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폐쇄된 교통시설)] ||<-3> {{{+2 '''원북역'''}}}[br]{{{#red '''(폐역)'''}}} || ||<-3>{{{#!wiki style="margin: -6px -10px -5px" [include(틀:지도, 장소=원북역, 너비=100%, 높이=100%)]}}} || ||<-3> '''다른 문자 표기''' || || [[로마자]] ||<-2> Wonbuk || || [[한자]] ||<-2><|3> 院北 || || [[간체자]] || || [[가나(문자)|가나]] || ||<-3> '''주소''' || ||<-3>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함안)|군북면]] [[사군로]] 1204-2 (원북리) || ||<-3> '''개업일''' || || 경남선 ||<-2> 1925년 6월 15일 [br]~ 1931년 3월 31일[* [[구마산역]] ~ [[진주역]] 구간 운영] || ||<|2> 경전남부선 ||<-2> 1931년 4월 1일~[br]1944년 6월 15일[* 1차 폐역] || ||<-2> 1957년 2월 11일[* 재개업일][br]~1968년 2월 6일[* [[삼랑진역]] ~ [[진주역]] 구간 운영] || || [[경전선]] ||<-2> 1968년 2월 7일~[br]2012년 10월 23일[* [[마산역]] ~ [[진주역]] 복선전철화 이설에 따른 공식 폐역처리] || ||<-3> '''철도거리표''' || || [[삼랑진역|{{{#!html
삼랑진 방면}}}]][[군북역|군 북]][br]← 3.6 ㎞ || '''구 [[경전선]]'''[br]--원 북--[br]{{{#red '''(폐역)'''}}} || [[광주송정역|{{{#!html
송정리 방면}}}]][[평촌역(경전선)|평 촌]][br] 5.8 ㎞ → || {{{+1 院北驛 / Wonbuk Station }}}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038298_STD.jpg|width=100%]] || || 철거 전 원북역 맞이방 ||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038305_STD.jpg|width=100%]]|| || 원북역 옆 채미정 || [목차] [clearfix] == 개요 == 경전선의 [[철도]]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함안)|군북면]] [[사군로]] 1204-2 (원북리)에 위치해 있다. 약 10여 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했던 역. 승강장은 1면 1선의 [[단선]] [[승강장]]. == 역 정보 == 이 역의 경우 [[1957년]] [[2월 11일]]에 [[무배치간이역]]으로 부활하면서 화물 취급까지 했던 역이였다고 한다. 원래 역사가 있었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없어진 듯.[*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마산 전투]]로 인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원북역 뒤편은 [[북한군]] 6사단이 능선을 따라 전개하고 있었고 미군은 산 너머 진전면에 배치된 24사단 포병대와 함께 [[F4F]] 콜세어를 출격시켜 이 일대를 포격, 무자비한 폭격으로 그야말로 풀 한포기 안 나는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렸다.] 시내버스가 거의 운행하지 않는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하여, 주로 [[마산역|마산]] 방면으로 가는 지역 주민이 이용했던 역이다. 또한, 역사를 '''원북리 주민들이''' 세운 역이다. [[1984년]]에 원북리 주민 박계도(朴季道)라는 사람이 역 건물을 기증하여 세웠다는 표지가 나온다. 역 규모는 맞이방만 달랑 있는 조그마한 형태이며 마산-진주간 선로 이설로 [[2012년]] [[10월 23일]]부로 폐역. 사실 새 선로가 원북역 바로 옆으로 나란히 지나가는지라 역 하나 쯤은 간이형태라도 지어줄 수 있지 않나? 싶지만, 신 선로 기준으로는 동촌리의 신 군북역과 매우 가깝다. 도보로 가기엔 먼 거리지만 새로 포장된 명관 고개를 넘어 자동차로 15분 정도면 군북역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역을 안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 원북역이 영업을 재개한 후에는 인근의 명관리[* 명관저수지 뒤편으로 의외로 커다란 분지형 골짜기가 있다.] 