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https://gall.dcinside.com/board/lists/?id=oisoo|이외수 갤러리]] 인물 카테고리에 속하는 갤러리의 [[하나]]인데, 다른 인물 갤러리는 해당 인물이 가끔씩 안부 인사 따위를 남기기는 해도 출현 빈도는 그다지 잦지 않은 반면, 이곳에서는 [[이외수]] 스스로가 의욕적으로 참여하여 방문객의 글에다가 꼬박꼬박 댓글을 남기는 등 소통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이래저래 독특한 분위기의 재미난 갤러리...였는데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제는 전부 [[과거]]의 이야기. 아무튼 이 갤러리는 '''약 10년간 소멸했다가 부활'''했다. 보통의 경우 갤러리가 망해도 갤러리의 [[무덤]]인 [[마의 삼각형]]으로 빨려 들어갈 뿐 갤러리 자체가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데, 이 경우는 당시 기준으로는 정말 예외적으로 갤러리의 장기폐쇄라는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마이너 갤러리의 경우는 [[너 고소]] 문제 때문에 폐쇄에 들어가는 경우가 그럭저럭 있는 편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있지도 않았고 극히 일부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갤러리를 닫는 일은 없었다.] == 전성기 == [[2007]]년 8월 갤러리가 생겼다. 2007년 7월 [[디시뉴스]] 인터뷰에서 이외수 갤러리가 생기지 않을까 같은 발언이 오갔는데 그것이 대략 한 달만에 실현된 것. 이외수는 [[관리자]]와 같은 특별 계정을 가지고 갤러리에 접속하면서[* 2005년에 개설된 [[임종석 갤러리]]의 운영방식과 유사했다. 임종석 역시 임종석 갤러리 운영을 위한 디씨 특별 계정이 있었기 때문.],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그곳의 [[갤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놀았다. 그 과정에서 [[명대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어둠에다크에서 죽음의데스를 느끼며|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또 어느 [[네티즌]]이 이곳에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3]]의 [[유리코 오메가]] [[짤방]]을 올리자 '''버럭, 남자가 여자 옷 입은 거 모를 줄 아슈?''' 라고 호통친 일화도 있다. == 구 정사갤과 코갤과의 갈등 == [include(틀:디시인사이드의 사건 사고)]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2009년]]. 눈에 보이는 건 아무거나 물어뜯고 있었던 디시의 양대 미친개 갤러리인 [[구 정사갤]]과 [[코갤]]이 이외수 갤러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발단은 학생맨이라는 구 정사갤러가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는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광우병 파동]]이나 뉴라이트 교과서 [[김구]] 선생 테러 기술 문제등으로 시비를 걸다가 [[욕설]] 문제로 고소를 하게 된다.[* 학생맨은 욕설 외에도 이외수가 담배를 피우며 똥을 싸는 그림을 그려서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욕이란 욕은 구 정사갤이 아닌 코갤에서 얻어먹고 있던 상황이었고, 뻘글과 폭탄글의 비중도 코갤러들 쪽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욕설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학생맨의 [[어그로]] 부분에서 고소를 행사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분석이 나왔다. * 당시 이외수가 탈권위와 소통을 주장하며[* 보수적인 기성 문단의 인물들과는 다른 사람이며 계급장 떼고 소통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외수 갤러리에서의 행적 또한 그러한 주장의 연장선에 있었고, 당시의 높은 인지도 또한 그러한 '체면을 버리는 부분'에서 대부분 비롯되었다.] 비슷한 레벨의 욕설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유연하게 맞대응하고 있었다. * 하지만 구 정사갤러들의 경우 코갤러들과 달리 [[개드립]]성이 아니라 정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드잡이질을 하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으며, 당시 구 정사갤러들이 다른 갤러리에서 분탕질을 치고 온갖 [[패드립]]과 [[신상털기]]를 하던 악영향이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 학생맨이 활동하던 시점에서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메이저 언론에서 갤러리 활동에 대해 대대적으로 비판을 가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소라는 선택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소위 '안티[[씹선비]]' 계열로 분류되고 있던 이외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학생맨을 법적 처벌의 테두리에 집어넣으려 했던 것은 구 정사갤러들과 코갤러들이 보기에 그런 [[선비질]]의 연장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 결과적으로 해당 대응은 '유명 작가의 권위에 의한 찍어누르기'라는 반발을 낳았고, 오히려 구 정사갤러들과 코갤러들이 연합하여 이외수 갤러리를 침공하는 계기를 만들어 버렸다. 결정적으로 학생맨이 이러한 상황에 기름을 끼얹어 버리는데, 이외수가 고소장 복사본을 스캔해서 업로드한 글에 사과문을 요구했고, 그에 대해 사과문을 작성하는 척하면서 [[세로드립]]을 구사했기 때문. 4시간 간격으로 이외수 갤러리와 구 정사갤에 반성문을 3번씩 올리라는 말에 열받아서 한 짓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로드립이란 것 자체가 상대방을 정면으로 모독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곱게 봐 줄 수 없는 것은 사실. 