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라크의 대외관계)] [include(틀:팔레스타인의 대외관계)] || [[파일:이라크 국기.svg|width=100%]] ||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width=100%]] || || [[이라크|{{{#ffffff '''이라크'''}}}]] || [[팔레스타인|{{{#fff '''팔레스타인'''}}}]] || [목차] == 개요 ==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대외관계. == 역사적 관계 == === 고대 === 양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하고, 고대 유대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6세기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로니아 본토로 끌고 갔다.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다 왕국 북부의 [[사마리아 왕국]]은 아시리아 제국의 영향권으로 바빌로니아 대신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갈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신바빌로니아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였다. 아케메네스 제국에서는 과거 아시리아 제국의 공용어였던 [[아람어]]가 사실상 공용어로 사용되었는데, 그 결과 페르시아 시대부터 [[헬레니즘 제국]]과 [[파르티아]], [[고대 로마]]를 거치며 [[아람어]]는 팔레스타인 일대와 이라크 일대에서 폭 넓게 사용되는 [[링구아 프랑카]]로 기능하게 되었다. === 중세 === 두 지역들은 7세기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 [[이슬람 제국]]에 점령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칼리프조]]는 치세 중반 디완(회계 등을 담당하는 관청)에서 아람어와 그리스어 사용을 중지시키고 오직 아랍어로만 업무를 볼 것을 지시하는데, 이를 계기로 천 년 넘게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던 아람어는 [[아랍어]]로 급속히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아람어와 아랍어는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로 서로 공통점이 많아 아람어 사용자가 아랍어를 익히기 수월한 편인 점도 한 몫 했다.] 이라크 일대는 아랍인들의 정복 직후 [[쿠파(도시)]], [[바스라]]같은 신도시들이 들어서고 상당수의 아랍인들이 정착한 것을 계기로 초기 이슬람 제국에서 가장 무슬림 비중이 높은 지역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적어도 초창기 [[정통 칼리파 시대]]와 우마이야 칼리프조 시대까지는 상당한 수준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었고, 기독교도 인구 비중이 높게 유지되던 지역이었다.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트리고 들어선 [[아바스 왕조|압바스 칼리프조]]는 전임 왕조들과 다르게 팔레스타인 일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압바스 칼리프조의 중심지는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그리고 [[사마라(이라크)|사마라]]였고, 전성기 당시 압바스 칼리파들은 [[중앙아시아]]와 [[흑해]]를 연결하는 무역으로 얻는 수입에 관심이 더 많았다. 한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은 시아파 [[이스마일파]] 계열의 [[파티마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파티마 왕조의 세력이 서서히 몰락하자 압바스 칼리파를 섬기는 [[셀주크 제국]]이 샴(레반트 지역)을 점령하고 이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한동안 다시금 바그다드의 칼리파 정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뒤이어 시작된 [[제1차 십자군 전쟁]]의 결과 팔레스타인 일대에는 [[예루살렘 왕국]] 같은 십자군 국가들이 들어서고, [[십자군 전쟁]]이 백 년 넘게 지속되는 와중에... 13세기 몽골 고원에서 발흥한 몽골 제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바그다드를 약탈하면서 칼리파를 시해하였다. 수백여년 간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던 이라크 지역은 몽골군의 약탈과 초토화를 계기로 몰락하였다. 이라크 일대에 기반한 제국이나 정권이 팔레스타인 일대에 갑 역할을 하던 것은 압바스 칼리프조[* 카이로 압바스 칼리파 시대 제외]가 마지막이었다. === 근세 ===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이라크의 경우 북서부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남동부 지역은 [[사파비 제국]]과 같은 이란 [[시아파]] [[12이맘파]] 제국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이라크의 종교 지형은 북서부는 순니파, 남동부는 시아파로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 근대 === 오스만 제국이 약화된 것을 계기로 19세기에는 프랑스와 러시아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기독교인 보호를 구실로 예루살렘 내정 문제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와 러시아 이외에도 상당수의 서구인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였다. 다른 한편 당시 이라크의 남동부를 지배하던 카자르 왕조 역시 영국과 러시아의 간섭을 받긴 하였으나, 서구인 입식자들이 자리잡은 팔레스타인에 비하면 비교적 그 영향이 적은 편이었다. 한 편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아랍 민족주의]] 그리고 [[이슬람 모더니즘]]의 영향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일대에도 동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 20세기 === 두 지역들은 1920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라크는 1932년에 독립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경우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되었다가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1994년에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나타났다. [[제1차 중동전쟁]] 때에는 [[이라크 왕국]]은 팔레스타인 세력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후에도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세력들은 서로 협력적이었고 [[제3차 중동전쟁]] 때 이라크 공화국(1958~1968)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을 도와주었고, [[제4차 중동전쟁]] 때에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세력들과 바트당 정권 치하의 이라크 공화국은 이집트를 도왔다. [[걸프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인들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요르단과 함께 이라크를 지지했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336256?sid=104|#]],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701891|#]] 1990년 [[사담 후세인]]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입국을 전면 허용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3412112?sid=104|#]] 1990년 야세르 아라파트는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1억5000만달러에 