사람들은 산 고개를 넘어 원북역으로 기차를 타러 갔는데[* 일제강점기에는 명관저수지의 산기슭을 위험하게 지나서 군북 옛 역까지 기차를 타러 갔는데 길이 지금 기준으로도 꽤 험하다.], 이제는 원북 사람들이 명관리를 지나 동촌리의 새 [[군북역]]으로 기차를 타러 가게 되었다는 것. 한때 승차량 또한 대단했는데, [[1966년]]부터 승차인원이 1만 명을 찍더니 [[1980년]]에는 '''8만 5천명'''까지 올라갔던 역이였다. 그만큼 교통이 불편했다는 이야기. 군북면 서부지역은 골짜기마다 동네가 제법 있는 편이었고 이들이 군북역까지 나오기엔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위에 써 있는 명관리 지역. 그리고 하림리, 수곡리, 모로실 등 구 진양군 접경지역 주민들이 모두 원북역을 이용했다. [[1981년]]에는 화물 도착량이 '''2950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원북 일대 골짜기에 시멘트나 고령토를 채석,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이 많았기 때문. 화물 취급은 이들 공장이 읍내 쪽으로 이전해 간 [[1982년]]부터 중지되었다. 승차인원은 [[1981년]]부터 점차 감소세에 들어 [[1987년]]에 승차량 5만 명을 찍던 역이 [[1988년]]에는 1만 2천명으로 확 줄었다. [[1989년]]에는 2,087명으로 또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군북과 반성을 잇는 구 1032번 지방도(현재는 [[1004번 지방도]]로 리넘버링됨)의 확충으로 여겨진다. 이 구간의 아스팔트 포장공사 완료시점이 1987년말이다. 그리고 우성여객이 이 구간에 직행버스(원북/수곡-군북-함안-[[남해고속도로]]직통-[[마산시외버스터미널]])를 투입, 수요를 흡수해갔다. 그 전에는 털털거리는 자갈도로로 마산까지 2시간은 족히 걸렸기 때문에 함안이나 군북장에 갈 일 아니면 버스 탈 일이 없었다. 반면 원북역에서 마산역까지는 비둘기호 각역정차로도 45분이면 충분했다, 그 후 군북면의 쇠락과 맞물려 겨우 몇 백 명 남짓 이용하는 간이역이 되었으며, [[1997년 외환 위기]]가 왔을 때에는 승차량이 '''25명'''에 불과했었다. [[2007년]]부터 다시 1,000명대를 회복했었고, [[2011년]]까지 한 해에 1~2천 명이 이 역을 이용했었다. 기차는 더 이상 정차하지 않지만 경치 하나는 괜찮은 곳이다. 특히 벚꽃 풍경이 좋아서 '간이역 여행' 단행본의 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단 구글에서 '원북역'으로 이미지 검색을 실시하면 벚꽃풍경 사진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앞의 '채미정'이라고 불리는 솔밭 언덕까지 봄 경치는 정말 좋다. 군북초등학교[* 과거에는 인근에 수곡국민학교, 하림국민학교, 명관국민학교가 있었지만 모두 폐교된 후 월촌리 일대를 제외한 모든 면 지구를 군북초등이 관할한다.] 학생들은 여기까지 걸어서 소풍온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던 역사가 [[2013년]] 1월~10월 사이에 철거되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철로와 맞이방은 없어졌지만 벚꽃과 노반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역 바로 앞에 조선시대 유교 도량인 서산서원이 있는데, 원래 명관리에 있던 [[서원]]이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한 번 없어졌다가 그 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그 외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방어산 마애불이 인근에 있다. [[마산 전투]]의 전장 한가운데 있어 몇 달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경전선의 역 목록)]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전선/폐역 목록, version=202, paragraph=4.2)] [[분류:1925년 개업한 철도역]][[분류:2012년 폐지된 철도역]][[분류:경상남도의 폐지된 철도역]][[분류:경전선(폐지된 구간)]][[분류:함안군의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