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스폴레토 공작)] ||<-3><:>{{{+1 '''Ugo II''' }}}|| ||<-2> '''생몰년도''' ||<(> 미상 ~ 1047년 이후 || ||<-2> '''출생지''' ||<(> 미상 || ||<-2> '''사망지''' ||<(> [[스폴레토]] || ||<-2> '''재위 기간''' ||1037년 - 1043년 || [목차] == 개요 == [[스폴레토 공국]] 45대 공작. == 행적 == 볼로냐 아펜니스(Bolognese Apennines) 공작 아달베르토 2세와 베르틸리아의 아들 왈페르도의 아들이다. 삼촌 보니파초 3세는 토스카나 변경백이었으며, 아달베르토 2세의 아버지는 스폴레토 공작 [[보니파초 2세]]이고, 보니파초 2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국왕 [[루도비코 2세]]의 궁정백이었던 우발도 1세의 아들이다. 1030년 6월 6일 볼로냐에서 체결된 평화 협약 때 피엔차의 공권력을 라벤나 주교 게베르도에게 '반환'한다는 내용을 기술했다.1034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2세]]가 부르고뉴의 외드 백작을 상대로 원정을 감행했을 때, 그는 이 원정에 가담했다. 1037년 5월 콘라트 2세에 의해 스폴레토 공작과 카메리노 후작에 선임되었다. 1038년 콘라트 2세가 남이탈리아에 대한 제국의 종주권을 회복하고자 남하했다. 그는 [[카푸아]]를 공략하고 카푸아 대공 판둘프 4세를 내쫓은 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살레르노 대공 [[과이마르 4세]]에게 카푸아를 넘겼다. 우고 역시 이 원정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미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다. 1043년 토스카나 변경백 보니파초 4세가 스폴레토 공작위를 겸임했을 때 물러났지만 여전히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 관료로 활동했으며, 1047년 4월 7일 라벤나에서 [[하인리히 3세]] 황제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가 윌라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은 볼로냐 일대에서 친 황제파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075년부터 시작된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오 7세]]간의 서임권 분쟁에 휘말려 심각한 타격을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분류:스폴레토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