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이라크)] [include(틀:서아시아의 정치)] [include(틀:이라크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이라크]]의 [[정치]]에 대한 문서. == 역사 == === [[이라크 왕국]] === === [[아흐마드 하산 알 바크르]] 정부 === [[바트당]]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바크르 정부가 수립되었다. 바크르는 대통령 자리에 앉았는데,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정보부장을 후세인한테 넘겨줬다. 후세인은 이 때 정보부장을 하면서 경쟁 [[정치인]]들의 약점을 잡고, 농업부 장관을 하면서 이라크의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시행한다. 그 이후 후세인은 농지개혁을 성공한 이후, 석유장관에 올라 [[영국]] 등 서방국가가 소유한 이라크 석유기업들의 [[국유화]] 조치를 했는데, 후세인은 석유기업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국유화 이후 [[소련]], [[프랑스]], [[폴란드 인민 공화국]] 등에 미리 석유 수출계약을 해놓았다. 때문에 영국, [[미국]] 등이 후세인을 비난했지만 후세인은 비교적 손쉽게 국유화 사업을 마무리짓는다. 이로써 바크르 정부에서 석유장관을 한 후세인은 이라크 [[부통령]]에 취임했고, 이라크의 [[문맹]]률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대학]] 제도를 정비하여 이라크 교육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각종 사업을 성공적으로 한 후세인을 보면서, '''군 경력이 하나도 없던 후세인'''한테 이라크 군부가 충성하며 바크르는 후세인에 의해 '''실각당했다'''. === [[사담 후세인]] 정부 === [youtube(kLUktJbp2Ug)]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전당대회]] 자백문서 읽기 쇼. [[이라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 능력 뛰어난 후세인은 정권을 잡으니까 타락하기 시작한다. 자기 심복들을 바트당 [[전당대회]]때 전당대회장에서 [[고문]]으로 조작한 자백문서 읽기 쇼로 '''모조리 [[토사구팽]]'''[* 사담 후세인의 최측근이자, 바크르 대통령을 설득하여 사퇴시킨 [[아드난 함다니]] 재무장관까지 숙청해서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후세인은 함다니의 유족한테 새로운 집을 만들어주고, 아드난 함다니의 여동생인 니달 알 함다니를 3번째 [[부인]]으로 맞이하는 기획력을 선보인다.]하고,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다. 후세인은 [[이란 이슬람 혁명]]이 터지자, [[이란]]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국력인 [[이라크]]의 [[국력]]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차단하고 겸사겸사 영토도 늘리고 이란한테 [[전쟁배상금]]도 뜯으려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초반에는 기습을 한 [[이라크군]]이 우세했지만, 이란군이 반격하고 기본적인 물량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전쟁은 이후 [[이란군]]한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후세인은 나라 [[멸망]]의 위기감을 느끼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같은 친미 성향의 아랍 왕국들의 군사 지원과 외교적 지지까지 받아내고, 이란 내에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이라크 국경에서 싸우는 등 간신히 이란군의 반격을 저지했다.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얻은 게 하나도 없자,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병탄했다. 그러나 [[미국]] 등 다국적군이 [[1991년]] [[걸프 전쟁]]을 일으켜 침공하여 [[사담 후세인]]은 걸프 전쟁의 참패로 후세인은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반발하는 인원들을 [[대숙청]]하여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이 테러를 당한 것은 알라의 천벌"'''이라는 [[개드립]]을 [[TV]] 방송으로 내보냈고 [[미국]] [[조지 W. 부시]]의 '''[[사망 플래그|분노 게이지를 폭발시켰다]]'''. === [[이라크 전쟁]] 이후 ===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은 조지 W. 부시가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게 명백해지자 대통령직에서 [[사퇴]]하고 이라크 전역에서 도피행각을 했으나 결국 [[미군]]에 잡혀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 [[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군정]]을 실시하다가 사실상 반속국인 이라크 정부를 만들었다. 이라크는 종파 간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직은 관례적으로 쿠르드족이 차지하고 총리는 이슬람 시아파, 국회의장은 수니파가 맡는 권력분담제를 채택하고 있다. [[레바논]]과 유사하다. 그래서 대통령들은 [[쿠르디스탄 애국 연합]] 출신들이다. ==== [[누리 알 말리키]] 정부 ==== [[누리 알 말리키]] 시기인 2010년 이라크 법원은 친 사담 후세인 인사 세력들이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00205/25952214/1|#]] ==== [[하이다르 알 아바디]] 정부 ==== ==== [[아딜 압둘 마흐디]] 정부 ==== [[2018년]] [[이라크]] [[국회]] 총선이 시행되었다. 여기서 무려 12개의 정당에 원내에 진입하며 [[연립정부|연정]] 구성이 죄다 무산되었다. 결국 12개 정당 중 8개 당이 합의하여 [[무소속]]인 아딜 압둘 마흐디를 수상으로 세우고 신정부가 탄생했다. [[2018년]] [[5월 12일]]에 총선을 했는데 [[2018년]] [[10월 25일]] 들어서야 내각 합의가 될 정도로 엄청 오래 걸렸다. 2019년 10월에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결국 사퇴를 밝힌다고 하며, 조기 총선도 치른다고 한다.