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폴란드의 행정 구역)] ||<-6>|| ||<-6>|| ||<-6><:>{{{#FFFFFF {{{+4 '''우치''' }}}[br][[폴란드어]]: Łódź[br][[독일어]]: Lodz oder Lodsch[* 나치 독일 지배 시기엔 리츠만슈타트(Litzmannstadt)로 불렸었다.]}}} || ||<-6> [[파일:우치 문장.svg|width=100]] || ||<-6> 휘장 || ||<-6> [[파일:Lodz.jpg|width=100%]] || ||<-6> 우치 시가지 || ||<-6>{{{#!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Łódź Poland,너비=100%,높이=300px)]}}}|| || '''국가''' ||[include(틀:국기, 국명=폴란드)] || || '''행정구역''' ||[[우치키에]] || || '''면적''' ||293.25km² || || '''인구''' ||658,444명[* 2022년 12월 31일 기준.] || || '''역사''' ||[[1423년]] 도시 설립 || || '''시간대''' ||[[시간대|UTC+01:00]] (GMT)[*서머타임] || || '''링크''' ||[[http://www.uml.lodz.pl]] || [목차] [clearfix] == 개요 == 폴란드 내에서 인구 규모 3위인 도시. 폴란드의 [[맨체스터]]라고 불렸을 정도로 과거 섬유 산업이 크게 발달한 엘베 강 동안 동유럽에서 가장 일찍, 대규모로 산업혁명에 뛰어든 지방이었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715,360명이며 인접 지역까지 포함하면 1,428,600명이다. 폴란드인들은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중세를 상징하고, [[바르샤바]], 지금은 폴란드 손에서 벗어나 더욱 애틋한 [[르부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시기 근세의 영광을 상징한다면 우치는 열강의 분할통치기란 가혹한 현실에서도 근면하게 산업화, 경제성장을 이루던 폴란드의 가슴아프면서도 역동적이었던 근대를 상징하는 도시라고 표현하곤 한다. 원래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러시아 제국]]시기 섬유 공장들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산업도시로서 섬유 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바르샤바]][* 바르샤바와의 거리는 전철을 타면 1시간 30분 정도 된다. 서울-천안/세종 정도 거리.]의 뒤를 잇는 [[제2의 도시]]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민주화되면서 산업도시로서의 역할은 축소되어 쇠퇴기를 걸었다. [[유럽 연합]] 가입 이후 주력 산업을 섬유 [[제조업]]에서 '''[[영화]] 산업'''으로 바꾸면서 화려하게 부활했고 [[2019년]] 이후 우치의 최대 산업은 도시 GRDP의 무려 20%를 독차지하는 영화산업이 되었다. [[폴란드 영화]]의 80%가 우치 지역에서 촬영되고, 우치 영화학교는 [[동유럽]] 최고의 영화 전문대학이 되었으며 [* 한국인 유학생도 몇 있다. [[송일곤]]이 여기 출신.], [[한국]]의 [[영화의전당]]에 해당하는 폴란드 영화 박물관도 우치에 있다. [[미국 영화]]나 [[영국 영화]], [[프랑스 영화]] 등 다른 나라의 영화들도 폴란드에서 촬영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우치에 와서 촬영한다. 그 정도로 [[동유럽]]권에서 손꼽히게 영화 기반이 잘 닦여 있다. 동유럽판 [[할리우드]]. == 이름 == || [[폴란드어]] || Łódź(우치)[* [wut͡ɕ\]] || || [[이디시어]] || לאָדזש(로지)[* [lɔd͡ʒ\]] || || [[독일어]] || Lodz(로치)[* [lɔt͡ʃ\]. 폴란드어에 가깝게 로츠가 아닌 로치로 조음하며 Lodsch(로치)로 표기하기도 한다. [[독소 폴란드 점령|나치 독일 점령기]]에는 Litzmannstadt(리츠만슈타트)로 불렸다.] || 폴란드어 철자가 'Łódź'인데, 폴란드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도무지 '우치'로 읽을 수가 없다(...).[* 이 철자의 음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폴란드어에서 ł은 [[영어]] w와 같은 발음을 내는 문자이다. 그리고 ó는 u와 같은 발음을 나타내고(어원에 따라 구분), dź는 원래 유성음 /d͡ʑ/에 대응하는 철자이나 폴란드어에서 어말이나 무성 자음 앞에 오는 유성 자음은 [[러시아어]]와 동일하게 무성음화되기 때문에 /t͡ɕ/ 발음이 나게 된다. 때문에 이 표기가 폴란드어 철자법상 '우치'에 가깝게 발음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 도시가 언급된 영어나 [[독일어]] 책을 번역하면 십중팔구는 '로드즈', '로지' 등으로 옮긴다. 이 짧은 단어 하나를 읽으려면 폴란드어 읽는 법을 완전히 익혀야 하고, 때문에 폴란드어 관련 밈에서 폴란드어의 악명 높은 발음을 대표하는 단어로 자주 등장한다. [[https://twitter.com/ww2girl1944/status/1164609221259927552|일례]] 폴란드어로 우치(Łódź)는 [[선박|배]](船)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에 배가 그려져 있다. == 인구 추이 == ||<-2>
