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육군3사관학교장)] ||<-2> '''{{{#fff '''대한민국 제29대 육군3사관학교장'''}}}[br]{{{+1 원홍규}}}[br] 元홍규 | Won hong-gyu '''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원홍규.jpg|width=100%]]}}} || || '''본관''' ||[[원주 원씨]] || || '''학력''' ||[[원주고등학교]] {{{-2 ([[졸업]] / 21회)}}}[br][[고려대학교]] {{{-2 ([[산업공학]] / [[학사]])}}} || || '''종교''' ||[[천주교]] {{{-2 (세례명: [[요셉]])}}} || ||<-2> '''군사 경력''' || || '''임관''' ||[[육군3사관학교|육군제3사관학교]] {{{-2 (16기)}}} || ||<|2> '''복무''' ||[[대한민국 육군]] || ||[[1979년]] [[2월]] ~ [[2016년]] [[5월]] || || '''최종 계급''' ||[[소장(계급)|소장]] {{{-2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대한민국 육군본부|육군본부]] [[감찰참모|감찰실장]] || || '''주요 보직''' ||[[육군3사관학교]]장[br][[제7보병사단]]장[br][[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br][[제7공수특전여단]]장[br][[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br][[제31보병사단]] [[제96보병여단|제96보병연대]]장[br][[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소대장|| [목차] == 개요 ==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육군]]의 [[장성급 장교]]로 최종 계급은 [[소장(계급)|소장]]으로 [[제7보병사단]]장과 [[육군3사관학교]]장을 역임하였다. == 학력 == * [[원주고등학교]] {{{-2 (졸업)}}} * [[육군3사관학교]] {{{-2 (19기 / 전문학사)}}} *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 {{{-2 (공학사)}}} == 생애 == [[강원도]] 출신으로 [[원주고등학교]](21회)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1979년]] [[2월]]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한 후, [[육군보병학교]]에서의 [[초군반]]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 당시 사령관은 [[전성각]]으로, 후임자는 [[12.12 군사반란]]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장태완]] 장군이다.] [[제1경비단]]의 소대장으로 보직되었다. 소대장 임기를 마치고 군 위탁 편입으로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하여 그 곳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본인의 3사 2기수 선배인 [[한동주]] 장군도 소대장 임기를 마치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준장 진급 후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제7공수특전여단]]장 등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대한민국 육군본부]] 감찰실장 보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에는 [[상지대학교]] 석좌교수와 아세아직업전문학교장 학장을 맡다가 현재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감사실장을 맡고 있다. == 경력 == * '''중령''' *[[제1공수특전여단]] 5대대장 * '''대령''' *[[제31보병사단]] [[제96보병여단|96보병연대]]장 * '''준장'''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후임 [[박종진(군인)|박종진]]] *[[제7공수특전여단]]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 * '''소장''' *[[제7보병사단]]장[* 전임 [[이상현(군인)|이상현]], 후임 [[구홍모]]] *[[육군3사관학교]]장[* 전임 [[김길영]], 후임 [[금용백]]] *[[대한민국 육군본부]] 감찰실장 * '''전역''' {{{-2 [[2016년]] [[5월]]}}} == 평판 == 휘하 간부와 용사들이 이 사람의 참모 역량을 최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평판이 매우 나쁘다. 본인의 후배 장군인 [[윤의철]](육사 43기) 장군에 버금갈 정도로 평가가 좋지 못하다[* 참고로 윤의철 장군은 [[문재인 정부]] 인사이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전형적인 [[똥별|멍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이 멍청한 인간이 장군까지 진급할 수 있었을까? 보통 장교들은 멍청하면 중령 진급도 안 되는데~~[* 보직이 잘 풀리거나 정권이 본인과 맞으면 가능하다. 윤의철의 경우 역시, 문재인 정권과 맞아서 중장까진 올라간 것이다.] === 간부들의 평가 === * 간부들의 평에 따르면 지시를 한 번 내릴 때 명확한 기준이 없었을 뿐 아니라 막무가내식으로 일을 시키기만 했다. '거기 있잖아, 내 말이 뭔지는 잘 알지?'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다녔다.[* 이 것은 [[지도자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형식적으로나마 주는 재량권까지 빼앗는 악습이다.] * 이 사람의 '그거 무엇인지'라는 말을 알아듣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평이 중론이다. 휘하 참모와 용사들은 이 사람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야만 했다. 똑똑한 참모가 이 사람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듣고 지시를 이행했는데도 이 사람은 툭 하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하고 다녔다. * 첫 보고 건을 보자마자 무조건 반려시키고 보았다. 