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송서)] [include(틀:남사)] ||<-2> '''진녕경공(晉寧敬公)[br]{{{+1 袁湛 | 원담}}}''' || || '''시호''' ||경(敬) || || '''작호''' ||진녕현공(晉寧縣公) || || '''성''' ||원(袁) || || '''이름''' ||담(湛) || || '''자''' ||사심(士深) || || '''부친''' ||원질(袁質) || || '''조부''' ||원탐(袁耽) || || '''출생''' ||? ~ 418년 || || '''출신''' ||예주 진군(陳郡) 양하현(陽夏縣) || || '''국적''' ||동진(東晉) || [목차] [clearfix] == 개요 == [[동진]]의 인물로 자는 사심(士深). == 생애 == 예주 진군(陳郡) 양하현(陽夏縣) 출신의 인물로 동진의 재상이었던 [[사안(동진)|사안]]에 의해 알려졌으며, 사안의 조카인 사현(謝玄)이 자신의 딸을 원담에게 시집보냈다. 처음에 위군행참군(衛軍行參軍)으로 임명되었고, 원외상시(員外散騎), 통직정원랑(通直正員郎), 중군공조(中軍功曹), [[환현]]의 태위참군사(太尉參軍事)를 역임하였다. 입조하여 중서시랑과 황문시랑을 역임하였고, 환수(桓脩)의 무군장사(撫軍長史)를 맡았다. 이후 동진의 진군장군 유유가 환현을 토벌하는 군대를 일으킬 때, 원담을 자의참군으로 삼았다. 원담은 환현의 반란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진녕현남(晉寧縣男)으로 책봉되었다. 또한 환현의 태위장사(太尉長史)로 전출되었고 좌민상서(左民尙書)로 옮겼으며 이부의 사무를 맡았다. 원담은 관직을 맡다가 418년에 죽어서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로 추증되고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송(남조)|유송]]이 건국되고 [[문제(유송)|문제]]가 424년에 즉위한 뒤 딸인 [[원제규]]가 문제의 황후가 되었기에, 원담은 황후의 부친이라는 신분으로 시중(侍中), 좌광록대부,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추증되었고, 경공(敬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418년 사망]][[분류:진군 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