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Petites Sœurs de Jésus [[영어]]: Little Sisters of Jesus [목차] 1939년 마들렌 위텡(Magdeleine Hutin) [[수녀]]가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신부(성직자)|신부]]의 정신과 생활을 본받아 [[사하라]]의 투구르트(Touggourt)에서 창설한 [[가톨릭]] [[수도회]]. 1964년 3월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 개요 ==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1939년 마들렌 작은 자매가 샤를 드 푸코 신부의 정신을 본받아 사하라의 루그르트에서 창립하면서 시작됐다. 188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마들렌 작은 자매는, [[튀니지]]에서 [[군의관]]으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프리카]]와 [[아랍]]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마들렌 작은 자매는 특히 [[사막]]의 [[유목민]]들을 동경하여 자주 [[천막]]을 쳐놓고 그곳에서 놀곤 했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건강이 많이 악화된 마들렌 작은 자매는 "불구자가 되지 않으려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으로 가서 살라"는 처방을 받고 사하라의 [[알제리]], 이슬람 땅을 다니며 무료진료와 급식, 이웃 방문 등에 투신했다. 마들렌 작은 자매는 1938년 '사하라 사막의 성인'으로 불리던 샤를 드 푸코의 무덤을 순례하다가 사하라 교구장 누에 [[주교]]를 만나, 수녀로서 사하라 사막에 올 것을 제안받는다. 사하라의 유목민 가운데서 시작된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1946년 전 세계에 진출해 1964년에는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승인을 받았다. 현재 1천 5백여명의 예수의 작은 자매들이 세계 65개국에 퍼져 있으며, 이들은 그 나라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 국내 == 1955년 6월 [[한국]]에 진출하였다.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웃들과 같은 방법으로 사십시오"라고 한 마들렌 작은 자매의 말을 따라 서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그들과 같은 집에서 살며 공장이나 식당, 파출부 일을 하며 산다. 1955년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최덕홍 주교의 초청으로 2명의 수녀가 내한하여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때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진출의 첫발을 디딘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왜관삼청동 나환자 정착인들과 함께 형제적 사랑을 나누면서 한국에 첫 우애의 집을 설립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 [[전농동]] 한국지부를 비롯 [[혜화동]]ㆍ[[상암동(서울)|상암동]], [[대구광역시]] [[평리동(대구)|평리동]],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목포)|산정동]], [[경기도]] [[고양시]] 일산 등 7군데에 우애의 집이 지어졌고, 28명의 자매들이 지역주민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곳 우애의 집 작은 자매들은 봉제공장ㆍ[[미역]]공장 직공이나 병원안내 혹은 [[농사]]짓는 일, [[마늘]]까는 일, [[오징어]]ㆍ[[쥐포]] 말리는 일 등,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가리지 않고 그들과 똑같이 일한다. 특히 서울 상암동 일명 [[난지도]]에 자리잡은 우애의 집은 [[목동(서울)|목동]] 철거지역과 [[사당동]] 철거지역을 거쳐 지난 1982년에야 비로소 안정된(?)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하루종일 땀흘리며 쓰레기더미에서 골라낸 쓸만한 물건들을 팔아 살아가고 있는 이곳 난지도 우애의 집의 경우, 우애의 집들 중 가장 부잣집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것은 집안을 채우고 있는 책상과 전등, 커피잔 등이 쓰레기 속에서 힘들게 찾아낸 보물들로 모두 장식돼 있기 때문.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특별한 성소모임이 없다. 단 입회를 결정하기 전 2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자유로운 왕래을 통해 사귐의 시간을 가지면서 성소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자격은 고졸 이상의 건강한 여성. [[분류:가톨릭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