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琰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 == [[삼국지(정사)|정사 삼국지]] == 206년에 [[조조]]가 [[고간(삼국지)|고간]]을 공격해 평정했고 고간이 별장을 남겨 성을 지키게 하면서 흉노로 들어가 선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으며, 조조가 호관을 석 달 동안 포위해 함락하면서 고간이 형주로 달아나려고 하자 상락도위를 지내고 있던 왕염은 고간을 붙잡아 참수했다. 그 공으로 후에 봉해졌고 왕염의 아내는 왕염이 부귀해지면 장차 다시 잉첩을 들여 자기의 사랑을 뺏을까 염려해서 울었다는 것을 보면 이전에도 잉첩을 들인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삼국지연의]] == 고간을 붙잡아 죽여 조조가 열후에 봉한 것으로 짧게 언급되었다. == 미디어 믹스 ==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조조가 고간을 격파하면서 고간이 도망가자 흩어진 병주의 군사를 모으면 이 전투는 헛된 일이라면서 빨리 추격대를 붙여 고간을 붙잡아야 한다고 하자 왕염이 오면서 조조에게 그러실 필요가 없다면서 고간의 목을 가져왔다. 조조가 어떻게 붙잡았느냐고 묻자 고간이 도망치면 반드시 서북쪽 관문으로 도주할 줄 알았다면서 그 곳에 매복해있다가 고간의 목을 벴다고 했으며, 그 공으로 조조가 열후에 봉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위의 고간을 참했다는 행적과 본인 이름만 살짝 언급되었다. [[화봉요원]]에서는 가후에게 오랜만이라고 인사하면서 곽가의 명으로 고간을 죽였다는 보고를 하며, 고간의 목을 들어 내보이면서 곽가의 신통한 계책 덕분에 일 처리가 수월했다고 말한다. [[분류:후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