[[파일:우치 문장.svg|width=120]][br]'''{{{+1 우치 인구추이}}}'''[br]{{{-2 [2000-2019年]}}} || ||<:><#fff>2000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61AD 70%, #F5F5F5 70.2%)" {{{#fff 793,217명}}}}}} || ||<:><#fff>2005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61AD 60.96%, #F5F5F5 61.16%)" {{{#fff 767,628명}}}}}} || ||<:><#fff>2010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61AD 50.18%, #F5F5F5 50.38%)" {{{#fff 737,098명}}}}}} || ||<:><#fff>2015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61AD 37.42%, #F5F5F5 37.62%)" {{{#fff 700,982명}}}}}} || ||<:><#fff>2019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161AD 30%, #F5F5F5 30.2%)" {{{#fff 679,941명}}}}}} || 과거에만 해도 인구 80만을 넘을 정도로 폴란드 부동의 2위 대도시였으나, 공산정권 붕괴 이후 섬유산업의 몰락과 이민 및 다른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인하여 현재는 인구 70만 선이 무너졌을 정도로 인구의 감소가 심각하다. 인구감소에 [[크라쿠프]]의 부상이 겹치며 2위 자리도 크라쿠프에 내준지 오래고, 4위인 [[브로츠와프]]와도 인구 차가 별로 나지 않을 정도. == 역사 == 우치에 대한 기록은 1332년 처음 역사책에 등장했으며 17세기까지 [[슐레지엔]][* [[폴란드어]]로는 실롱스크(Śląsk)] 지역의 주요 무역도시로 기능했다. 이후 1793년 [[폴란드 분할]]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에 귀속되었으나 1815년 [[빈 회의]]의 결과로 다시 [[러시아 제국]]에 귀속되었다. 19세기 중반 섬유 산업이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우치는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이 다시 성립됨에 따라 우치는 신생 폴란드의 도시가 되고 여전히 폴란드의 주요 도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따른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우치는 [[나치 독일]]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나치당원 [[https://en.wikipedia.org/wiki/Karl_Litzmann|칼 리츠만]]의 이름을 붙인 리츠만슈타트로 불렸고, 이곳에 살던 많은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다. [[1945년]] [[1월 18일]] [[소련군]]이 [[독일 국방군]]을 몰아내고 이곳을 점령했고 도시 이름도 다시 우치로 돌아왔다. [[폴란드 망명 정부|영국이 지지한 폴란드 공화국]]의 수도인 [[바르샤바]]가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재기불능 수준의 피해를 입으면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우치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소련이 지지한 폴란드 공화국]]의 [[임시수도]]였다. 소련의 개입으로 공산당이 집권해 사회주의 체제로 헌법을 개정한 1952년 이후에도 우치는 섬유 공업 도시로 기능하였으나 계획 경제의 한계 속에서 그 명성은 계속 쇠락했다.[* 산업도시로 기능했기 때문에 [[브로츠와프]]나 [[크라쿠프]]처럼 관광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쇠락의 한 원인이었다.] 동유럽 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가 사라진 이후로는 현지 시정부는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통한 도시 부흥에 힘쓰고 있다. == 대중매체 == * 폴란드 영화계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가 1975년에 제작한 '약속의 땅(Ziemia obiecana)'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러시아령 폴란드]] 시절의 고증과 급부상하는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급간의 갈등, 탐욕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꿰뚫는 치밀한 묘사가 일품이다. 참고로 감독이 나온 영화학교도 이 도시에 있다. * 영화감독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고향이라, 폴란드 초기 3부작 (신원 미상, [[부전승(영화)]], 장벽)은 여기서 찍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우치(능력자X), version=70)] [[분류:폴란드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