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명의 정치인, rd1=이강철(정치인))] * 상위 문서 : [[야구 관련 인물(KBO)]], [[kt wiz/선수단]] [include(틀:KBO 리그 감독)] ||
'''{{{#fff 이강철의 감독직 / 기타 직책 역임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 kt wiz 감독)] ---- [include(틀:KIA 타이거즈 주장)] }}} || ---- ||
'''{{{#fff 이강철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f01e23><:> '''[[1989년 한국시리즈|{{{#ffffff 1989}}}]]''' ||<#f01e23><:> '''[[1991년 한국시리즈|{{{#ffffff 1991}}}]]''' ||<#f01e23><:> '''[[1993년 한국시리즈|{{{#ffffff 1993}}}]]''' || ||<#f01e23><:> '''[[1996년 한국시리즈|{{{#ffffff 1996}}}]]''' ||<#f01e23><:> '''[[1997년 한국시리즈|{{{#ffffff 1997}}}]]''' || ---- ||||<#000000> {{{#ffffff 보유 기록}}} || || 10년 연속 10승 || 1989년~1998년 || || 10년 연속 100탈삼진 || 1989년~1998년[* [[장원준]]과 타이기록] || ---- ||<-10><#151B54><:>{{{#!html }}}[[KBO|[[파일:5p4rcEr.png|width=25]]]]{{{#!html }}} '''{{{#ffffff [[1996년 한국시리즈|{{{#fae7a6 KBO 한국시리즈}}}]]}}}''' [br] '''{{{#ffffff 1996 한국시리즈 MVP}}}''' || ---- ||<-5> '''[[KIA 타이거즈|{{{#FFF 해태 / KIA 타이거즈}}}]] {{{#FFF 등번호 19번}}}''' || || 김만후(1987~1988) || → || '''이강철(1989~1999)''' || → || [[박충식]](2000~2001) || || [[박충식]](2000~2001) || → || '''이강철(2002~2005)''' || → || [[신용운]](2006~2007) || ||<-5> '''[[삼성 라이온즈|{{{#FFF 삼성 라이온즈}}}]] {{{#FFF 등번호 16번}}}''' || || 이복연(1998) || → || '''이강철(2000~2001)''' || → || 이준호(2002) || ||<-5> '''[[해태 타이거즈|{{{#FFF 해태 타이거즈}}}]] {{{#FFF 등번호 13번}}}''' || || [[성영재]](2000) || → || '''이강철(2001)''' || → || 홍찬영 || ||<-5> '''[[KIA 타이거즈|{{{#FFF KIA 타이거즈}}}]] {{{#FFF 등번호 72번}}}''' || || 박창영(1995) || → || '''이강철(2006~2007)''' || → || [[장재중]](2008~2001) || ||<-5> '''[[KIA 타이거즈|{{{#FFF KIA 타이거즈}}}]] {{{#FFF 등번호 77번}}}''' || || [[김태룡]](2004~2007) || → || '''이강철(2008~2012)''' || → ||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2013~2014) || ||<-5> '''[[넥센 히어로즈|{{{#FFF 넥센 히어로즈}}}]] {{{#FFF 등번호 89번}}}''' || || 결번 || → || '''이강철(2013~2016)''' || → || [[박도현(야구)|박도현]](2017~ ) || ||<-5><#131230> '''[[두산 베어스|{{{#fff 두산 베어스}}}]] {{{#fff 등번호 71번}}}''' || || [[문동환]](2013~2016) || → || '''이강철(2017~2018)''' || → || 결번 || ||<-5> '''[[kt wiz|{{{#FFF KT 위즈}}}]] {{{#FFF 등번호 71번}}}''' || || [[이숭용]](2014~2018) || → ||<#c0c0c0> '''이강철(2019~ )''' || → || 현역 || }}} || ---- ||||
[[파일:2018111800516_0.jpg]]|||| ||||<#000000><:> {{{#ffffff kt wiz No.71}}} || ||||<#ff0000><:> {{{#ffffff 이강철(李强喆 / Kang-chul Lee)}}} || ||<:> '''생년월일''' ||<:> [[1966년]] [[5월 24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지''' ||<:> [[광주광역시]] [[북구(광주)|북구]] || ||<:> '''신체''' ||<:> 180cm, 78kg || ||<:> '''학력''' ||<:> 서림초-무등중-[[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동국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언우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9년/신인드래프트|1989년 1차 2순위]] ([[해태 타이거즈|해태]]) ||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89~1999) [br] [[삼성 라이온즈]] (2000~2001) [br] [[KIA 타이거즈]] (2001~2005) || ||<:> '''지도자''' ||<:>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07~2012) [BR] [[넥센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3~2016) [br]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17)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7)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투수코치 (2018)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투수코치 (2017~2018)[br] [[kt wiz]] 감독 (2019~) || [목차] == 소개 == 前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現 [[kt wiz]]의 1군 감독. 