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Q 매거진 선정 음악사를 바꾼 21인)] ---- [include(틀:조이 디비전)] ---- ||<-2> '''{{{+1 이안 커티스}}}[br]Ian Curtis'''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36.media.tumblr.com/tumblr_ncndyoB9Rh1sn1niho4_400.jpg|width=100%]] }}} || || '''본명''' ||Ian Kevin Curtis[br]이안 케빈 커티스 || ||<|2> '''출생''' ||[[1956년]] [[7월 15일]] ||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트래포드 스트랫퍼드 || ||<|2> '''사망''' ||[[1980년]] [[5월 18일]] (향년 23세) || ||[[잉글랜드]] [[체셔주]] 메이클즈필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 || '''직업''' ||[[가수]] || || '''소속''' ||[[조이 디비전]] || || '''악기''' ||[[보컬]], [[기타]][* [[버나드 섬너]]가 신디사이저를 연주할 때는 직접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섬너의 기타를 연주했으나, 1979년 9월 이후 자기 기타를 마련했다. 기타 모델명은 Vox Phantom Special VI. 뉴 오더의 초창기 시절 섬너는 이안의 기타를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멜로디카]] || || '''활동 시기''' ||[[1976년]] ~ [[1980년]] || || '''신체''' ||185cm || || '''배우자''' ||데보라 커티스 ^^(1975년 ~ 1980년)^^ || || '''자녀''' ||나탈리 커티스 ^^(1979년 출생)^^|| ||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external/consequenceofsound.files.wordpress.com/iancurtis.jpg]]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활동했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 4인조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특이한 중저음 목소리와 막춤으로 조이 디비전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본인은 간질 증세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23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후 조이 디비전은 해체되지만, 남은 멤버들은 [[뉴 오더]]라는 그룹을 만들어 [[신스팝]]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일찍 사망했지만 대중음악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1970년대 말~1980년을 상징하는 음악가들 중 하나로 꼽힌다. == 생애 == === 어린 시절 === 195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터 시와 문학을 탐닉한 이안은 장학금을 받을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학업보다는 예술에 관심이 있어 학교를 그만두었다. 10대 시절에는 [[데이비드 보위]], [[짐 모리슨]], [[이기 팝]]같은 뮤지션들에게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가 되던 1975년 소꿉친구였던 데보라 우드러프(Deborah Woodruff)와 결혼하였다. === [[조이 디비전]] 활동 === 1976년 맨체스터를 방문한 [[섹스 피스톨즈]]의 콘서트에서 같은 동네 친구였던 [[버나드 섬너]], [[피터 훅]], 테리 메이슨과 함께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 이후 모집을 통해 드러머 [[스티븐 모리스]]를 영입하면서 밴드의 라인업이 완성되었고, 밴드의 이름은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Low]]의 노래에서 따온 바르샤바(Warsaw)로 정한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의 그룹이 활동한다는 것을 알고서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결정 되었다. 에후의 밴드 활동은 조이 디비전 항목 참고. === 우울증과 사망 === [[파일:214524.jpg]] 사망 5일 전, 자신의 딸과 함께 찍은 생전 마지막 사진. 1978년 처음 [[발작]] 증세를 가지게 되었고 조이 디비전 활동을 계속하면서 이안은 점점 [[우울증]]과 [[뇌전증]] 증세로 건강이 악화되어 간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결혼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음악가로서의 야망에 균형을 맞추는 데에 큰 부담을 느꼈다. 그러던 중 이안은 아닉이라는 저널리스트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게 됐고 결국 1980년 5월 18일 조이 디비전의 첫 미국 투어를 앞두고 자택 부엌에서 빨랫줄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시신은 아내 데보라가 처음 발견하였고 발견한 당시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0년 아닉은 이안과는 불륜 관계가 아니었으며, 두 사람은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안이 죽고 2개월 뒤 조이 디비전의 마지막 정규 앨범 '[[Closer(조이 디비전)|Closer]]'가 발표되었다. 'Closer'의 수록곡 중에는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가사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조이 디비전의 멤버들은 이안이 죽고 난 뒤에야 그의 가사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았다고 말했다. [[팩토리 레코드]]의 사장 토니 윌슨은 후일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그의 자살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 위험을 완전히 과소평가했다.