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68년 테러]][[분류:제3공화국/살인사건]][[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 사고]][[분류:안동시의 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youtube(bML6BHtD3Kg)] [[1968년]] [[5월 18일]]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휴가 나온 육군 [[하사]]가 애인의 변심에 앙심을 품고 극장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 == 상세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52000200102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8-05-20&officeId=00020&pageNo=2&printNo=s1&publishType=00030|사건 경과가 상세히 서술된 기사]] [[1968년]] [[5월 18일]] 22시 25분경 안동시 운흥동 문화극장[* 현재 안동시 대안로 177번지, 제일정형외과 자리] 앞에서 심야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21069|복수]]>를 보고 빠져나오던 관객들을 향해 휴가 중이던 육군 제6보병사단 분대장 하사 신영식(당시 23세)이 미제 [[M26 수류탄]] 2발을 던져서 초등학생 2명을 포함하여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52300239107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8-05-23&officeId=00023&pageNo=7&printNo=14491&publishType=00010|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을 발생시켰다. 해당 수류탄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가지고 나간다고 보고하여 빼돌렸는데 이 때문에 소대장부터 사단장까지 전원 해임, 구속되었다.[* 당시에는 암암리에 불발탄이나 [[전군재물조사]]에서 나머지 탄들을 냇가에 던져 물고기를 잡는 짓이 흔했다. 군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산과 들에 불발탄이 널려 있던 [[6.25 전쟁]] 직후에는 민간에서도 물고기 몇 마리 잡겠다고 불발탄을 건드리다가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 문교부와 치안본부가 따로 [[https://m.fmkorea.com/best/3417154530|계도지침]]을 내릴 정도였다. 21세기도 유탄이나 폭음통을 던지거나 물가에 폭죽을 쏘는 식으로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고 하나 명백한 [[유해어법]]이니 적발되면 '''과태료 없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어 전과 기록이 생겨서 나락간다.'''] 사건 15분 전에 신고가 들어와서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52100329203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5-21&officeId=00032&pageNo=3&printNo=6958&publishType=00020|신고가 들어왔는데 파출소에서 출동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결국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후 서에서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협박하는 추태까지 있었고 경찰은 신고자를 다른 혐의로 구속했다가 보복조치라고 비판이 쇄도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5230032920301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5-23&officeId=00032&pageNo=3&printNo=6960&publishType=00020|풀어주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 신영식은 극장 인근의 여인숙에 숨어들었다가 곧 출동한 형사대에 의해 체포된 후 제36보병사단 헌병대[* 현 제50보병사단 군사경찰대]에 넘겨졌다. 범행 동기는 애인 박모(당시 25세)의 변심으로 인하여 앙심을 품고 불특정 다수에게 그 분풀이를 하려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휴가를 나와 애인의 집이 있는 부산 일대를 헤맸으나 끝내 찾지 못하자 고향 상주로 돌아왔다가 안동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술을 마시고 만취한 후 범행을 저질렀다. 막상 애인은 사글셋방에서 수십일 동안 범인의 연락이 없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 결과 == 체포된 신영식은 1968년 11월 21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1969년 7월 31일을 기해 [[총살형]]에 처해졌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사형 집행 직후 안구가 적출되었으며 실명한 2명의 파월 장병에게 각각 각막이식 수술이 진행되었다. == 여담 ==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5160032920302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5-16&officeId=00032&pageNo=3&printNo=6954&publishType=00020|인제에서 육군 중위가 12세 소녀를 강간한 사건]]과 [[국방부 초병 강간치상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기에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는 여론이 폭증하였다. 결국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최영희(군인)|최영희]]는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 [include(틀:군 사건사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