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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유신고 이성열 감독님.jpg|width=100%]]}}} || ||<-2> '''{{{+1 이성열}}}[br] LEE SUNGYUL''' || || '''{{{#ffffff 생년월일}}}''' ||[[1955년]] [[2월 27일]] ([age(1955-02-28)]세) || || '''{{{#ffffff 출신지}}}''' ||[[경상북도]] [[대구시]] 서부출장소[br](現 [[대구광역시]] [[서구(대구광역시)|서구]]) || || '''{{{#ffffff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 '''{{{#ffffff 학력}}}''' ||[[대구달성초]] - [[경상중학교|경상중]] - [[배문고등학교 야구부|배문고]] || || '''{{{#ffffff 포지션}}}''' ||[[포수]] || || '''{{{#ffffff 투타}}}''' ||우투우타[* 시구할 때 오른손으로 공을 던졌다.] || || '''{{{#ffffff 소속팀}}}''' ||[[한국전력 야구단]] (1974) || || '''{{{#ffffff 지도자}}}''' ||이문초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9~1983)[br][[덕수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84~1987) [br] [[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88~1992) [br]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95~2022)''' -----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2017, 2019)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야구감독. 1995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27년 동안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한 인물로 유명하다. == 선수 경력 ==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달성초등학교와 [[경상중학교]]를 거쳐 서울 [[배문고등학교]]로 유학을 왔다.[*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배문고 측이 진학 조건으로 숙식 및 생활비를 모두 지원해 준다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그를 지도한 은사는 배문고 9년 선배이자 지금도 이성열 감독이 멘토로 삼는 [[김인식]] 감독이었다. 배문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입단했지만, 군복무를 마친 후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고 건설사에 취직해 아예 야구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지냈다. 본인에 의하면 건설사에서 현장소장까지 해봤으며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중동 건설현장 진출 붐에 힘입어 [[쿠웨이트]]로 나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 지도자 경력 == 1979년 서울 이문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은 것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1984년 [[덕수고등학교 야구부|덕수상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수상고 부임 당시 창단 직후라 1985년 1무 16패를 기록할 정도로 전력이 처참했는데 선수들을 맹조련하여 1986년 덕수상고의 청룡기 제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즈음 덕수상고에 부임한 신임 교장과 갈등을 빚었고, 나중에는 라인업 짜는 것부터 해서 야구부 운영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등 월권 행위를 저지르자 결국 교장과 갈등 끝에 사임했다. 이후 1988년부터 [[진흥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1992년까지 재임했다. 이 시절 있었던 진흥고의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이대진]]이다. 1993~9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심판으로 일했다. 원래는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의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이 즈음 찾아온 건강 악화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야인으로 지낸 것. 1995년부터 [[유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하여 무려 27년 동안 감독으로 재임했고, 감독 재임 시절 전국대회 3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력을 높이 산 타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유신고와의 신의를 져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잔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절 키워낸 선수는 [[유한준]], [[최정]], [[배영섭]], [[정수빈]], [[최항(야구선수)|최항]], [[소형준]], [[김주원(2002)|김주원]], [[박영현]] 등이 있다. 하지만 U-18 대표팀 감독 시절 [[곽빈]]을 혹사시킨 일로 인해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평가가 나쁘다. 2019년 [[황금사자기]]와 [[청룡기]]를 차례대로 제패하며 고교야구 우승 그랜드슬램[* 대통령배,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를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대통령배 준결승전에서 충암고에 2-3으로 아쉽게 패하며 그랜드슬램은 다음 해로 미루게 됐다.[* 2019년에는 고교야구 일정의 과밀화로 전국대회 및 전국체육대회 지역예선까지 연달아 지도하고 휴식기 없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감독까지 맡아 [[과로]]가 걱정될 정도였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동메달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투수 혹사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또한 청소년 야구대표팀 감독 선임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후배 감독들에게 이제는 기회를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2022년 6월 학생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결국 자진사퇴하면서 감독 생활을 좋지 못하게 마무리하게 됐다.[[http://m.kyeongin.com/view.php?key=20220613010002283|기사]] == 우승경력 == 198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0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1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201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 여담 == * 프로야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유신고에서는 [[유한준]], [[최정]], [[배장호]], [[정수빈]], [[김민(야구선수)|김민]], [[소형준]], [[허윤동]], [[김주원(2002)|김주원]]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나 생일에 제자들이 선물을 챙겨준다고 한다. "아직 멀었다", "건방떨지 말라" 고 말은 하지만 제자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재호(야구감독)|최재호]] [[강릉고등학교 야구부|강릉고]] 감독의 [[배문고등학교 야구부]] 선배로 평소에도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두 사람 모두 김인식 감독을 은사로 모셨다. 이성열 감독은 "만약 김인식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뒷골목에서 주먹질이나 했을 것"이라 술회했다. 2004년 김인식 감독이 뇌줄중으로 쓰러져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간호했던 사람도 이성열 감독이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0823120003258?did=NA|관련기사]] * “제1의 고향은 대구, 제2의 고향은 광주, 제3의 고향은 서울 구의동”이라고 말한다. 광주가 제2의 고향인 이유는 진흥고 감독을 역임했기 때문에[* 객지 생활을 홀로 했고 사람과 술을 좋아해서 이 시기에 건강을 해쳤다고 밝혔다.], 구의동이 제3의 고향인 이유는 구의동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서다. * 2023년 11월 9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향년 98세로 상당히 장수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001&aid=0014322753|#]] [[분류:1955년 출생]][[분류:서구(대구) 출신 인물]][[분류: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배문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