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와르글라 알제리.jpg]] 동북쪽으로 5km 떨어진 움 에라넵 호수의 풍경. [[파일:알제리 와르글라 1.jpg]] 와르글라 시내 서북부에 위치한 구도심 (엘 크사르) 풍경. [[아랍어]]: {{{+1 ورقلة }}} [[영어]]: Ouargla [목차] == 개요 == [[파일:와르글라 알제리 2.jpg|width=500]]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트램이 다니는 와르글라. [[알제리]] 중동부 와르글라 주의 주도. [[사하라 사막]] 한복판의 오아시스 도시로, 인구는 15만명이다.[* 오아시스 주변의 잡다한 마을들까지 합치면 20만이 넘긴 한다] [[가르다이아]]에서 동쪽으로 200km, [[투구르트]]에서 남쪽으로 170km 떨어져 있다. 석유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시가지 남부에는 우아르글라 대학교가 있다. 동쪽의 아인 베이다와 연담 도시화가 되어 있는데, 그 동부에 [[우아르글라 아인 베이다 공항]]이 있다. 중세에 도시는 사하라 횡단 교역으로 번영하였고, 19세기 이후 사막 장미를 판매하며 관광 수입을 올렸다. 그러다 20세기 석유의 발견으로 발전하였고, 시내에 [[트램]]이 있다.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탓에 날씨는 매우 더워 8월에는 53도까지 오른다. == 역사 == [[파일:알제리 이바디 모스크.jpg]] 천년이 넘은 이바디 모스크. [[이븐 칼둔]]에 의하면 도시는 바누 와르글라를 중심으로 [[틀렘센]]에서 남하한 [[베르베르]]계 부족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가르다이아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바디파]] 무슬림이었다. 909년에는 [[파티마 왕조]]에 의해 [[루스탐 왕조]]가 멸망, 수도 [[타헤르트]]가 파괴되자 그 주민들이 와르글라 오아시스로 피신하였다. 역시 이바디파를 믿었던 그들은 와르글라 남쪽 10km 지점에 세드라타를 세워 거주했으나 13세기 [[베두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그후 와르글라는 사하라 무역에 있어 독점적인 지위를 얻었고, 알제리에서 가장 큰 [[대추야자]]수 생산지였을 만큼 농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1세기 그 부를 탐낸 [[함마드 왕조]]에게 귀속되었으나 여전히 높은 자치를 누리던 와르글라는 [[하프스 왕조]] 시기에 대사원이 건설되었다. 14세기 이븐 칼둔은 사막의 관문 와르글라가 농업 진흥과 수단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로써 수 세기간 번영했으며, 종종 현지 왕조들의 수도로 독립을 유지했다고 기록하였다. 다만 이바디 공동체가 서쪽 가르다이아 방면 음자브 협곡으로 후퇴하고 북쪽의 투구르트가 발전하며 와르글라의 중요성은 하락하였다. 16세기 와르글라는 알제리 총독 살라흐 레이스에게 복속되어 700여 km 떨어진 [[알제]]에 조공을 바쳤다. === 근현대 === ||[[파일:세드라타 알제리.jpg|width=330]]||[[파일:알제리 와르글라 2.jpg]]|| || 1868년 재발견 후 발굴 중인 세드라타 유적 || 1920년 와르글라 항공 사진. || 19세기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 시에 와르글라는 1852년 라구아트 함락 이후 알제리 저항군의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1854년 와르글라 역시 프랑스 군에게 점령되었고, 1872년부터 [[비스크라]]의 아가 벤 드리스에 의한 간접 지배가 확립되었다. 1936년에는 신시가지에 사하라 박물관이 세워졌다. 1962년에는 프랑스 당국의 알제리 분할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 == 갤러리 == [[파일:알제리 와르글라.png]] 와르글라 트램 노선도. [[파일:와르글라 알제리 1.jpg]] 엘 크사르 구도심의 항공 사진. [[파일:와르글라 크사르 알제리.jpg]] 엘 크사르 풍경. [[분류:알제리의 도시]][[분류:오아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