해당되는 자원금을 받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0062879?sid=104|#]] === 21세기 === 2000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무력충돌 및 유혈사태가 일어나자 이라크는 "팔레스타인은 성전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0028910?sid=104|#]] 또한 중동에서 반이스라엘 시위가 일어날 때 이라크에서는 [[바트당]] 주도 하의 시위가 열렸으며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024477?sid=104|#]] 2000년 10월 22일 이라크는 팔레스타인에 식량과 의료품을 지원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033041?sid=104|#]] 2001년 1월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유족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051417?sid=104|#]] 2001년 3월 야세르 아라파트는 사담 후세인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059222?sid=104|#]] 2001년 8월 14일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092497?sid=104|#]] 2002년 2월 시사 주간지 뉴스워크는 바그다드에도 팔레스타인 단체 몇몇이 본부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129630?sid=104|#]] 2002년 4월 4일,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테러범에게 지원금을 증액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129630?sid=104|#]] 4월 8일, 사담 후세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에 대한 항의로 30일간 석유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150810?sid=10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0157680?sid=101|#]]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때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의 항전을 환호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142789?sid=104|#]] 팔레스타인에서 사담 후세인의 포스터나 그의 얼굴이 그려진 T셔츠가 인기가 있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344300?sid=104|#]] 이라크 전쟁 발발 당일부터 가자지구에서 13개의 정치, 사회단체들이 모여 만들었던 '이라크 지원을 위한 팔레스타인 위원회'에서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사진을 내놓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6/0000001425?sid=114|#]] 2003년 4월 바그다드가 함락되자 팔레스타인에서는 공식적 반응이 없었으나 [[하마스]]는 반이스라엘, 반미 전쟁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353612?sid=104|#]] 또한 일부 팔레스타인의 일부 과격파들은 이라크에서 반미 시위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353379?sid=104|#]] 2003년 12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자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0045111?sid=104|#]] 사담 후세인 체포를 전후하여 이라크의 시아파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린치를 가하는 사태가 빈발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0095087?sid=104|#]] [[2008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시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습하여 많은 사망자들이 나오자 이라크 내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바그다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2431477?sid=104|#]],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1989891?sid=104|#]] [[모술]]에서도 대규모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항의시위가 일어났으며, 동시에 시위 도중 자전거를 이용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 1명이 사망하고 16명의 부상자들이 나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2429740?sid=104|#]],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0202763?sid=104|#]] 2008년 12월 이라크 정부는 가자지구에 물품을 전달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2433592?sid=104|#]] 2009년 4월 5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은 이라크를 방문하여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과 [[누리 알 말리키]] 총리를 만나 회담을 나누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2591764?sid=104|#]] 2012년 11월, 아랍연맹 주재 이라크 대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관련해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무기로 이용해 미국과 이스라엘을 압박해야 한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4832125?sid=104|#]] 2017년 10월 24일,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 사담후세인 기념탑을 세웠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1024092000009|#]] == 교통 교류 ==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라크로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며, 이라크인의 경우 팔레스타인의 대다수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있다보니 이스라엘을 통해서 방문해야 되는데 이라크는 사실상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데다가 갈등이 많은 관계로 현재로서는 가지 않는다. 현재 공식적으로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은 없다. == 대사관 == 이라크 [[바그다드]]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이 있다. 또한 쿠르디스탄의 중심지 [[아르빌]]에도 팔레스타인 총영사관이 있다. == 관련 문서 == * [[이라크/역사]] * [[팔레스타인/역사]] *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 *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 [[이라크/외교]] * [[팔레스타인/외교]] * [[이라크/정치]] * [[팔레스타인#정치|팔레스타인/정치]] * [[이라크/경제]] * [[팔레스타인#경제|팔레스타인/경제]] * [[이라크인]] / [[팔레스타인인]] / [[아랍인]]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이슬람교]] / [[순니파]] / [[시아파]]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팔레스타인/외교, version=93, paragraph=2.10)] [[분류:이라크의 대국관계]][[분류:팔레스타인의 대국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