현역 시절 등번호는 19번(해태), 16번(삼성), 13번(KIA), 19번(KIA).[* 여담으로 현역 시절에 달았던 '''19번'''은 그의 은퇴 이후 이강철이 키워낸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가 가장 달고싶어 하는 번호가 되었다. [[신용운]]과 [[손영민]]이 이 배번을 달았었다. 그러나 [[손영민]]이 임탈되고, 이강철이 넥센으로 가면서 언더핸드와 사이드암이 아닌 뜬금없는 좌완 [[손동욱]]이 달더니 이젠 노장 우완 [[최영필]]이 달았다가, [[최영필]]의 은퇴 다음엔 2015년 1차지명 투수 [[이민우(투수)|이민우]]가 달았다. 이후 2018 시즌이 되어 투수인 [[손영민]]이 다시 19번을 가져가면서 원래대로 사이드암 투수가 달게되었다. 한편 넥센에서도 [[한현희]]가 이 번호를 달았지만 [[송신영|19번을 달았던 언니]]가 돌아오면서 한현희는 원래 달던 63번을 달게 되었다.] 별명으로는 강fe, 깡통님, 강페이가 있다.[* 비슷한 사례로는 [[이순철|순페이]]가 있다.] == 선수 경력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820000026396.jpg]] || || 최전성기를 보낸 [[해태 타이거즈]] 시절.(출처 : 포토로) || ||
[[파일:attachment/이강철/52e8ec121dc1d32f54fb.gif]] || 1989년, 해태에 입단한 국가대표 투수 3인방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조계현]]과 [[이광우]]. 3500만원을 받고 입단했으나, 당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송진우(야구선수)|송진우]]가 신인 최고 계약금(4200만원)을 받자 해태는 기를 세워준답시고 송진우와 같은 금액인 4200만원으로 부풀려 발표했다. 팀내 최고 계약금은 사실 이광우가 받긴 했지만. 뭐 쨌든 기를 살려준다고 계약금을 부풀려 발표한 걸 보면 해태가 꽤나 기대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강철은 팀 내에서 [[선동열]]이나 [[조계현]], 후반에는 [[이대진]]에 밀려서 2인자 이미지가 있다. 전체 KBO 리그에서 본인 커리어를 보면 딱히 2인자라고 보기 힘들다. [[한국시리즈]] 우승[* 우승 횟수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1996년 한국시리즈]] MVP 경력이 있다.] 경력과 위의 '''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10년 연속 두자리 승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기록. 10년 연속 세자릿수 탈삼진 역시 굉장한 기록인데 2017년 [[장원준]]이 타이를 기록하면서 유일은 아니게 되었다. 조계현과 이강철이 우위가 갈리는 시즌이 뚜렸한데,(89~92는 이강철 우세, 93~96은 조계현 우세, 이후 다시 이강철 우세) 이강철은 탈삼진에서만큼은 조계현한테 한번도 밀리지 않았다. 주로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한 [[정민철]]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적으로 누적 스탯은 정민철이(sWAR 정민철 60.02 이강철 50.75), 비율 스탯은 이강철이(스탯티즈 기준 ERA+ 정민철 117.9 이강철 123.8) 각각 우세한 면을 보인다.[* 둘은 같은 16시즌을 뛰었다.] 그러나 다른 누적스탯인 탈삼진에선 이강철이 (1749 vs 1661), 비율스탯인 FIP+에서는 정민철이(스탯티즈 기준 정민철 116.3 이강철 109.2)각각 우세한 면을 보인다. 이러한 점을 전반적으로 고려해본다면 비슷해 보이지만 WAR에서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정민철의 근소 우위라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기록만 보면 거의 크보 레전드급인데 별로 사람들 뇌리에 남지 않는 이유는 같은 시기에 시기에 '''[[선동열]]''', [[조계현]]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묻힌 감도 있다.[* 정작 세부스텟은 이강철이 조계현보다 좋다] 어떻게 보면 선동열에 의한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잘 던지다가 4이닝 원아웃 내지는 투아웃에 선동열 등판으로 인해 승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승수는 많았지만[* 특히 92년 기록한 18승 중 17개가 선발승이었는데 이 것은 역대 잠수함 투수 최다 선발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던 96년을 제외하면 큰 경기에서 타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팬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것도 있으며, 정작 시즌 최다승을 기록한 1992년과 [[이종범]]의 일본진출로 해태가 망해갔던 98년을 제외하면 그가 팀내 최다승을 못거두었다는 점도 있다. 선동열이 부상으로 이탈했던 92년에는 팀내 최고 에이스 자리를 맡았지만 혹사 여파인지 93~96년에는 조계현에게 한참 밀렸고, 그때 조계현은 4년간 60승을 거두며 해태의 에이스자리를 꿰찼으며, 조계현의 경우는 당시 2년간 왕좌를 양분하였던 [[LG 트윈스]]에게 12연승을 거두며 절대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탓도 있다. 거기에 95년부터 기량이 만개해 4년간 평균 2점대 방어율에 59승을 쌓으며 탈삼진 1위를 2번이나 석권한 [[이대진]]의 활약이 너무나도 커[* 98년의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은 그야말로 화룡점정.] 사실상 97년부터 98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1선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거즈의 에이스 호칭은 이대진에게 내주는 등 2인자 이미지가 굳어진다. 