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달의 문화인물)] ---- {{{+1 李純之}}} [[1406년]]([[태종(조선)|태종]] 6) ~ [[1465년]]([[세조(조선)|세조]] 11) [목차] == 개요 == [[조선]] 전기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자]]. 본관은 [[양성 이씨|양성]](陽城)[* 일시중파 10세.][* 양성(陽城)은 현재 [[경기도]] [[안성시]]이다.], 자는 성보(誠甫). 시호는 정평(靖平). [[수학]]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정인지]], [[이천(조선)|이천]], [[장영실]] 등과 함께 [[세종(조선)|세종]] 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과학자 중 1명으로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284991.html|평가]]된다. 15세기 과학자라고는 장영실 밖에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인물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 생애 == 1406년(태종 6) [[경기도]] [[안성시|양성현]](현 [[안성시]])에서 아버지 이맹상(李孟常)과 어머니 [[문화 류씨]] 류자(柳滋)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https://www.ajunews.com/view/20191118092313912|#]] 생원시에 입격하고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조선)|세종]] 9) 친시(親試) 문과에 을과 2등 1위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a_1427_000516|급제하였다]]. 관직은 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문무관의 품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종1품)에 이르렀다. 이전까지 조선은 [[명나라]]의 [[역법]](曆法)을 받아들여 사용하였으나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하였다. 이에 따라 1433년 세종의 독자적인 역법을 발명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천 등과 함께 제작에 들어가서 1442년 조선의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編)과 칠정산외편(七政算外編)[* 칠정(七政)이란 7개의 움직이는 별로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나타낸다.]을 편찬해 냈다. 칠정산내편은 [[중국]] 역법, 칠정산외편은 [[아랍]] 역법을 참조해 만든 것이다. 그를 통해 조선은 천체의 운행을 [[한반도]]의 땅과 하늘에 맞춰 계산하게 되었다. 장영실이 개발한 [[혼천의]], [[간의]], [[자격루]]의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수학에도 능해 [[토지]] 측량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 기타 == * 이순지가 칠정산을 만들고 있을 때 [[나라]]의 중요한 국책 [[사업]]인 역법 개발 사업에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아 세종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이순지가 답하기를 "진급이 느려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그 일 하는 사람들 진급을 최대로 올려라. 그럼 되느냐?" 그러니까 이순지가 또 안된다고 하면서 "일은 고되나 봉급은 적습니다" 그러자 세종이 답했다. "그럼 봉급만 올려주면 되느냐?" 이순지 왈 " 기관장의 직책이 낮은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래서 세종이 얼마나 높으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이순지는 당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내고 있던 정인지[* 세종 대 [[관학파]] 계통의 [[신하]]로서 [[과학]]과 수학은 물론 [[역사]] 및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 대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학자]]이다. 특히 여러 기록에 따르면 수학, [[계산]]에 있어서 정인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정인지는 세종의 수학 [[과외]] 선생님이었다.]를 지목했다. 세종은 허락했고 역법 개발 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삼년상]]을 치르러 내려간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세종은 이순지에게 복직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순지는 "5살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어머니께서 [[유모]]도 없이 저를 키웠습니다. 그런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벼슬]]이 웬말이십니까?" 라며 상서를 올렸지만 세종은 윤허할 수 없다며 그를 복직시켜 상중에 왕실로 들어와 다시 근무하게된다. * [[지구 구형론|지구설]]과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까지 했다는 '''낭설'''이 있다. 하지만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천상열차분야지도]] 해설서)를 보면 분명하게 [[천원지방]]과 천동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낭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순지가 1427년 월식의 그림자로 지동설을 입증했다고 하는데, 일월식 계산 자체는 천동설로도 멀쩡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이순지는 1427년 갓 과거에 급제했다. * 이순지의 [[딸]]인 이씨와 가인 [[사방지]]간의 [[스캔들]]로 인해 가정을 제대로 관리 못한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파직되었다가 열흘뒤 복직했다.[[https://sillok.history.go.kr/id/kga_10805012_002|#]] ] * [[성종(조선)|성종]]은 과거 세종대왕 때 이순지같은 학자들이 왜 자기 대에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 대중매체에서 == * 2008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배우 [[김홍표]]가 연기했다. 산학(수학)과 천문학 등을 연구하는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나온다. "[[서울특별시|한양]]의 위도를 알아냈다"며 기뻐하다가 책장에서 굴러 떨어지고 상관인 [[최만리]]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는 학사로 나온다. 최만리가 조선어에 서툰 외국계 학사인 설순을 함께 꾸짖으며 "조선말 제대로 모르는 놈에 산학에 미쳐서 예의도 모르는 바보까지 있으니 원!"이라며 혀를 찰 정도. 또한 장영실을 상사이자 선배 과학자로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SBS)|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천재호가 연기했다. 제12화에서 <칠정산> 내편을 완성하고 <칠정산> 외편을 만들고 있는 발언을 하는데 사실 <칠정산> 외편은 극 중 연도와는 달리 1444년에 이미 만들어졌다. 제16화에서 [[세종(용비어천가 시리즈)|세종]]과 삼강행실도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삼강행실도를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풀어 설명하겠다"는 세종의 의도에 "삼강행실도를 배포해도 패륜을 저지르는 자는 있는 것입니다"라고 태클을 건다.] 원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창손]]이 제기했던 문제이다.[* 극 중에서 이순지는 세종에게 "네 놈이 선비냐? 네 놈이 유학자야?"라는 면박을 들었는데 실제로 정창손이 세종에게 들었던 면박은 더 노골적이다.] * 2016년 [[KBS]] 드라마 <[[장영실(드라마)|장영실]]>에서는 배우 이병훈이 연기했다. * 2019년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배우 [[오광록]]이 연기했다. [[장영실]]의 재주를 처음 알아보고 세종께 고해 등용되게 하는데 장영실이 만든 간의를 이용한 천문 관측으로 조선과 중국의 시차가 30분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황희(조선)|황희]]가 이끄는 숭명파 대신들이 명나라에 일러바쳐 명나라 사신이 와서 자기 눈 앞에서 "간의를 철거해 불태우라"고 요구하자 횃불을 들었으나 차마 태우지 못하고 있자 세종이 직접 횃불을 빼앗아 간의를 태운다. 세종의 본심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상황. == 관련 항목 == * [[교식추보법]] * [[교식통궤]] * [[오성통궤]] * [[제가역상집]] * [[칠정산]] [[분류:조선의 문관]][[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양성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천문학자]][[분류:1406년 출생]][[분류:146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