[[https://www.yna.co.kr/view/AKR20191101041951009?section=international/all|#]]. 자세한 정보는 [[이라크 반정부 시위]] 참조. == [[선거]] == [[사담 후세인]] [[바트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미국]] [[군정]]에 의해 [[의원 내각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따라서 이라크는 국회 총선거가 실질적으로 정권을 좌우한다. 아직 나라가 안정기로 접어든게 아니다 보니 총선 일정이 비정기적이다. 원칙적으로는 4년에 한 번이지만 수상한테 [[의회해산]]권이 있어서, 일부 의원 내각제 국가들처럼 선거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내각불신임결의]]로 인한 총선은 거의 없다. 2005년 [[미국]]에 의해 내각제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지방선거]] 역시 시행되고 있다. 각 주 별로 시행하고 주 밑의 시, 군 단위 지방선거는 2020년부터 시행한다는데, 사상 처음으로 주, 시-군, 읍-면-동 단위까지 선출직으로 선출한다고 한다. == [[입법부]] == [[파일:Arch2O-Iraqi-Parliament-Building-03-1170x1037.jpg]] 이라크 신 국회의사당 [[조감도]]. [[2019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https://www.arch2o.com/iraqi-parliament-building-zaha-hadid/|출처]] [[사담 후세인]] 정부 시절 쓰던 이라크 국회의사당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박살났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정 때 임시의사당을 건축해서 [[2019년]] [[9월]] 지금까지 사용중이다. [[2011년]] 신 국회의사당을 건축하는 안건이 이라크를 통과했고, [[2014년]] 건축 [[조감도]]가 나온 후 공사중이다. [[이라크 내전]]으로 인해 [[바그다드]]가 [[ISIL]]한테 함락 위기도 겪는 등 공사가 순탄치 않았지만, [[2017년]] 내전이 대부분 마무리되고 공사를 재개, [[2019년]] 준공 후 입주 예정이다. == [[행정부]] == [[사담 후세인]] 정부까지는 [[대통령 중심제]]였고 이 대통령을 이라크 국회에서 뽑았으나, [[이라크 전쟁]] 이후로는 [[의원 내각제]]이다. == [[사법부]] == 이라크 사법부는 서방의 법을 받아들였으나, 그 집행에는 [[샤리아]]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일단 제도상으로는 서방 국가들과 비슷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법적 처벌은 [[사형]], [[무기징역]], [[징역]] 등의 형태이고 신체형은 [[사담 후세인]] 정권 이후로는 없어졌다. 징역형은 제한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보통 최대 20년까지 선고하고 있다. [[사형]]은 민간인 참수 등 테러리스트는 거의 무조건 선고되고 그 외에 살인범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으면 선고되는 편이며 피해자가 사망했는데 사형을 면하는 사례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크거나 미성년자거나 상해치사 같은 결과적 가중범이다. 이외 이슬람 율법에 따라 당해 만 70세가 된 자는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데, 이 때는 사형은 선고하지만 집행하지 않은 상태로 사실상 무기수로 복역하게 된다.[* [[사담 후세인]]을 항소 기각 며칠만에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사형시킨 이유 중 하나가 2007년 1월 1일부터 만 70세가 되어서였다.] == [[지방자치]] ==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지방자치]]제도가 유명 무실했다. 중앙정부는 지방을 통제할 능력이 없고 지방에서는 [[쿠르드족]]같이 강한 [[소수민족]]들도 있고 [[시아파]], [[수니파]] 갈등도 있어서... 이라크 지방정치는 [[이라크 전쟁]] 이후 [[붕괴 후 혼란기|혼란기]]를 오래 겪었지만, [[2020년]] [[4월]] 전국적인 새 지방선거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로 인해 제대로 지방행정도 안정화할 수 있을 지 지켜봐야 할 듯. == 기타 == 1958년에 군부 쿠데타로 폐지된 왕정의 복고를 주장하는 군주주의 운동도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으며, 후세인 정권 실각 후인 2005년에 왕정복귀와 1958년 군주제 폐지 이후 영국에 망명 중인 하심 구 왕가 직계 자손의 이라크 귀국 허용[*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된 이후 서방 등 국외로 도주한 팔라비 구 왕족들을 정치범 취급하며 귀국 시 사형과 같은 처벌을 현재까지 굽히지 않는 등 구 왕가가 모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나라 이란과는 달리(실제로도 이란 혁명 당시 도주한 팔라비 구 왕가에게 선고된 궐석재판에서 내린 사형판결이 현재까지도 존치되고 있다.) 이라크는 왕정 폐지 이후 쿠데타와 전쟁 등으로 정권이 여러번 뒤엎어지는 정치적 혼란을 경험한지라 구 왕가의 귀국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 일단 현재 이라크 정부는 망명 중인 하심 구 왕가가 귀국한다면 귀국 이후에도 처벌하지 않고, 구 왕가 사람들에 대한 신변 안전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IS 잔당놈들이 테러 손찌검 못하게 우리가 지켜드리겠사옵니다.~~]을 주장하던 하심 구 왕가의 방계 후손이 국회의원 후보자로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IS가 격퇴된 2010년대 이후로 정국이 안정화되고 현 이라크 정부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이라크 내에서의 왕정복고론은 힘을 잃은 상태다. 2019년 후기에 시위가 혁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과도기간이 이어졌으나 2022년 언론지수는 시리아보다 조금 더 낮게 나왔다. [[분류:이라크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