프로 입단 동기인 [[송진우(야구)|송진우]]와 라이벌 구도가 있다. 입단 당시 송진우가 신인 최고 계약금을 받았다고 이강철도 같은 금액으로 부풀려 발표했었고,[* 실제로는 이강철이 적음] 1992년에는 [[송진우(야구)|송진우]]와 다승왕 경쟁을 했는데, 김영덕 감독의 노골적인 다승왕 만들어주기를 등에 업은 [[송진우(야구)|송진우]]에게 아쉽게 패한다.[* 1992년 빙그레와 해태는 시즌 마지막 2연전에서 대결했는데, 첫 경기에서 장종훈의 시즌 40홈런 달성 등으로 빙그레가 여유있게 앞서자 김영덕 감독은 잘 던지던 선발 한희민을 5회부터 송진우로 교체해 당시 이강철과 18승으로 다승 공동 1위였던 송진우에게 1승을 선사했다. 다른 상대도 아니고 직접적 경쟁 당사자의 팀을 상대로 노골적인 타이틀 만들어주기를 시도하니,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었다.][* 이강철은 다음날 빙그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나서 '공동' 다승 1위의 가능성에 도전했지만, 장종훈의 시즌 홈런 기록을 41개로 늘려주는 제물이 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본인이 회상하길 처음에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아깝다고 얘기를 하니 허탈하고 눈물도 나고 그랬다고.[* 하지만 당시 자료를 보면 '[[송진우(야구)|송진우]]를 선배로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도 나왔다고 한다. 당사자인 [[송진우(야구)|송진우]]는 "내가 아는 강철이는 그런 말 할 애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출처 - 1992년 10월 7일 주간야구)] 그 해에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지만 1992년 당시에는 탈삼진 타이틀이 없어서 타이틀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바로 그 다음 해인 1993년에 탈삼진 타이틀이 신설되었다.]또 12년 뒤 [[선동열]]의 통산 최다 탈삼진을 경신했지만 그마저도 [[송진우(야구)|회장님]]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527220238468B3.jpg]] || || 잠시 있다 간 [[삼성 라이온즈]] 시절.(출처 : 포토로)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815231402355B3.jpg]] || ||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KIA 타이거즈]] 시절.(출처 : 포토로) || 1998 시즌 후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1999 시즌을 통째로 쉰 후,[* 그것은 [[해태 타이거즈]]에게 크나큰 불운이었다. [[곽현희]]가 팀내 최다승인 11승을 거뒀지만 방어율이 무려 '''6점대'''였다. 나머지 투수들도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3점대를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타선이 210홈런을 치면서 역대 최강에 근접하는 포스를 보여주었음을 생각하면 너무 뼈아픈 이강철의 부재였다. 게다가 에이스 [[이대진]]도 이 때부터 어깨 부상으로 인한 재활의 터널에 들어갔고 젊은 투수 [[김상진(1977)|김상진]]은 위암으로 인해 22살이라는 나이에 요절했으니.] 2000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3년 간 8억 원의 조건으로 FA 계약을 맺고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했다.[* 당시 FA 보상선수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박충식]]이었다. [[박충식]]은 고향 팀 해태로 이적한 후 해태의 열악한 재활 시스템에 기겁했다고 한다. 자세한 건 [[해태 타이거즈]] 항목 참조.] 그러나 무릎 수술 후유증과 노쇠화가 겹쳐 2000 시즌에 1승 7패에 그치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후, [[김응용]] 감독이 왔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2001년 7월 30일 2억 원의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돌아갔다. [[KIA 타이거즈]]로 돌아온 이후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66경기 105이닝-67경기 68이닝-79경기 85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당시 계투가 엄청나게 불안했던 기아에서 팬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볼 수 있었던 중간계투는 이강철과 신용운 뿐이었다.] 2005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KIA에서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던 시기는 2002~2004년인데, 이때 그는 역대 만 36~38세 선수 중 최다 등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그의 마지막 전성기인 2004년의 마지막 등판인 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홍성흔]]에게 만루홈런, [[안경현]]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은 본인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 플레이 스타일 == 전성기 시절 구속은 언더핸드로써는 빠른 편인 130km/h 중후반대까지 나왔다. 당시 해설자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강철의 직구가 속도는 느리지만 우완 정통파 투수의 140km대 직구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위력적인 직구[* 떠오르는 직구도 주무기였다. 