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라벤나 총독)] || '''이름''' ||요안니스 플라티노스[br](John Platinus)|| ||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직위''' ||[[라벤나]] 총독|| [목차] [clearfix] == 개요 == [[라벤나 총독부]]의 15대 총독. == 생애 == 687년 12월 15일 돌연 사망한 [[테오도로스 2세(라벤나 총독)|테오도로스 2세]]의 뒤를 이어 라벤나 총독에 부임했다. 그는 전임 총독이 받아내려 했던 뇌물을 교황 [[세르지오 1세]]에게 받아내려 했다. 그러나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룩한 그릇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자신이 소유한 전부라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들은 교황을 위해 집결했고, 총독이 원하는 대로 100파운드 상당의 금을 줬다. 총독은 이에 만족하여 세르지오 1세를 교황으로 인정했다. 692년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퀴니섹스툼 공의회]]를 마무리한 뒤 교황 세르지오 1세에게 102개의 교회법 조항을 보내며 당장 승인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교황은 퀴니섹스툼 공의회에 대표단을 보낸 적이 없었는데도 강제로 따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교황은 세속의 성직자에게 결혼을 허용하고[* 교회법 3조에서 성직자의 '재혼'을 금지한다고 기술되었지만 결혼 자체는 금지하지 않았다.] 사순절 토요일마다 금식하는 것 등 몇 가지 조항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라벤나 총독 요안니스에게 교황을 당장 체포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심복인 자카리아스(Zacharias)를 로마로 파견하여 교황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라벤나 시와 라벤나 주둔 제국군은 황제의 명령을 거부했다. 자카리아스가 교황을 잡으러 로마에 들어오자, 오히려 그를 따르던 병사들이 로마 시민들과 함께 자카리아스를 감금했다. 자카리아스는 교황의 침대로 피신했다가 세르지오 1세가 직접 중재에 나선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과 라벤나 총독의 이탈리아에서의 위신은 추락하였다. 702년경 [[테오필락토스]]에게 라벤나 총독을 넘기고 물러났다. [[분류:라벤나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