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사마진 황후)] ||<-2> '''{{{#ece5b6 동진의 추존 황후[br]{{{+1 敬皇后 | 경황후}}}}}}''' || || '''[[시호|{{{#fff 시호}}}]]''' ||경황후(敬皇后) || ||<|2> '''{{{#fff 출생}}}''' ||[[277년]] || ||[[서진]] [[상추시|제양군]] 외황현[br](現 [[허난성]] [[상추시]] 민취안현) || || '''{{{#fff 사망}}}''' ||[[312년]] || || '''{{{#fff 능묘}}}''' ||건평릉(建平陵) || ||<^|1><-2><:>{{{#!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fff 성}}}''' ||우(虞) || || '''[[휘|{{{#fff 휘}}}]]''' ||맹모(孟母) || || '''{{{#fff 부모}}}''' ||부친 우예(虞豫) || || '''{{{#fff 부군}}}''' ||[[원제(동진)|{{{#000,#fff 중종(中宗) 원황제(元皇帝) 사마예(司馬睿)}}}]] || || '''{{{#fff 자녀}}}''' ||없음 ||}}}}}}}}} || [목차] [clearfix] == 개요 == 평산현후(平山縣侯) 우예의 딸이자 [[동진]]의 추존 황후로, 동진의 초대 황제 [[원제(동진)|명제]] 사마예의 정처였다. 사마예가 황제에 오르기 전에 죽는 바람에 나중에 황후로 추증되었다. == 생애 == 아버지가 명사라 어렸을 적부터 문장을 익혀 이치에 능통했으며, 어진 성정을 가졌고 미모까지 빼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성년이 되기도 전에 양친이 사망해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낭야왕이던 사마예와 만나는 일이 있었는데, 사마예는 그녀의 미모와 총명함에 감탄하며 바로 청혼을 했고, 우맹모를 왕비로 맞았다. 우맹모와 사마예 사이에선 어째서인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마예의 총애를 받던 궁녀 순씨가 [[명제(동진)|사마소]]와 [[사마부(동진)|사마부]]를 낳자, 우맹모는 순씨를 질투해 그녀를 무척 괴롭혔다. 지위가 미천했던 순씨는 앞에서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으나, 우맹모를 원망하는 마음이 매우 커 뒤에서 그녀에 대한 험담을 자주 늘어놓았다. 얼마 안가 순씨의 뒷담화는 사마예에게까지 전해졌고, 사마예는 크게 노해 그 날부터 순씨를 점점 멀리 하였다. 이후로 순씨에게 정이 완전히 떨어져버린 사마예는 순씨를 자신의 마부에게 시집보내고, 사마소, 사마부 형제 양육을 우맹모에게 맡겼다. 비록 우맹모는 그들의 생모가 아니었으나 친자식처럼 여겨 정성을 다해 길렀다.[* 그래도 [[명제(동진)|사마소]]는 자신의 생모는 잊지 못했는지, 훗날 황제에 오르고 나서 순씨를 건안군군(建安郡君)으로 추존하고 일개 궁녀에 불과했던 어머니의 신분도 후비로 높여주었다.] 312년, 35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6년 뒤인 318년, 황제에 오른 사마예는 우맹모를 황후로 높였고,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난 320년에는 그녀에게 경황후(敬皇后) 시호를 내렸다. 당시 사마예는 태묘에 제사를 지내고, 우황후의 관을 건평릉으로 이장시키면서 그녀를 그리워했다. 참고로 사마예가 우맹모 사후 다른 황후를 두지 않았던 걸 보면 그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323년, 사마예가 죽고 [[명제(동진)|사마소]]가 황위를 이었다. 사마소는 아버지의 시신을 우황후가 묻혀있는 건평릉에 합장해주고, 자신을 양육해준 우황후의 은혜를 항상 감사히 여겼다고 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진서)]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황후]][[분류:277년 출생]][[분류:31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