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는 멍청했다"라고 말했다. [[https://faroutmagazine.co.uk/new-order-peter-hook-far-superior-blue-monday/|#]] 이안이 사망한 뒤 남은 조이 디비전의 멤버들은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뉴 오더]]이다. === 읽을거리 === * 노래할 때와 달리 평소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테너에 가까웠다고 한다. 바르샤바 시절의 EP와 [[https://youtu.be/DauN0oHgh4A?si=tOU6wCqMEwprq6um|인터뷰 음성]]을 들어보면 정규 앨범에서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 라이브 퍼포먼스 중 특유의 괴상한 춤이 유명하다. * 어린 시절 술, 담배, 음반을 구할 돈이 부족했던 탓에 동네 가게에서 음반을 훔쳐 외투에다 숨겨 가곤 했다고 한다. * '컨트롤'은 이안 커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컨트롤'을 제작한 감독 [[안톤 코빈]]의 경우 젊은 시절 조이 디비전의 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다. * 이안 커티스가 쓴 가사와 메모들을 모은 책인 'So This is Permanence'[* [[Closer(조이 디비전)|Closer]]의 곡 Twenty Four Hours의 첫 구절을 따온 것.]가 출간되었다. [[http://www.amazon.com/So-This-Permanence-Division-Notebooks/dp/1452138451]] * 1집 '[[Unknown Pleasures]]'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돈벌이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공연이 끝나고 나면 공연장 청소를 해서 돈을 더 받기도 했다. * 이안은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살갗이 발갛게 부어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안은 작업실 내부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검은 커튼을 쳐놓아야 했다. * 1980년 이안 커티스가 미국 진출을 앞두고 BBC에서 했던 인터뷰가 유투브에 공개되었다. [[https://youtu.be/7paP0EbYZD4]] * 대중에게 알려진 이안 커티스는 상당히 음울하고 어두운 이미지이지만 본래는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에만 올라가면 사람이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변했다는 스티븐 모리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일종의 무대 공포증이 있었던 듯 하다. * 조이 디비전의 1,2집을 프로듀스한 마틴 하넷은 이안의 죽음 이후 엄청난 충격을 받고 이 여파로 헤로인을 시작하였고, 폭음과 마약 사용으로 인해 후에 그가 1991년 심장마비로 급사할 때에는 165kg에 이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 조이 디비전 활동 장소나 태어난곳은 맨체스터지만 이안 커티스의 가족은 맨체스터와 조금 떨어진 [[체셔 주|체셔]]에서 살았다. [* 이안 외에도 스티븐 모리스나 질리언 길버트도 같은 동네 출신이다.] [[파일:external/moviesmedia.ign.com/control-20071012023111423-000.jpg]] * 영화 [[컨트롤]]에서의 모습. [[샘 라일리]]가 이안 커티스 역을 맡았다. * 버나드 섬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안 커티스의 음악적 취향은 독일의 [[크라우트록]]이나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등 미국에서도 마이너하기 짝이 없는 뮤지션들을 찾아 듣는, 오늘날로 치면 [[힙스터]]스러운 취향이었다고 한다. 반면 다른 멤버들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 등 자국의 유명 밴드들을 주로 듣는 지극히 평범한 취향이었고, [[스티븐 모리스]]는 재즈 리스너였다. 이안은 이런 멤버들에게 언더그라운드 록음악을 알려주는 일종의 선생 같은 역할을 했다고. 훗날 밴드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도어즈]] 음악을 멤버들에게 처음 소개한 게 다름아닌 이안이었고, 사실 다른 멤버들은 그 전까지 도어즈가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 영국 음악가들 중 흔치 않게 보수주의자로 보이는데,[* 노동 계급 출신이 많은 영국 음악가들은 대다수 진보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당장 영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작곡가들인 [[존 레논]], [[로저 워터스]], [[노엘 갤러거]] 모두 스펙트럼은 다를지라도 지지 진영을 평가하자면 전부 진보 진영에 묶인다. 확실한 보수주의자의 경우 이안 커티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극우인 [[에릭 클랩튼]]을 제외하더라도 [[필 콜린스]], [[브라이언 메이]], [[믹 재거]] 정도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재거는 지지 정당만 골수 보수당이지 리버럴한 면모를 자주 드러내는 편이다. 지금은 브라이언 메이는 진보 성향이고 대신 [[로저 달트리]]가 보수로 전향했다.] [[마거릿 대처]]의 지지자였다.[[https://www.theguardian.com/music/2007/oct/14/popandrock2|#]] 단 보수주의자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것이 당시 영국은 노동당 정부의 무능한 경제 정책으로 극한의 파업과 경제 침체기를 맞이한, 일명 영국병 시기였기에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노동당을 혐오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영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최흉의 독설가 '''[[존 라이든]]'''.] [각주][include(틀:표절, version=r22, source=https://en.wikipedia.org/wiki/Ian_Curtis)] [[분류:영국 남가수]][[분류:영국의 프론트맨]][[분류:1956년 출생]][[분류:1976년 데뷔]][[분류:1980년 사망]][[분류:영국의 자살한 인물]][[분류:밴드 보컬]][[분류:트래포드 출신 인물]][[분류:조이 디비전]][[분류:자살한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