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閏雄 / 車閏雄'''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삼국시대]] 강주[* 현 [[경상남도]]에 설치되었던 신라 9주 중 하나이다.]의 지방세력가이자 [[호족(한국사)|호족]]. 강주장군(康州將軍)으로 기록된 점을 볼 때, 현 [[경상남도]] [[진주시]]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 생애 == [[삼국사기]], [[고려사]]에 따르면 [[920년]] 2월[* 고려사에서는 920년 1월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에 아들 일강(一康)을 보내 투항의사를 밝혔다. 왕건은 아들 일강을 [[아찬]]에 임명했으며, 행훈의 누이동생과 일강을 결혼시켰다. 또한 낭중 춘양을 강주로 보내 그를 위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윤웅이 고려에 투항의사를 밝힌지 8개월 뒤인 920년 10월, [[견훤]]이 [[대야성]]을 함락시키면서 강주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는데 이와 연관있는지는 불분명하다. == 기타 == 진주 소씨 측 기록인 동근보에는 차윤웅(車閏雄)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소격달의 아버지인 소송을 [[왕봉규]]와 함께 살해한 후 [[소격달]][* 진주 소씨의 시조격 인물. 후에 궁지에 몰리자 고려 [[태조(고려)|왕건]]에게 귀부 의사를 밝히는 동시에 지원군을 요청했고 이후 고려군과 내응하여 왕봉규를 죽이고 중앙 정계로 진출하게 된다. 후삼국 말미의 [[운주성 전투]]에 출전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최유문 등 친소격달 호족들과 맞서 싸우다가 결국 거창성에 고립되었고 끝내 소격달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사기, 고려사와 교차되는 면이 없다. [각주] [[분류:신라의 인물]][[분류:후삼국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