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남송7왕)]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e8b57 0%, #2e8b57 0%, #2e8b57 80%, #2e8b57)" '''{{{#ece5b6 {{{+1 남송의 명장[br]정충보국(精忠報國)[br]신무순왕(信武順王)[br]{{{+1 吳璘 | 오린}}}}}}}}}'''}}} || || '''{{{#ece5b6 시호}}}''' ||무순(武順)^^추대^^ || || '''{{{#ece5b6 왕호}}}''' ||신안군왕(新安郡王) → 신왕(信王)^^추봉^^ || || '''{{{#ece5b6 성}}}''' ||오(吳)|| || '''{{{#ece5b6 이름}}}''' ||린(璘) || || '''[[자|{{{#ece5b6 자}}}]]''' ||당경(唐卿) || || '''{{{#ece5b6 생몰연대}}}''' ||1102년 ~ 1167년(향년 65세) || || '''{{{#ece5b6 출신}}}''' ||덕순군(德順軍) 농간현(隴干縣)[* 오늘날 간쑤성 핑량시이다.] || || '''{{{#ece5b6 부친}}}''' ||오의(吳扆) || || '''{{{#ece5b6 아들}}}''' ||오정(吳挺) || || '''{{{#ece5b6 손자}}}''' ||[[오희(남송)|오희]](吳曦) || || '''{{{#ece5b6 형제}}}''' ||오개(吳玠) || [목차] [clearfix] == 개요 == 오린은 1102년 [[북송]]이였던 덕순군(德順軍) 농간현(隴干縣)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20대때 [[금나라]]의 공세를 막아내고 금군을 대파시킨 중국 [[북송]](北宋) ~ [[남송]](南宋)의 명장이다. 자는 당경(唐卿)이다. 왕호는 신왕(信王)이다. [[정강의 변]] 때 [[악비]], [[한세충]], 오개, [[유광세]], [[장준(남송)|장준]]과 함께 금나라의 공세를 막아내고 금군을 대파시킨 명장이다. == 생애 == 휘종 2년에 명장 오의가 사는 농간현에서 태어난 오린은 어려서부터 형 오개와 같이 무술연습과 무예연습을 자주했었다. 그러다 20대가 되던때 오의가 사망을 하고 장례식을 3년동안 형과 같이 치른뒤 형과 함께 군대에 입대를 하였다. 그는 금나라가 침공하기전 [[북송]]에 주변국들이 자주 침략을 하여 매번 전투에 참가해야 했었다. 대월 전투에서 그가 성과를 내고 형인 오개도 성과를 내어 오린이 방위를 맡았던 수도 지역(개봉부) 부대 사령관 즉 군단장 급같은 사람이 황제인 휘종에게 성과를 보고하였고 휘종은 황제가 주관하는 전시에 참가할 자격을 오개와 오린에게 주었다. 하지만 급제에 낙천되고 오개와 같이 술만 마시면서 양아치 처럼 살다가 어느날 이러면 안되겠다 한 둘은 깨닫고 무과 시험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무예실력 만큼은 좋아서 무과에 급제하였고 말단직인 훈련원 봉사를 거쳐서 수도 개봉부에 있던 한 사단 예하 중대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형 오개는 소령급으로 승진을 하여 사령부 간부로써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강의 변이 일어나고 [[금나라]]가 침공을 시작하여 송나라는 방위태세로 수비를 이어나갔지만 수비병들이 허무하게 무너졌고 개봉부의 사령부 사령관과 예하 사단 사단장들은 이미 썩어빠져서 다 도망가였다. 이때 휘종은 도망치고 흠종이 즉위하여 먼저 개봉부의 사령부 사령관 직무대리를 오개로 내정시켰고 개봉부 대표 사단의 사단장 직무대리를 오린으로 내정시켰다. 오린과 오개는 금나라에 공세를 막아내고 전투를 하던도중 임안에서 부터 한걸음으로 달려온 다른 군인들이자 명장들인 [[악비]], [[한세충]], [[유광세]], 장준, 강민, 양존중, [[양홍옥]] 등을 만나 오린은 수도 개봉부 공방전투를 실시하였지만 얼마안가 개봉이 함락당하면서 개봉부도 함락을 당하고 새로 취임한 고종황제가 수도를 임안부로 천도를 하여 오린이 전략을 수정하여 [[남송]] 방아작전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작전 도중 유광세와 한세충이 심하게 싸워 차질이 생겼고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나게되어 언월도를 들고 크게 호통을 쳤고 그제서야 정신차린 세충과 광세가 화해를 하고 전투를 하였다 그렇게 화성원 대첩과 진강 대첩에서 대승리를 하고 남송을 겨우 지켜낼수 있었다. 하지만 10년뒤 [[진회]]라는 남송 최악의 권신이자 재상이 악비를 투옥시키고 독살하여 한세충과 함께 따지러갔지만 막수유(莫須有)를 듣고선 크게 화를 내었다고 한다. 한편 오개는 진회가 천거를 시켜 남송 전체 사령부의 총대장이 되었고 그렇게 살아가다 10여년뒤 동생인 오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형의 장례식을 치른뒤 지병이 악화되어 은둔 생활을 하게되었고 한세충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65세의 나이에 노인이 되어 어딘가 모르는 데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자연사.] 사후 40여년뒤 재상 [[한탁주]]와 영종황제가 시호를 무순으로 추대시켰고 신안군왕에 추봉시켰지만 그후 [[명나라]] 태조 홍무제가 신왕으로 통합하여 다시 추봉시켰다. == 기타 == 『[[송사]](宋史)』 반신전에 열전이 수록된 [[오희(남송)|오희]]가 오린의 손자이기도 하다. 오희는 [[개희북벌]]에서 [[한탁주]]가 최고의 전력으로 신임했던 인물이었으나 그가 [[금나라]]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오희의 집안은 몰락하였고 오린의 제사는 오린의 형인 오개의 후손들이 맡게 되었다. 오린 본인은 죽을 때까지 송나라 조정에 충성했던 인물이었으나, 손자가 반란을 일으켜서 할아버지의 얼굴은 물론 집안에 먹칠을 한 셈이었다. 사천과 섬서 지역을 중시하였던 남송 명신이자 학자인 [[장준(송나라)|장준]]에 의해 등용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송사)] [[분류:송나라/인물]][[분류:역대제왕묘 배향자]][[분류:1102년 출생]][[분류:1167년 사망]][[분류:송나라의 추존 왕]][[분류:핑량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