낮게 깔려서 오다가 대략 포수 머리 근처 또는 약간 높은 정도의 범위에서 형성되는 직구였는데, 당시에는 이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는 맞추기도 어려운 마구급 구질이었지만, 반대로 홈런을 맞기도 쉬운 구질이었다. 사실 당시 대표적 홈런 공장장 중 하나가 이강철. 언더핸드 특성 상 어쩔 수 없지만.]를 뿌렸다. 또한 언더핸드 답게 공끝의 움직임이 상당히 지저분 했으며 그의 슬라이더(커브라고도 했다)는 당대 최고의 구질 중에 하나였다. 이강철의 슬라이더는 살짝 떠오르면서 우타자 바깥쪽(혹은 좌타자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간다. 게다가 각도 예리했다. 영상만 찾아보면 마구가 따로 없다. 이강철이 선발로 롱런했던 이유도 이 슬라이더가 좌타자에게 잘 먹혔기 때문이다. 또한 슬라이더 외의 대표적인 구종으로 커브가 있는데, 그야말로 폭포수 커브를 구사했으며 지금도 명품 커브라 불리며 회자되고 있다.[*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커브는 변화 면에 있어 효과가 배가된다. 아래에서 떠오르는 공을 던지는 언더핸드 폼의 효과와 뚝 떨어지는 구종인 커브가 제대로 조합되면 아래에서 솟았다가 다시 뚝 떨어지는 그런 마구가 나온다.] 지금도 역대 최고의 커브볼을 뽑자면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 이 구종은 이강철을 매우 유니크한 투수로 만들어줬는데, 그 이유는 언더핸드 투수가 커브를 장착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언더핸드 투수는 투구폼의 구조 상 손목이나 릴리즈 포인트 등 여러 문제로 커브를 던지기 힘든 경우가 많다. 비슷한 이유로 포크볼을 구사하는 언더핸드 투수 또한 매우 적다.] 하지만 의외로 언더핸드 투수들의 주무기로 많이 이용되는 싱커는 별로 안 던졌는데, 많이 맞아나가서인지 당시 배터리를 이루던 [[장채근]]과의 상의 끝에 봉인했다고 한다.[* 정작 마구마구에서는 싱커의 등급이 높은편.[[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date=20140613&rankingSectionId=107&rankingType=popular_day&rankingSeq=8&oid=456&aid=0000000694|#]]] 사실 이강철의 플레이 스타일이 삼진을 잡는 데 맞춰져 있어 땅볼 유도에 효과를 보이는 싱커를 쓸 필요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별로 안 던졌다 뿐이지 주력 구종 중 하나였는데, 주로 삼진을 잡기 힘든 선수를 처리하거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혹은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쓰곤 했다. 싱커 자체도 꽤나 훌륭했던지라 당시에도 [[정대현(1978)|최고의 싱카볼 투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 또한 이강철은 공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줄 아는 투수였다. 완급 조절에 있어서는 리그 최강의 투수중에 하나였으며 실제 전성기 시절 이강철의 투구를 보면 공이 배트를 피해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언더핸드하면 땅볼 투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강철은 슬라이더와 직구의 변화각과 완급 조절을 이용해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던 투수이기도 했다. 언더핸드 투수 중 이닝대비 탈삼진율이 매우 높은 게 그 증거.. 그래서 선동열, 정민철, 주형광 같은 괴물 같은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90년대에도 심심챦게 탈삼진 순위에 이름을 올리던 투수였다. 특히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는 [[송진우(야구선수)|송진우]]보다 앞서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특기할 점이다.[* 송진우가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뺏긴 했지만 이는 송진우가 이례적으로 롱런했기 때문이다. 둘은 같은 1989년에 데뷔했다. 이강철이 송진우와 비슷한 커리어를 썼다면 지금까지도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 소유자는 이강철이었을 것이다.] 해태팬 한정으로 기복이 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3점대 평균 자책점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안정적인 투수였다. 다만 피홈런이 많았고 그 피홈런이 결정적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기억이 있는 것. 게다가 해태의 경우 모든 투수들이 선동열과 비교 당할 수 밖에 없는데 선동열과 비교해서 기복이 심하지 않았다라고 할 만 한 투수는 전성기의 최동원, 김시진 뿐이라.... 이강철이 홈런을 많이 맞았던 건 사실이다. 오죽하면 투고타저 시기에 주로 활동했음에도 홈런공장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을까. 하지만 언더핸드는 투구폼 특성상 배팅볼로 던져주는 각도와 비슷한데다 구속도 다른 폼에 비해 불리하다 보니 피홈런에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이강철에 앞선 언더핸드 에이스였던 [[한희민]] 역시 홈런공장장이라는 오명이 붙곤 했다. 