애초에는 봐 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외수였지만, 저 세로드립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서 그냥 소송을 진행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www.pgr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3&sn=off&ss=on&sc=on&keyword=이외수&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4140|참고글]] 또한, 이외수에게 키배로 발렸다고 알려졌던 런던귀공자가 싸움 얘기를 듣고 이 싸움을 구경하다가, 이외수가 키배를 논할 때 자신과 키배를 떴던 이야기를 곁다리삼는데, 런던귀공자는 이외수의 런던귀공자에 대한 발언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가세해 다수의 구 정사갤러와 코갤러가 기회는 이때다 하고 키보드 배틀에 끼어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일로를 거듭해 갔고, 이 사건을 지켜보던 디씨인들의 여론이 친이외수 쪽에서 반이외수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싸움판에 끼어든 런귀의 증언(?)과 학생맨을 포함한 안티 이외수 연합인 통칭 '6새우'들의 극딜 과정을 종합해 보면 이들의 조직적이고 연합적인 분탕질과 여론 조작으로 인해 디시 내부의 여론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기울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외수 갤러리의 사람들은 "목소리 크면 싸움에서 다 이기는거냐?"라고 반박하였지만,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여론을 되돌리기에는 늦은 상태. 학생맨을 위시한 구 정사갤x코갤 연합의 승리를 주장하는 [[갤러]]들은 논쟁에서 밀렸다고 분한 마음으로 가벼운 욕설을 트집잡아 협박하는 건 구차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논리에서 밀려서 열폭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여론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이외수를 때려대던 메이저 언론들이 이외수의 욕설 모음집[* 게다가 이외수의 각종 논란(사생활 논란이랄지)과 가부장적인 부부생활, 졸혼 이후에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자업자득이 따로 없다.]을 재편집하면서 여론 형성에 가세, 더 이상 이외수 갤러리 측에 승산의 여지가 남지 않게 되었다. == 결론 == 꾸준히 잡지 인터뷰나 웹진 인터뷰 등을 통해 해당 갤러들을 악플러로 규정하고 고소하겠다는 이야기를 진행해 온 이외수였으나, 역으로 [[자업자득|자신이 갤러리에 써온 악플들이 언론에 노출되며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흐르며 사실상 패배가 확정되었다.]] 2009년 [[7월 8일]]자 '믿을 수 없다 지금의 절망적인 현실이 꿈이 아니라니' 게시물을 통해 최후의 [[개드립]]을 시전했고, 사실상 이날이 구 정사갤x코갤 연합의 승전 기념일이자 '''디시인사이드가 막장 사이트로서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대놓고 드러내는 기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실제 고소를 당한 갤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피고소인 후보로 알려졌던 factotum/허탈/학생맨 등의 통칭 '6새우'들은 그 뒤로도 한동안 '''온갖 병신짓을 일삼아 [[정사충]]의 악명을 드높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다만 2013년에 일어난 [[정사갤 여갤러 피살사건]] 이후 짙어진 구 정사갤의 퇴조세로 인해 구 정사갤에서 6새우의 등장이 뚝 끊겼는데, 대다수의 구 정사갤러들은 이들이 [[일베저장소]]나 [[수컷닷컴]] 같은 다른 [[수구꼴통]]계 사이트로 옮겨 가서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단, 허탈의 경우 엉뚱하게도 [[일빠]]들에 의해 위장보수라는 게 드러나면서 정사충들 사이에서도 위선자라며 철저하게 [[왕따]]당하고 버려졌다. 허탈이 몰락하기 직전 그 일빠들조차 허탈이 위장우파라는걸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명백한 껀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역갤 및 역갤일뽕과 무관한 어떤 조현병 디시인[* 이사람은 오히려 [[미스터리 갤러리]] 출신이다. 이외수 갤러리가 핫하니까 싸움구경하다가 참전한 것. 조현병 디시인은 그의 과거를 증언하는 PC통신 게시물을 퍼오고 그의 과거를 폭로하는 글들을 올리자(이때만큼은 의외로 글이 멀쩡했었다. --아니면 그 조현병 갤러의 역사칭일수도--), 그 일빠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 이후 이외수 본인의 요청으로 글쓰기가 막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되었다. 그 결과 디씨에서 몇 안 되는 폐쇄된 갤러리로 남았다가, 2019년 경에 갤러리가 돌아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막혀있다.[* 마이너 갤러리 생성 요청시 갤러리 코드인 oisoo가 실존했던 것으로 보아, 그동안 10년 동안 숨겨져 온 듯하다.] 이 갤러리의 등장과 폐쇄는 디시인사이드의 전성기 및 일반 대중 친화적 시도, 그리고 온갖 분탕질과 친목질과 저격질로 인해 그것이 박살나는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대로 구 정사갤과 코갤의 패악질이 본격적으로 디시인사이드 밖으로 뻗어나가게 된 계기 또한 이외수 갤러리와 관련된 분탕질에서 비롯되었기에,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가 온갖 [[쌍욕]]과 [[패드립]]이 기본 스킬로 취급되게 된 지점을 여기서 찾는 연구글이나 분석글들이 제법 된다.[* 사실, 이러한 변화의 근원을 따지면 이외수 갤러리가 생기기도 훨씬 이전에 [[아햏햏]] 문화를 박살낸 [[씨벌교황]]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한편, 씨벌교황이라는 유저가 디시에 풍파를 일으킨 것과 비슷한 시기인 2004년 [[여옥대첩]]이 일어나서 구 정사갤의 판도를 바꾸어놓고, 이로써 이외수 갤러리 사건의 근원이 생긴 것이다.] [[분류:디시인사이드 폐쇄된 갤러리]][[분류:디시인사이드 관련 사건 사고]][[분류:이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