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 말의 인물, rd1=왕상(후한))] [include(틀:운대 28장)] [include(틀:후한서)] 王常 (? ~ 36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전한]] 말 [[후한]] 초의 인물이며 자는 안경(顔卿). [[예주]](豫州) [[영천군]](颍川郡) 무양현(舞陽縣) 사람이다. [[신나라]] 말기, 왕상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강하군(江夏郡)으로 도망치는데 왕상은 강하군 출신이 었던 [[왕광]](王匡), [[왕봉]](王鳳)의 ~~[[도적]]~~ [[녹림|녹림군]](緑林軍)에 합류하게 된다. 22년, [[광무제|유수]]의 형 [[유인]](劉縯)이 합군(合軍)을 청하자 왕상은 [[성단]](成丹), [[장앙]](張卬)을 설득해 하강군(下江軍)을 연합하게 했다. 23년, [[왕망]]이 [[사도(관직)|대사도]] [[왕심]](王尋)과 [[사공(관직)|대사공]] [[왕읍]](王邑)을 파견했다. 왕심의 군사는 5월에 영천군에 당도하여 포위했는데 녹림군의 장수들이 대군을 보고 두려워 달아나려고 했으나 유수가 계책을 내내자 장수들도 어쩔 수 없이 유수의 계책에 따랐다. 왕상은 왕봉과 함께 성을 수비했으나 신나라 군대가 곤양성(昆陽城)을 포위하자 왕상은 [[투항]]하려고 했다. [[사망 플래그|그러나 왕읍이 이를 받아주지 않자 결국 끝까지 항전하였다.]] 6월, 유수가 구원군을 이끌고 돌아와 적을 곤양에서 적을 대파하니 이것이 그 유명한 '''[[곤양대전]]'''이다. 26년에는 왕상이 [[낙양]]으로 가 유수를 만나니 유수는 이에 기뻐하며 왕상을 좌조(左曹)에 임명했다고 한다. 29년 가을, 왕상은 유수를 따라 [[소무]](蘇茂)를 토벌 하였다. 30년, [[장안]]에 주둔해 외야(外嚣)에 방비하였다. 31년, 위행야대장군(为横野大将軍)에 임명되었다. 33년에는 [[반란]]을 [[토벌]] 하였고 [[탁군]] 고안현에 주둔하여 노방에 대비했다. 36년, 왕상은 탁군 고안현에서 사망했다. 왕상은 시절후(谥節侯)로 봉해졌다고 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왕상, version=115)]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3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