그런데 유독 이강철의 피홈런은 임팩트있는 경우가 많았다. [[김기태(1969)|김기태]]와 [[이승엽]]의 프로 커리어 첫 홈런을 허용했고, 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나서는 [[빵 사건]]이 일어났다. == 지도자 경력 == ===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 ||||<:><#c70125> {{{#ffffff KIA 타이거즈 No.72[* 2006~2007 시즌]}}} || ||||<:><#091231> {{{#ffffff 이강철(李强喆)}}} || ||||<:><#c70125> {{{#ffffff KIA 타이거즈 No.77[* 2008~2012 시즌]}}} || ||||<:><#091231> {{{#ffffff 이강철(李强喆)}}}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113103313044.jpg]] || || (출처 : 포토로) || 2005 시즌 끝나고 은퇴했으며[* 이 시즌 끝나고 베테랑 이강철, 조규제, 홍현우가 옷을 벗었으며, 최상덕+마해영은 LG로 트레이드 되는 팀 개편이 있었다.], 은퇴 후 [[KIA 타이거즈]]에서 불펜코치와 투수코치를 맡았다. 특히 옆구리 투수 키우는 데 일가견이 있어, 불만 질러대던 [[손영민]]을 필승조 불펜으로 키워내는데 성공했고 2009 시즌 [[유동훈]]을 언터쳐블 클로저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9020043|기사보기]] 다만 2009년 유동훈의 무시무시한 성적(대표적으로 0점대 방어율)은 다른 시즌의 성적과 비교해봤을 때, 플루크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BABIP 수치가 유독 낮게 나왔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의 몸에 맞는 공 숫자로 대표되는 제구력 문제는 이강철 코치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는 평이 대세. ==== 2010 시즌 ==== 불펜코치를 맡다가 데스기모토. 즉 [[스기모토 타다시]]가 2군으로 내려가자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후반기에도 불펜진이 여전이 엉망이어서 스기모토와 함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코치로 승격되자마자 8월 1일 인천 SK전에서 선발투수 [[아킬리노 로페즈|로페즈]]가 4회말 투구 도중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나광남 주심에게 항의하고 계속 궁시렁대자 마운드 위에 올라가서 진정시키고 공수교대 이후 또 덕아웃에 내려와서 궁시렁대자 락커룸으로 로페즈를 끌고가서 '''야이 [[개새끼]]야!'''라고 우리말 육두문자를 시전하면서 곧바로 진정시켰다.[* 이 경기 이후 [[이순철]] [[MBC ESPN]] 해설위원의 트위터에 올라온 내용.[[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100801.jpg]]] ==== 2011 시즌 ==== 2011 시즌을 앞두고 그대로 1군 투수코치를 맡았는데, 불펜진이 '완전히' 붕괴되고 치솟은 방어율과 미친듯이 늘어나는 볼넷과 피홈런수때문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올드 타이거즈 팬들의 본거지인 호사방에서까지도 예외는 아니였다. 결국 건강을 이유로 야구계에 은퇴하여 일본에서 요양중인 칸베 토시오 전 기아 투수코치가 무너진 기아 투수진을 살리기 위해 투수 인스트럭터로 방문하여 일시적인 성과는 냈으나 칸베옹의 귀국 뒤 다시 원상복귀. 준PO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 2012 시즌 ==== 하지만 감독이 [[선동열]]로 바뀌었음에도 살아남았다. 사표를 냈었지만 선동열이 만류하고 같이 하자고 했다고. 현역시절에 원정을 가면 숙소에서 항상 선동열과 같은 방을 쓰던 방장-방졸관계라 워낙 둘이 친한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군 불펜코치로 2012년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기아 투수진이 붕괴되자, 4월 25은 선동렬 감독은 다카하시 미치타케 투수코치를 2군으로 보내고 이강철을 1군 투수코치로 발령.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중하위 픽이었던 [[홍성민]]을 잘 굴려 1군에서 요긴하게 써먹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언더투수 육성 능력은 있지만, 역시 문제는 그것 말고는 투수코치로서 이렇다 할 강점이 없다는 것. 그나마 선동열 감독이 투수진을 직접 관리해서 그런지 2011년보다는 욕을 덜 먹고 있는 상황였이다. 헌데 시즌이 끝난 후 뜬금없이 [[넥센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0&aid=0000028571|#]] 2012년 시즌 종료 후부터 넥센의 감독을 맡게 된 [[염경엽]]과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라는 친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기하게도 선동열, 염경엽, 이강철 모두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 [[넥센 히어로즈]] 코치 시절 === ||<#820024><:> {{{#ffffff 넥센 히어로즈 No.89}}} || ||<#808285><:> {{{#ffffff 이강철(李强喆) }}} || ||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A%25B0%2595%25EC%25B2%25A0_%25EB%258D%2595%25EC%2595%2584%25EC%259B%2583.jpg|width=425]] || [[파일:Gjxql2k.jpg|width=410]] || || [[넥센 히어로즈]] 코치 시절 || 고교 후배이기도 한 [[염경엽]] 전 넥센 감독과 커플룩 || ==== 2013 시즌 ==== 2013 시즌 시작전 투수총괄 겸 수석코치의 보직을 부여받았으나 사실상 투수쪽으로는 사이드암 선수들만 신경썼을뿐 투수에 대한 운영은 [[최상덕]] 코치가 했다. 시즌 초반 옆구리 [[김병현]]과 [[한현희]]는 확실히 작년보다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시즌 종료 후 결산을 하자면, [[한현희]]는 완전히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고, [[마정길]]은 쏠쏠하게 전천후로 역할을 맡아주었지만 [[김병현]]은 결국 후반기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 2014 시즌 ==== 2014년 4월 25일 5.2이닝 12피안타 2피홈런 3볼넷 11실점을 기록하며 내려간 [[문성현]]을 조련하여 6일만인 5월 1일 6이닝 6이닝 무실점 퀄리티 스타트, 82구 4피안타 1볼넷 4K을 던지는 투수로 변신시켰다. 