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서귀포시 출신 인물]][[분류:1901년 출생]][[분류:197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파일:오병윤.jpg|width=300px]] || || 성명 ||오병윤(吳秉允) || || 이명 ||오병용(吳丙用) || || 생몰 ||[[1901년]] [[11월 20일]] ~ [[1973년]] [[4월 20일]] || || [[출생지]]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하원리[br](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 || 사망지 ||[[제주도]] [[서귀포시|남제주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오병윤은 1901년 11월 20일 전라남도 대정군 좌면 하원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주도 법정사 신도로, 1918년 9월 19일 법정사 승려 [[김연일]]이 “왜놈은 우리 조선을 병탄(倂呑)했을 뿐 아니라 병탄 후에는 관리는 물론 상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일본 상인을 섬 밖으로 몰아내자”는 연설을 하자 이에 즉각 찬동했고, 10월 5일 신도 33명과 함께 군사 대오를 편성하고 각 면(面) 면장들에게 격문을 보낸 후, 주민 400여 명을 규합하여 전선을 절단하고 일경 주재소를 습격·파괴하며 일인들을 포박·구타하는 등 이틀 동안 격렬한 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투입되면서 이틀 만에 진압되었고, 이 일로 체포된 그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남제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3년 4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오병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