몇 번이고 고쳐야 받아주었을 정도로 업무 효율이 낮은 사람이었다. *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시절 생일빵을 때린 임관을 7일 앞둔 생도들을 퇴교 처분하고 런닝만 입혀 내쫓았으며 행정소송 취하를 종용했다. [[http://m.sagunin.com/a.html?uid=1551§ion=sc4|#]] * 생도대장 시절 3사 생도들은 하루에 10km(아침 2km, 오후 4km, 금요일 주간 구보 10km, 토요일 산악구보 완전군장 10km)가량을 구보해야 했다. 이는 후임 생도대장인 [[박종진(군인)|박종진]] 장군에 의해서 완화되었다. 박 장군은 생도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이후 소장, 중장을 거쳐 대장으로 전역하였다. * [[제7공수특전여단]]장 시절 전투체육에서 구기종목을 모두 없애버리고 매주 수요일 산악구보 측정으로 바꾸었다. 또, 천리행군과 ATT, 고등산악 등 훈련을 자주 시켰음에도 개인정비 시간조차 주지 않아서 부상을 입는 장병들이 많았다. 정작 전임 여단장 때보다 훈련 성과가 나빴을 뿐 아니라 체력단련 실적 측면에서도 평가가 나빴다. === 용사들의 평가 === * 지휘관을 역임할 때마다 용사들을 관리하는 역량이 서툴러서 휘하 용사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은폐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 육사 출신 후배 장군인 [[윤의철]] 장군과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통제에만 이상하게 집착했지, 정작 성과는 나오지도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 한 용사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너희를 믿지 않는다. 너희를 믿을 바에 우리집 개를 믿는다.'고 하였다. 용사들의 관점에서 개보다 못한 인생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 [[제96보병여단|96연대]]장 시절 아침마다 기상하면 대대에서 연대까지 뜀걸음을 시켰다. * [[제7보병사단]]장 시절 기존에 있던 휴가를 모두 삭제하였다. 개인 휴가를 모두 단체 휴가로 바꿔서 개인이 따로 휴가를 나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휴가를 새로 주지도 않았는데, [[특급전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건 윤의철만도 못한 짓이다. 윤의철은 특급전사는 포상휴가를 갈 수 있는 구멍은 있었다. ] 결국 [[제8보병여단|8연대]]에 소속된 모 용사가 [[김관진]] 당시 [[국방부장관]] 트위터에 직접 마음의 편지를 쓰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 장관 역시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하여 원 장군에게 휴가를 복구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원 장군 본인은 복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상급자에 대한 [[하극상]]이 아닐 수 없다. * 원 장군이 없애버린 휴가는 후임 사단장인 [[구홍모]] 장군이 [[강건작|다시 복구하였다. 이후, 구홍모 장군은 중장 진급에 성공하여 요직에 올라탔다]][* 거기에 [[구홍모]] 장군은 [[용장]]이면서 [[덕장]]으로 평판이 자자했고,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 내 요직에 올라탈만큼 능력까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이종섭]] 前 [[국방부장관]]의 고향 친구이자 육사 40기 동기라는 점도 한몫했다. 구홍모 장군의 후임 사단장인 [[서정열]] 장군도 능력자에 덕장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 사단장 시절 [[윤의철|개인 여건과 상관 없이 알통 구보를 강요하여 용사의 전투력 저하를 일으켰다.]] * 주말에는 개인 휴식 여건을 보장하지 않고 부대 주변 대민 봉사활동으로 돼지풀 제거를 강요하였다. * 사단 위수지역이 3주동안 춘천까지 확대되었다가 철회되었는데 당시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빚어서 그랬다고 한다. 결국 갈등이 해결되면서 환원되었다. 결국 원 사단장은 휴가를 없애고 이걸 다 외출로 바뀌버리면서 화천군에서 지역경제발전에 대한 공로로 상까지 받았다. * 동아리 활동이라는 명목하에 일과시간 종료 후 매일 1시간씩 강제로 공부를 시켰다. 즉 모든 개인정비 시간 및 여유시간을 규정에도 없는 사단장의 명령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간들을 박탈당했다는 의미이다. 그 시간에는 TV 시청도 금지 당했으며 대부분의 용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 그 외 === * 한 번은 민간인과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군사경찰]]을 불렀으며, 민간인을 폭행하려한 전적이 있다. * 사단장 시절 본인이 담배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잠시 사단 전 구역을 금연구역화하고 흡연장 철수를 명한 적이 있다. == 여담 == *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요셉]]이다. * 3사 4기수 후배인 [[서정열]] 장군과의 공통점으로 [[제7보병사단]]장, [[육군3사관학교]]장, 육군본부 감찰실장 보직을 이어서 수행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평판은 극과 극이다. 서 장군은 예나 지금이나 휘하 병력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만, 원 장군 본인은 휘하 참모와 용사로부터 평판이 매우 나쁘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 아들 원승환은 [[학군사관]] 54기로 임관하여 본인에 이어 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본인의 전역 한 달을 앞두고 특전사에서 같이 공수훈련을 받았다. [[분류:원주시 출신 인물]][[분류:원주고등학교 출신]][[분류:육군3사관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원주 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