구속도 5km/h 넘게 올라가서 최고구속 148km/h를 찍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43177|문성현의 투구폼을 미세조정]]하여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43594|하나 '두울' 셋]]의 리듬으로 던지게 하고 여타 세세한 것을 조정한 것이 큰 효험을 보였다. 팬들은 이강철이 투수코치까지 겸해 달라며 기쁨의 환성을 올리고 있었는데... [[문성현]]은 [[507 대첩|5월 7일]]에 등판하여 2이닝 12실점하였다. 이강철도 투수코치로 좋은 평을 못 들었던 이유가 있었고 [[문성현]]도 [[답이 없다]]. 5월 중순 이후 6월까지 넥센 투수진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팬들의 비판도 슬슬 늘어나는 추세다. 6월 11일 재활코치로 있던 [[류영수]] 코치[* 오랫동안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서 투수코치 생활을 한 사람이라 분위기를 잘 아는 코치다.]가 1군 메인 투수코치로 올라오게 되면서 수석코치의 본 임무로 돌아갔다. 6월 13일 "요즘 투수들은 요령이 없어" 라는 인터뷰를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456&article_id=0000000694|기사]] 8월 이후 언더핸드 [[김대우(1988)|김대우]]가 평자 2.70을 찍으며 선발진에 안착하자 다시 넥센 팬들의 호감이 상승하고 있다.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배터리코치가 친정 팀 [[LG 트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복귀하면서 이강철도 [[두산 베어스]] 이적설이 기사로까지 나왔으나, 구단과 본인이 낭설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도 수석코치로 [[염경엽]] 감독을 보좌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혀갤에서는 두산의 영입 시도 자체는 사실이나 염감에게 의리를 지켜 남은 게 아니냐고 추측. ==== 2016 시즌 ==== 2016년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사이드암 투수 [[신재영]]에게 불펜코치 [[박승민]]과 더불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3&aid=0003170502|#]] 동시에 시즌 시작 전 언더투수코치가 없는 삼성으로 이적한 [[김대우(1988)|김대우]]가 폭망하면서 이강철의 코칭 능력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이 사퇴한 이후 심재학 수석코치로 내정되어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11월 5일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가 나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36|이강철 전 코치 “넥센과 함께 한 4년, 잊지 못할 것”]], 여기서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의중을 강력하게 드러내기도. ===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 ||||<#131230><:> {{{#ffffff 두산 베어스 No.71}}} || ||||<#ed1c24><:> {{{#ffffff 이강철(李强喆)}}} || [[파일:이강철 두산.jpg]] 2016년 12월 1일 [[조웅천]], [[이용호(야구)|이용호]], [[최경환(야구)|최경환]]과 함께 두산 베어스 코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떴다. 2017년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직을 맡게 됐다. 2017년 11월 2일 [[한용덕]] 수석코치가 [[한화 이글스|한화]]감독으로 가는 바람에 자리가 공석이 되어서 2018년 시즌 수석코치로 내정 되었다. 1군 투수코치 자격도 겸하며 작년 한용덕의 포지션을 그대로 맡게 되었다. 2016 시즌에 비해 두산 투수들의 혹사가 많이 줄었다. 특히 선발진의 투구수 관리가 칼같아졌다. [[김강률]]과 [[김승회]]의 부진과 부상, 이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부하가 걸린 [[유희관]]과 [[장원준]] 때문에 영건 불펜들이 많이 굴렀지만, 차츰 상태가 좋아지면서 연투나 투구수도 관리해주는 편이다. 4월에 곽빈, 박치국, 함덕주가 그렇게 굴렀지만 단 한 번의 3연투도 없었다는 것은 특기할 점. 6월 15일 현재까지 불펜 투수의 3연투는 [[이영하(야구선수)|이영하]]가 딱 한 번 했었고, 이마저도 3일 내내 투구수가 적었다. 특히 영건 사이드암 [[박치국]]에게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10090698|투구 밸런스와 커브 구사, 체인지업까지 전수하였고]], 박치국은 입단 2년차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리그 구원 WAR TOP10에 드는 불펜 투수이자 두산의 셋업맨으로 거듭났음은 물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까지 선발되어 금메달까지 얻고 병역특례도 받았다. ~~강철매직~~ 다만 한국시리즈에선 젊은 투수들의 발전가능성만 보였을 뿐 준우승으로 마감짓고 2018년 11월 12일 [[두산 베어스]] 수석 코치직을 마무리지었다. === [[kt wiz]] 감독 시절 === ||||<#000000><:> {{{#ffffff kt wiz No.71}}} || ||||<#ff0000><:> {{{#ffffff 이강철(李强喆)}}} || 2018년 10월 20일,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뒤를 이어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41&aid=0002842359|kt wiz의 3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나름대로 [[kt 위즈]]로썬 사정이 있었다. 2018년 10월 19일 [[이숭용]] 단장이 후임감독을 고심한 끝에 이강철 수석에게 제안을 했었고 고심한 끝에 이강철 수석은 [[김태형(1967)|김태형]] 감독과 [[김태룡(1959)|김태룡]] 단장과 의논한 끝에 수락을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전년 작년까지 수석이었던 [[한용덕]] 감독 때의 선례를 고려한 두산의 배려가 있었다. 