천면이 [[연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포천군에 관인면을 넘겨주고[* 연천군 시절에는 '''[[월경지|실질 월경지]]'''였다(...). 전곡이나 연천읍내로 가려면 포천 창수면과 청산면을 거쳐야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아예 포천으로 넘긴 듯하다.], 대신 [[청산면(연천)|청산면]]의 대부분을 편입하였다.[* 현 [[포천시]] 신북면 삼정리, 갈월리, 금동리, 덕둔리도 청산면 관할이었으나, 이 때 신북면으로 편입해 포천군에 남았다.] 1985년 전곡면이 [[전곡읍]]으로 승격하였다. 1987년 [[미산면(연천)|미산면]] 석장리를 백학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옛 장단군 소속이었던 원당출장소를 장남면으로 승격하였다. 옛 [[삭녕군]]은 1914년에 반토막이 나서 서반부[* 군내면·서면·남면·동면. 이 중 군내면과 동면을 합쳐서 삭녕면이 되었고, 서면과 남면을 합쳐서 서남면이 되었다.]는 [[연천군]]으로, 동반부[* 내문면·마장면·인목면.]가 [[철원군]]으로 넘어갔고, 그나마 전 지역이 휴전선 이북에 있거나 [[비무장지대]] 이하 [[GOP]]와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거주하는 민간인은 단 1명도 없는 다소 슬픈 곳이다. [[남북통일]] 이후에도 DMZ 내의 미확인 [[지뢰]] 지대로 인한 [[그린벨트]]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여기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있다. [[삭녕 최씨]]로 북한 땅인 마장면 대전리가 발상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