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 말의 인물, rd1=유유(후한))] [include(틀:후한서)] 劉瑜 (? ~ 168)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계절(季節)로 서주 광릉군 사람. == 생애 == 젊어서 경학을 좋아하고 특히 천문, 역산에 밝았으며, 주군에서 초빙하자 사양했고 165년에 태위 양병이 현량방정으로 천거하자 수도로 와서 국정을 논하는 상서를 올렸다. 상서를 올릴 당시에는 자신을 천거한 양병은 이미 사망했다. [[환제(후한)|환제]]가 특별히 조서로 불러 재앙의 조짐에 대해 묻자 경전과 참위설에 근거해 말했으며, 집권한 자들은 유유의 답변이 법을 위반했다면서 다른 일을 물었다. 유유는 정성스럽게 8천 여 글자의 답변을 올렸지만 환제는 채용하지 않았다. 의랑이 되었고 환제가 붕어하자 [[환사황후 두씨|두태후]]가 [[영제]]를 아들로 삼아 임조청정을 하고 [[두무]], [[진번]]에게 정사를 맡기도록 했는데, 유유는 이 때 [[이응(후한)|이응]], [[두밀]], [[윤훈]]과 함께 조정의 부름을 받아 정사에 참여했다. 두무가 환관을 주살하기 위해 유유를 승진시켜 시중에 임용했으며, 두무가 환관을 몰아내려다가 모의가 발각되어 실패하자 유유는 [[윤훈]]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유유, version=25, paragraph=2)]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16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