지난해는 팀 분위기를 고려해 발표 시기를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로 미뤘는데, 그 결정이 오히려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이미 결정된 일,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전에 발표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이숭용]] 단장은 "장기적 강팀을 꿈꾸는 KT의 그림을 가장 잘 그려주실 분"이라는 판단을 했으며 “경험과 인성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고 육성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분으로 생각했다. 이 감독님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고 KT라는 팀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색깔을 입힐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강철수석은 현재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비를 위해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가 중이라 대면이 아닌 유선으로 제의를 받고 승락을 얻었다. 이 단장은 “찾아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이지만 일본에 계셔서 부득이하게 유선으로 말씀드렸다. 2018년 10월 19일 제안을 했고 2018년 10월 20일 확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시리즈 전에 대승적으로 발표를 허락해준 두산에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437473|선임 배경]]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143438|두산 동의]] == 트리비아 == * 2013년 정규리그가 끝나고 KIA의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분류되었다. 염경엽 감독 옆에서 수석코치를 하고 있는 이강철이 메리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김평호]] 기아 코치도 팬들과 소통을 잘하고 평가도 괜찮아 감독 후보로 거론되지만 외야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투수 출신인 이강철이 더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 2013년 열린 제2회 슈퍼게임 9회초에 등판하여 평균 100km/h의 흑마구로 일본 레전드들을 멋있게 능욕했다. * [[장채근]]이 말하길 동료시절, 자주 자신의 피부를 유독 좋아 했다한다. 장채근 자신이 상의를 탈의하고 있으면 자신 곁으로 와선 '''“형 피부가 너무 뽀얗고 부드럽다”'''며 몸 구석구석을 만지곤 하던 이상한 녀석이라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44591|#]] [[파일:/image/410/2012/12/08/20121206_1354784088.jpg_59_20121208092402.jpg]] 90년대 초 [[무등산]]에서 해태 선수들과의 야유회에서 [[장채근]]과 찍은 사진. * 그가 코칭을 해준 사이드암 투수들이 그가 팀을 떠난 후 불을 지르는 경향이 있어 사이드암 코칭에만 특화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대표적으로 KIA의 0점대 마무리였던 유동훈과 넥센의 16시즌 신인왕 신재영. ~~그럼 박치국도?~~ == 연도별 주요 성적 == * '''{{{#red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기록. ||<-17><#000000> {{{#FFFFFF 역대 기록}}} || || {{{#FFFF00 연도}}} || {{{#FFFF00 소속팀}}} || {{{#FFFF00 경기수}}} || {{{#FFFF00 이닝}}} || {{{#FFFF00 승}}} || {{{#FFFF00 패}}} || {{{#FFFF00 세}}} || {{{#FFFF00 홀}}} || {{{#FFFF00 승률}}} || {{{#FFFF00 ERA}}} || {{{#FFFF00 피안타}}} || {{{#FFFF00 피홈런}}} || {{{#FFFF00 4사구}}} || {{{#FFFF00 탈삼진}}} || {{{#FFFF00 실점}}} || {{{#FFFF00 자책점}}} || {{{#FFFF00 WHIP}}} || || 1989 ||<|11> [[해태 타이거즈|해태]] || 36 || 195⅓ || 15 || 8 || 5 || - || .652 || 3.23 || 153 || 13 || '''85'''[br](5위) || '''137'''[br](4위) || 74 || 70 || 1.17 || || 1990 || '''44'''[br](3위) || '''{{{#red 220⅔}}}'''[br](1위) || '''16'''[br](3위) || 10 || 5 || - || .615 || 3.14 || '''163'''[br](3위) || '''{{{#red 24}}}'''[br](1위) || '''93'''[br](3위) || '''165'''[br](2위) || '''84'''[br](3위) || '''{{{#red 77}}}'''[br](1위) || 1.12 || || 1991 || 36 || '''214⅔'''[br](2위) || '''15'''[br](5위) || 