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의대조[br]衣帶詔'''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yī dài zhào.png|width=100%]] }}} || ||<:> '''날짜''' ||<-2> 199년 ~ 200년 정월 || ||<:> '''장소''' ||<-2> 중국 허도 || ||<:> '''원인''' ||<-2> [[헌제]]로 밀명으로 인한 [[조조]] 암살 시도 || ||<:> '''결과''' ||<-2> 암살 모의가 발각되어 동승을 비롯한 황제파 숙청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년]]에 [[헌제]]에게서 권력자인 [[조조]]를 암살하라는 밀서를 받아 일을 꾸미다가 [[200년]] 정월에 발각되어 숙청된 사건이다. 의대는 옷의 허리띠로 헌제가 허리띠 속에서 조서를 숨겨놓고 전달한 것에서 유래했다. == 발단 == === 조조의 권력 장악 === [[이각]], [[곽사]]가 권력을 잡았다가 흥평 연간에 서로 권력을 두고 다투는 일이 일어나 [[헌제]]가 탈출했고, 이각, 곽사는 헌제를 추격하면서도 삼보 일대를 약탈해 황폐화시켜 [[삼보의 난]]을 일으켰으며, 헌제는 이들에게서 달아난 끝에 [[조조]]의 보호를 받고 허현을 도읍으로 옮겼다. 조조가 헌제를 보호해 종묘사직을 안정시켰지만, 허현을 도읍으로 삼은 뒤부터는 권력이 조조에게 돌아가 천자를 거느리고 다스리니, 백관은 인원수만 갖출 뿐이라 조조가 핍박함을 미워했다. == 전개 == === 헌제의 밀서 전달 === 헌제는 거기장군 동승에게 몰래 의대에 숨긴 채 조서를 내려 천하의 의사들과 함께 조조를 벌하는 것을 결성하도록 했으며, 동승이 유비와 함께 모의를 같이 했지만 일을 시행하기도 전에 좌장군 [[유비]]가 조조의 명으로 [[주령]], [[노초]]와 함께 [[원소]]에게 귀순하려는 [[원술]]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고, 동승이 계획을 바꿔 비장군 [[왕자복]]을 끌어들이고 왕자복이 장수교위 [[충집]], 의랑 [[오석]]을 끌어들여 일을 꾸미기로 한다. == 결과 == 200년 정월에 동승 등의 모의가 누설되면서 조조에게 주살되었다. == 영향 == 의대조 사건의 관련자인 유비가 하북으로 오면서 원소가 헌제의 조서를 받은 유비를 보호해 조조를 치기 위해 [[관도대전]]을 일으키는 명분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일에 두려움을 품은 [[복황후]]가 [[복완]]에게 편지를 주고받아 조조를 몰래 도모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후에 발각되면서 살해당했다. [각주] [[분류:중국사/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