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송 시기 비황족 황제 추존자)]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77449 0%, #2e8b57 20%, #2e8b57 80%, #277449); color: #ece5b6" '''북송 비황족 추존 황제[br]{{{+1 천존대제 | 天尊大帝}}}'''}}} || || '''시호''' ||성조천존대제(聖祖天尊大帝)[* '[[성조(동음이의어)#s-2.2|성조]]'는 시호가 아닌 묘호일 가능성도 있음.] || || '''명칭''' ||경령궁(景靈宮) → 옥천소응궁(玉淸昭應宮) || || '''주군''' ||[[조현랑|성조]](聖祖) || ||<|2> '''건립''' ||[[1008년]] ([[진종(송)|진종]] 대중상부 5년) || ||[[북송]] [[카이펑]] 선덕문 [br] (現 [[중화인민공화국]] [[카이펑]]) || [목차] [clearfix] == 개요 == [[송진종]] 시기에 건립된 도관(道觀)으로 본래는 송 황실의 시조 [[조현랑]]을 모시는 묘(廟)에 불과했으나 건물 자체가 존호를 얻어 독립성을 인정받아 별개의 신(神)으로 간주되었다. == 역사 == 본래 명칭은 경령궁(景靈宮)으로 상술했듯 조현랑의 신주를 봉안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경령궁에 [[도가]]의 창시자이자 상덕제(上德帝)로 존봉된 [[태상노군]], 시조신 [[황제(중국 신화)|황제]](黃帝)를 모시기 위해 축조사업을 진행하는 등 그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으며 [[옥황상제]]가 봉안되자 진종은 그를 봉안한 건물 자체를 옥제의 수호신으로 간주하여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으로 명칭을 격상시키고 1016년 성조(聖祖)로 일컫음과 동시에 천존대제(天尊大帝)[* <<[[송사]]/권104>> 大中祥符九年,詔以來年正月朔詣玉清昭應宮上玉皇聖號寶冊,二日詣景靈宮上聖祖天尊大帝徽號。 ]로 추시하였다. 사실 그 본질은 조현랑을 모시던 [[신전]]이라는 점과 시호가 자신의 주군 조현랑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옥천소응궁은 조현랑의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조현랑도 옥황상제를 보좌하던 신하라는 점에서 옥천소응궁은 옥황상제의 배신(陪臣)에 들어맞는다. 이후 진종의 뒤를 이은 [[송인종]] 시기 진종의 어진과 각지에 난립하던 송 황제, 황후들의 어진을 경령궁에 모두 배향하면서 송조 제2의 [[종묘]](宗廟)로 그 의미가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 참고 항목 ==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55309|北宋時期 景靈宮과 國家儀禮]] [[분류:송나라의 비황족 추존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