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應劭 (? ~ 204년 이전[* 조조가 업을 점령하기 이전에 사망했다는 기록에 근거.])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중원(仲遠)으로 [[응침]](應郴)[* 응순(應順)[* 자는 화중(華仲). [[화제(후한)|화제]] 때 하남윤과 장작대장을 지냈다.]의 손자이며, 응첩(應疊)[* 강하태수를 지냈다.]의 아들이다. 급현의 장관으로 있을 때 [[배중사영]](杯中蛇影)의 일화를 남겼다. 나중에 무릉태수를 지냈다.]의 손자, [[응봉]](應奉)[* 자는 세숙(世叔). 사례교위를 지냈으며, '감소'(感騷)를 30편 저술하였다.]의 아들이며 응지(應志)[* 자는 중절(仲節). 응봉의 형제이지만 서열은 불명. 굳이 [[백중숙계]] 식으로 따진다면 응봉의 동생이었을 듯. 서주자사를 지냈다.]의 조카. [[응순]](应珣)의 형이고 [[응창]](應瑒)과 [[응거]](應據)의 백부다. 예주 여남군 남돈현 사람. == [[삼국지(정사)|정사 삼국지]] == 어릴 때부터 학문을 열심히 하면서 박학다식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으며, [[풍속통의]] 등 100여 편의 여러 저술 등을 했다. 또한 중한집서, 한관의, 예의고사 등 11종 136권을 저술해 조정의 제도, 백관의 의식 등을 없어지지 않게 했다. [[영제(후한)|영제]] 때 효렴에 오르고 173년에 낭중이 되었으며, [[하묘]]의 부름으로 거기장군의 속관이 되었다가 소현의 현령을 지냈다. 185년에 한양의 [[한수(삼국지)|한수]]와 함께 강족, 호족 등이 동쪽으로 삼보 지방을 공격하면서 조정에서는 [[황보숭]]을 보내 이를 토벌하게 했는데, 황보숭이 오환에서 병사 3천명을 징발하려고 하자 [[추정(후한)|추정]]이 선비에서 새로 모병한다고 주장한 것에 응소는 선비는 신의가 없다면서 이를 반대하고 응소의 의견이 채택되었다. 189년에 5개월간 영릉현령을 지내다가 태산태수에 임명되었고 191년에 황건적 30만이 태산군을 공격하자 이를 물리쳐 수천 명의 수급, 약 1만의 포로, 2천량의 치중을 얻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193년, [[조숭]]이 낭야에서 [[조조]]에게 가기위해 태산을 지나게 되자 응소가 군사를 보내 영접하려 했는데 군사가 도착하기 전에 [[도겸(삼국지)|도겸]]의 군사가 그들을 붙잡아 죽이는 바람에 자신에게 화가 이를까 두려워해 관직을 버리고 [[원소(삼국지)|원소]]에게 달아났다. 196년에 한관의를 완성시켜 [[헌제]]에게 바치고 197년에 헌제로부터 원소의 군모교위에 임명되었으며, 응봉이 거둔 선인의 초상화를 묶어서 상인기라 했다. 조조가 업을 점령하기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 [[삼국지연의]] == [[조숭]]을 비롯한 조조의 집안사람들을 이끌고 데려가다가 [[도겸(삼국지)|도겸]]의 부하인 [[장개#s-1]]가 이끄는 군사들과 함께 호송하다가 밤 중에 장개가 이끄는 군사들의 기습을 받자 죽기로써 싸워 몸을 빼어 원소에게 갔다. == 미디어 믹스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275.jpg|width=400]] || || 삼국지 13 PK, 14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3]] PK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통솔 73, 무력 26, 지력 72, 정치 76. 특기는 상업 2, 농업 1, 문화 5, 교섭 1. 전수특기는 문화이며 전법은 창공약화. 일러스트는 자신이 저술한 [[풍속통의]]로 추정된 작품을 든 채 손으로 턱을 잡고 고심하고 있다. [[삼국지 14]]에서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46, 지력 73, 정치 67, 매력 70으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20, 지력이 1 상승한 대신 통솔력이 5, 정치력이 9 하락했다. 개성은 문화, 위무, 학자, 주의는 명리, 정책은 태학 Lv 3, 진형은 봉시, 전법은 제사, 업화, 고무,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연주 쪽 도시가 줄어들어서 유대의 세력에 소속되어 있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조조가 동군으로 조숭을 모시겠다고 하자 응소가 서주의 지리에 밝다면서 자신을 보내달라고 자원했는데, [[도겸(삼국지)|도겸]]이 응소를 도와서 조숭을 호송하려고 보낸 군사 중에 [[장개#s-1]]가 조숭을 죽이고 응소의 병사들을 공격했다. 그런데 응소의 병사 중에 달아난 자가 응소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언급한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