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파일:10687_1588_0622.gif]] [[2009년]] [[5월]] 한 가족의 가장이 '''처조카, 의붓딸,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친딸 등을 성폭행하고 감금한''' 엽기적인 사건. 이향열은 이 사건 이전에도 성범죄로 인해 17년도 넘게 복역한 인물이었지만 아무런 교화가 되지 않았다. [[사형수]] 이향열은 오로지 자신의 변태적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연쇄적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성폭행한 후 가차 없이 살해해 버렸다. == 사건 이전 배경 == 이향열은 [[1966년]] [[11월 15일]]생으로 [[재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이복, 이부 형제들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도 빈곤하였던 탓에 [[초졸|초등학교만을 졸업한 후]] 만 15세 들어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한 가방공장 등에 취직하였다. 여자를 병적으로 좋아했던 탓에 틈만 나면 [[나이트클럽]]으로 달려가기 일쑤였고 동거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친구와 장난 삼아 여자 꼬시기 내기를 하면서 약 1년 동안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약 50명의 여성과 [[원나잇 스탠드]]를 가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향열이 만 18세였던 [[1984년]] [[12월]] 경 동거녀 김 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김 씨가 임신 8개월이었던 [[1987년]] [[1월 27일]] 어두운 논두렁을 걷고 있던 이향열은 같은 동네에 살던 16세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이향열은 그녀를 과도로 위협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가 강간했다. 그에 대한 처벌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친정으로 거처를 옮기겼고 두 달 뒤 딸을 낳았다. 김 씨는 몇 달 동안 이향열의 옥바라지를 했지만 그녀의 친정 어머니와 오빠는 다른 사람과의 재혼을 권유했다. 재혼 상대의 남자(윤 씨)는 김 씨에게 이향열의 딸을 호적에 올려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고 김 씨는 그렇게 새 출발을 했다. === 출소 후 재범 === 출소 후 이향열은 본격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1991년]] [[6월 1일]] 이향열은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를 푸대접했다는 이유로 그의 딸인 15세 여중생을 석궁으로 위협하여 감금해 3번이나 [[성폭행]]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에게 200만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그 대가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장기간 복역하게 되었다. === 김 씨와 재결합 === [[2005년]] [[10월 28일]]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이향열은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한 조선업체에 취직했다. 한편 [[2007년]] 친딸의 소식을 듣기 위해 장모의 집에 방문했다가 뜻밖의 사실을 접했는데 김 씨와 윤 씨의 사이가 멀어져 별거 중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수감 생활 동안 김 씨 가족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긴 했지만 다시 교제를 시작했고 결국 재결합해 사실상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 김 씨와 이향열의 사이에서 태어났던 친딸과 김 씨가 별거하던 남편 사이에서 낳은 의붓딸도 재결합에 동의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평화로운 삶을 누리기도 했으나 [[2009년]] [[2월]] 경 회사에서 잘리면서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자책하기 시작했다. == 첫 번째 살인 == [[2009년]] [[5월 5일]] 오전 12시 경 장모의 집에서 둘째 처조카인 김 양(여, 16세)을 집에 데려온 이향열은 방문 틈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고 성적 충동을 느껴 김 양의 얼굴과 가슴 부위를 수 회 때려 반항을 억압한 후 안방으로 끌고 가 강간하였다. 강간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과 발을 묶어 여행용 가방에 넣은 다음 [[코란도]] 승용차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암매장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장모의 집에서 불과 1km 떨어진 인근 야산으로 향했다. 산에 도착하여 가방을 열었을 땐 이미 김 양은 사망했다. 입과 코를 막아놓고 가방에 웅크린 채 장시간 갇혀 있다보니 질식사한 것이다. 가방은 구덩이에 넣고 파묻어 버렸다. 범행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위해 철처히 행동했는데 장모의 집에서 김 양의 가방과 운동화를 가지고 나와 삼호터미널 부근 도로변의 쓰레기더미에 투기하였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 양을 여행용 가방에 넣고 다닐 때 휴게소에 들러 음료수를 사마셨고 [[해남]] 방조제로 차를 몰고 가 낚시까지 했다. 