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宛城}}}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지역. [[완]]([[宛]])이라고도 한다. 현재 [[허난성]](河南省) [[난양시]](남양, 南陽市)를 말하며, 오늘날에도 난양 시의 시내 지역에는 완청구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로 완, 또는 완성이라고 나오고, 가끔씩 남양이라고도 나오는데 남양은 [[군(행정구역)|군]], 완은 [[현(행정구역)|현]]으로 다르지만 완이 남양군의 치소(태수의 소재지)이기 때문에 남양군 전체 대신 그 중심지인 완으로 일컫기도 한다.[* 현재 인구도 '''[[서울특별시|천만]]'''이나 되는 대도시이다.] 아래 내용은 남양군과 완현에 대한 말이 섞여서 서술되어 있다. 사실 [[후한]] 시절 남양군은 완현 외에도 속한 [[군국제|현, 읍, 후국]]이 서른일곱이나 되는 [[크고 아름다운]] 군으로 후한 군 중 인구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사실 남양군은 후한의 창건자 [[광무제]] 유수의 고향이기도 해서 후한 당시에 우대를 받았던 점도 있었다. == 역사 ==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된 도시이고, [[중국사|중국 역사상]] 자주 나온다. 현재의 지리로는 [[허난성]]의 남서쪽에 있으며 [[후베이성]]과 접하고 있다. [[형주]]의 최북방[* 지금의 허난성의 중심부는 옛 [[예주]]에 있긴 하나, 남양군은 예주가 아닌 형주에 속한다.]으로, [[사례(중국)|사예]] - [[형주]] - [[예주]]의 경계에 있는 도시다([[장안]]을 수비하는 관문으로 중요한 무관은 남양군 단수현 서쪽에 있었다). [[전국시대]]에는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영역이었다. [[후한]]의 [[광무제]]가 완성을 기반으로 다시 [[한나라|한실]]을 [[중흥]]시켰다. 교통의 중추지라서[* 완성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낙양]], 동쪽으로는 [[허창]], 남쪽으로는 [[양양시|양양]], 서쪽으로는 [[한중]], 서북쪽으로는 장안과 연결되어있다.] [[삼국지]]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는 지역으로 [[원술]]이 이곳에서 처음 거병해서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했고, 후에 형주 [[자사(관직)|자사]] [[유표]]의 지원을 받은 [[장수]]가 완성에 주둔해있다가 [[조조]]에게 항복하면서 [[위(삼국시대)|조위]]의 영토가 된다.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 잠시 머물던 [[신야|신야현]]도 남양군의 속현이다. [[서진]] 시대가 되면 남양군을 셋으로 나눠 남양군, 의양군, 순양군을 두었으며, 완은 여전히 남양군의 치소 지위를 유지했다. 순양군의 치소는 찬([[전한]] 시절 [[소하]]의 봉국이던 곳)이고 의양군의 치소는 신야다. 인재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후한 때 유명한 과학자인 [[장형]],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구천]]의 군사 [[범려]], 설명할 필요도 없는 [[제갈량]] 등등 이곳의 출신의 [[명사]]가 꽤 많다.[* 사실 제갈량의 원래 고향은 남양이 아니라 [[서주(중국)|서주]] [[낭야|낭야군]] 양도현이다. 조조가 벌인 [[서주대학살]]의 여파로 어린 시절 그의 일가가 서주에서 형주로 피신하여 정착한 것이다.] 애당초 남양은 그 당시까지만해도 [[이민족]]의 영역이 많았던 형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낙양과 가까워 문화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형주의 인재들은 거진 여기 아니면 [[남군]]([[양양시|양양]], [[강릉(동음이의어)|강릉]] 등) 출신이라고 봐도 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완, version=39)] [[분류:삼국지/지명]][[분류:허난성의 시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