11 || 3 || - || .577 || 3.19 || 158 || '''{{{#red 29}}}'''[br](공동 1위) || 69 || '''193'''[br](2위) || '''87'''[br](3위) || '''76'''[br](3위) || '''0.99'''[br](3위) || || 1992 || 33 || '''217⅓'''[br](2위) || '''18'''[br](2위) || 9 || 0 || - || .667 || 3.44 || '''179'''[br](4위) || '''{{{#red 29}}}'''[br](1위) || '''87'''[br](5위) || '''{{{#red 155}}}'''[br](1위) || '''88'''[br](4위) || '''83'''[br](2위) || '''1.15'''[br](5위) || || 1993 || 31 || 154 || 10 || 10 || 1 || - || .500 || 3.04 || 113 || 9 || '''78'''[br](5위) || '''131'''[br](4위) || 60 || 52 || 1.16 || || 1994 || 33 || 185⅔ || 12 || 15 || 1 || - || .444 || 3.64 || 150 || 19 || '''{{{#red 122}}}'''[br](1위) || '''140'''[br](5위) || '''86'''[br](2위) || '''75'''[br](5위) || 1.37 || || 1995 || 29 || 150 || 10 || 10 || 1 || - || .500 || 3.30 || 127 || 15 || 71 || 126 || 60 || 55 || 1.20 || || 1996 || 28 || 153⅔ || 10 || 9 || 1 || - || .526 || 2.46 || 114 || 11 || 60 || 119 || 43 || 42 || '''1.05'''[br](5위) || || 1997 || 30 || 162⅔ || 11 || 3 || 2 || - || '''.786'''[br](2위) || 2.99 || 130 || 14 || 75 || 128 || 63 || 54 || 1.17 || || 1998 || 31 || '''179⅓'''[br](5위) || '''15'''[br](3위) || 11 || 0 || - || .577 || 3.11 || 165 || 18 || 65 || '''160'''[br](4위) || 70 || 62 || 1.18 || || 1999 ||<-16> 1군 기록 없음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2000 || [[삼성 라이온즈|삼성]] || 14 || 37 || 1 || 4 || 0 || 0 || .200 || 7.30 || 45 || 8 || 22 || 20 || 33 || 30 || 1.68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2001 ||<|5> [[KIA 타이거즈|KIA]] || 27 || 56 || 2 || 3 || 1 || 1 || .400 || 6.91 || 59 || 9 || 31 || 50 || 43 || 43 || 1.41 || || 2002 || 66 || 105 || 5 || 2 || '''17'''[br](5위) || 8 || .714 || 3.17 || 82 || 12 || 46 || 97 || 41 || 37 || 1.12 || || 2003 || 67 || 68⅓ || 6 || 4 || 9 || '''14'''[br](3위) || .600 || 1.98 || 42 || 7 || 31 || 57 || 21 || 15 || 0.95 || || 2004 || '''79'''[br](3위) || 85⅓ || 6 || 2 || 7 || 7 || .750 || 2.95 || 68 || 9 || 39 || 56 || 29 || 28 || 1.16 || || 2005 || 18 || 19⅔ || 0 || 1 || 0 || 3 || .000 || 3.20 || 23 || 1 || 12 || 15 || 7 || 7 || 1.58 || ||||<:> '''[[KBO]] 통산'''[BR](17시즌) || 602 || '''2204⅔'''[br](3위) || '''152'''[br](3위) || 112 || 53 ||33 || 0.576 || 3.29 || 1771 || '''218'''[br](3위) || '''986'''[br](2위) || '''1749'''[br](2위) || 889 || 806 || 1.17 || ||||||<#000000> {{{#ffffff 완투, 완봉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 1989년 || 8완투 || 3완봉 || || 1990년 || '''{{{#red 10완투}}}'''[br](공동 1위) || 1완봉 || || 1991년 || '''11완투'''[br](공동 4위) || '''2완봉'''[br](공동 4위) || || 1992년 || '''12완투'''[br](4위) || '''2완봉'''[br](공동 4위) || || 1993년 || 2완투 || 1완봉 || || 1994년 || 5완투 || 1완봉 || || 1995년 || 4완투 || 2완봉 || || 1996년 || 5완투 || 2완봉 || || 1997년 || 5완투 || 2완봉 || || 1998년 || 3완투 || 2완봉 || ||<:> '''[[KBO]] 통산''' || 65완투 || '''18완봉'''[br](5위) || == 지도자 시절 == ||<-8><#000000><:> {{{#ffffff 역대 감독 전적}}}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승 }}}''' || '''{{{#ffffff 패}}}''' || '''{{{#ffffff 무}}}''' || '''{{{#ffffff 정규리그}}}''' || '''{{{#ffffff 포스트시즌}}}''' || ||2019||<|3> '''[[kt wiz]]''' || || || || || || || ||2020|| || || || || || || ||2021|| || || || || || ||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분류:북구(광주) 출신 인물]] [[분류:1966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분류:언더핸드 투수]] [[분류:해태-KIA 타이거즈 은퇴/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