그때까지 김 양은 가방에 계속 있었다. 뻔뻔하게도 이향열은 누구보다 처조카 찾기에 앞장섰다. 5일 후 인근 파출소에 찾아가 맨 처음 [[실종]] 신고를 한 것도 이모부인 자신이었다. 또 새 휴대폰을 개통한 뒤 자신이 김 양인 것처럼 속여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문자를 가족들에게 보내 가출로 위장까지 했다. == 두 번째 살인 == [ 본 내용은 온전히 이향열의 주장에 따른 기술임을 참고할 것 ] [[2009년]] [[5월 12일]] 5시 경 이향열은 집 거실에서 의붓딸(19세)이 누워 있는 걸 보고 "왜 청소와 설거지를 해놓지 않았냐"며 꾸중을 늘어놓았다. 이때 의붓딸 윤모 양이 “그걸 꼭 내가 해야 되느냐”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목덜이를 잡아 얼굴과 가슴을 주먹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아빠 이러지 마"라며 소리를 지르는 의붓딸을 침대에 눕혀 입과 손발을 노란색 테이프로 결박한 후 강간하였고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이로서 강간살해의 고의기수범이 되었다. == 세 번째 살인 == [[5월 12일|같은 날]] 8시 경 이향열은 처 김 씨(41세)가 일하던 휴게소 식당을 찾아가 [[강진군]] 부근 버스 터미널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인적이 뜸한 초등학교 골목길에서 [[카섹스]]를 감행했다. 이향열은 돌변해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면서 김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것만으로도 성에 안 찼는지 차 안에 있던 케이블을 김 씨의 목에 감아 두 번이나 죽였다. 사체는 [[코란도]] 승용차의 트렁크에 옮겼다. == 네 번째 범행 == 위와 같은 살인극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향열은 아예 동거녀 친정 식구들도 몰살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게 되었다. 처제의 집으로 찾아가 용돈을 주겠다, 이모가 널 보고 싶어한다는 내용으로 피해자를 유인하였고 이후 첫째 처조카 김 양(여, 18세)을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5월 13일]] 새벽 1시 경 이향열은 안방에서 잠이 든 김 양을 회칼로 위협하여 노란색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발을 묶고 가위로 피해자의 속옷을 모두 잘라낸 뒤 간음하였다. 이후 피해자를 옷장에 집어넣어 11시간 동안 감금하였다. == 다섯 번째 범행 == [[5월 13일|같은 날]] 새벽 3시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친딸(21세)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협하여 노란색 테이프와 스타킹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었다. 오전 9시 쯤 되자 "내가 다 죽였다. 너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 네 동생은 살 가치도 없다"는 등 범행 사실을 한참 떠들던 이향열은 마음이 바뀌었는지 너는 죽이지 않겠다며 결박을 풀어줬다. 하지만 이후 그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다. '''“마지막 소원이니 한 번만 샤워를 같이 하자”'''고 했다. 완벽한 [[성도착증]] 환자였다. 친딸에게 속옷을 여러 번 갈아입도록 지시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결국 친딸도 [[성폭행]]했다. == 이후 == [[5월 14일]] 오전 12시 잠시 담배를 사러 집 밖으로 나간 사이 친딸이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이향열은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이향열은 “피해자를 다시 만나더라도 다시 한 번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항소심에서도 “할 말이 없으며, 원심에서 선고한 [[사형]]을 그대로 선고하여 달라”고 하는가 하면 살인의 원인도 피해자들에게만 전가했다. 둘째 처조카 김 양(16세)를 살해한 이유에 대한 진술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건 이전부터 "김 양이 자신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하여 행복한 가족관계가 파괴된 것에 대하여 악감정을 갖게 되었고 이 사건 당시에도 자신을 유혹했음으로 음탕한 피해자를 벌한다는 마음으로 살해까지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고 있었다. 또 친딸은 [[성폭행]]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죽이거나 성폭행하였음에도 친딸만 내버려둘 경우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 염려되어 어쩔 수 없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다. 결국 이향열은 [[2010년]] [[3월 25일]]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형집행대기자 신분이다. == 미디어에서 ==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24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에피소드에서 재연하였으나 동거녀 살해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 [[분류:2009년 범죄]][[분류:영암군의 사건사고]][[분류:연쇄살인]][[분류:제6공화국/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