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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길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LG 트윈스 1차 지명선수)] ---- ||
'''이정길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49번}}}''' || || 조필현[br](1990~1993) || {{{+1 →}}} || '''{{{#fff 이정길[br](1996~1997)}}}''' || {{{+1 →}}} || 박선규[br](1998) || ||<-5> '''{{{#fff [[LG 트윈스|{{{#fff LG 트윈스}}}]] 등번호 18번}}}''' || || [[차동철]][br](1990~1997) || {{{+1 →}}} || '''{{{#fff 이정길[br](1998~2000)}}}''' || {{{+1 →}}} || [[이동현(1983)|이동현]][br](2001~2005) || }}} || }}} || ||<-2> [[파일:external/people.mygo.co.kr/uni_13763_0.jpg|width=100%]] || ||<-2> '''{{{+2 이정길}}}[br]李廷佶 | Lee Jeong-Gil''' || ||<|2> '''출생''' ||[[1973년]] [[3월 19일]] ([age(1973-03-19)]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배재고등학교 야구부|배재고]] -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96년/신인드래프트#s-2|1996년 1차 지명]] ([[LG 트윈스|LG]]) || || '''소속팀''' ||[[LG 트윈스]] (1996~2000) || [목차] [clearfix] == 개요 == 1996년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전 [[LG 트윈스]] 소속 투수.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좋은 체격에 150km/h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졌던 우완 정통파였다. 1990년 2학년 당시 이정길과 [[곽현희]]가 마운드를 분담하면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심재학]]을 중심으로 한 [[충암고등학교 야구부]]의 강타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결승전에서는 보기 힘든 13:0이라는 점수차로 준우승을 거뒀다.[* 8년 뒤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대구상고가 순천효천고에게 13:0 대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1991년 3학년 당시 팀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으로 이끌면서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로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 한미친선야구대회 MVP를 수상했다. === [[LG 트윈스]] === === 4억의 계약금, 그리고… === [[파일:1416641466.jpg]] 그리고 [[1996년]], LG 트윈스는 그를 1차 지명하며 당시 역대 최고액인 '''4억 원(계약금 3억 8천만 원+연봉 2천만원)'''을 쥐어주는 모험을 하는데, 물론 이정길이 실력이 모자란 투수는 아니었지만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 내에서도 1년 선배 [[문동환]], 동기생 [[임선동]]의 그늘에 가려진 2인자에 지나지 않았고 보여준 성적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입단 계약 후 '''이정길 본인조차 제시 [[계약금]]을 되물어보며 귀를 의심했었다'''고 할 정도로 뜬금없는 오버페이였다.[* 이정길 본인은 자신이 네임밸류는 떨어져도 1차지명이니 입단 협상에서 일단 호기롭게 3억을 부를 생각이었다고….][* 93년 당시 [[구대성]], [[김홍집(야구)|김홍집]]의 부상 때문에 최대어로 가치가 올라간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입단 과정에서 LG의 파격 행보와, [[현대 피닉스]]의 영향으로 인한 1차지명 선수들의 계약금 인플레 등으로 억대 계약금의 상징성은 옛말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당시 이정길의 계약금은 후하게 쳐줘도 2억 내외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정길이 이토록 상상 이상의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일단 당시 거대 [[실업야구]]팀 [[현대 피닉스]]가 국가대표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쓸어담는 바람에 아마추어 신인들의 몸값 거품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LG가 이미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시절에 1차 지명해 두었던 [[임선동]]이 [[일본프로야구]]([[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진출을 선언하며 LG 입단이 불투명해지자 결국 LG는 꿩 대신 닭이라고, 임선동을 잡기 위해 모아둔 돈을 이정길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임선동은 1년 후인 1997년 계약금 '''7억원'''을 받고 LG 트윈스에 입단한다.] * 또한 당시 [[OB 베어스]]가 고교 최대어로 꼽히던 [[박명환]]([[충암고등학교 야구부|충암고]] 3학년)을 거액(3억원)으로 입단시키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정길에 [[돈지랄|많은 돈을 주고 지명하는]] [[잠실시리즈|라이벌 의식]]을 보였다는 점도 있다. 그래도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고 들어온 투수에게 LG 팬들은 제법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입단하자마자 어깨 부상으로 [[오키나와]] 전지훈련지에서 돌연 귀국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무려 3년의 세월을 재활군과 [[LG 트윈스 2군|2군]]에서 보낸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임의탈퇴]] 처리되기까지 했다. === 1군 등판, 그리고 은퇴 === [[파일:PV22PMP5IW7WBARJQ73VZWIVHY.jpg]] [[1999년]]에 드디어 입단 후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6월 1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두는데, 이때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떠올랐는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 또 다시 부상이 도졌고 그는 결국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9년에 기록한 5경기 10⅔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12.66이 이정길이 프로에서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어쨌든 이정길은 이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LG 트윈스]]에 있어서도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된 선수. 분명 큰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큰 금액을 지불한 건 LG 트윈스 구단의 무리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는 건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담한 성적은 덤. 차라리 [[이영우]]를 1차 지명하는 게 낫지 않았겠냐는 말도 있으나 이미 전년도에 [[심재학]]을 뽑았고 다음 연도에 [[이병규(1974)|이병규]]가 있는 상황에서 외야수를 또 뽑기는 어려웠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1973년 출생]][[분류:1999년 데뷔]][[분류:2000년 은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MBC 청룡-LG 트윈스/은퇴, 이적]][[분류:배재고등학교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