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괴산군 출신 인물]][[분류:1883년 출생]][[분류:1956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fff {{{+1 유해륜}}}[br]柳海崙}}}'''}}} || ||<|2> '''출생''' ||[[1883년]] [[12월 2일]] ||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 || ||<|2> '''사망''' ||[[1956년]] [[3월 27일]] || ||[[충청북도]] [[괴산군]] || ||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유해륜은 1883년 12월 2일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수면 몽촌리의 유지로, 1919년 4월 2일 [[경권중]]과 함께 면민 200여 명을 규합하여 소수면 길선리에 사는 김승환(金昇煥) 면장의 집과 소수면 주재소로 집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시위군중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19년 월 2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고 5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으며[[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995&evntId=0034972606&evntdowngbn=Y&indpnId=0000004927&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https://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1820&evntId=0034978969&evntdowngbn=Y&indpnId=0000010850&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출옥 후 괴산군에 조용히 지내다 1956년 3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유해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