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어진 역사책]][[분류:고려의 도서]] [목차] == 개요 == '''李磾家記''' / 李碑家記[* 《이비가기》. 《이제가기》와 같은 책으로 여기는 견해가 있다.] [[고려]] 중기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인용된 책. 저자는 알 수 없으며, 이름상 [[후백제]]의 [[건국군주]] 겸 [[전주 견씨]]의 [[중시조]] [[견훤]]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이제(李磾) 혹은 이비(李碑)라는 인물의 가문 기록(家記)으로 여겨진다. 《삼국유사》가 13세기 말(1281년 ~ 1283년)에 편찬된 점을 볼 때 고려 중기까지는 존재하고 있었다가 이후 실전된 듯 하다. 《삼국유사》에서 인용된 견훤의 선대 및 견훤의 자녀들을 기록한 내용만 전해지고 있다. == 기록 == >李碑家記云, “真興大王妃思刀謚曰白𪀚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 波珎干善品之子角干酌珎妻王咬巴里, 生角干元善, 是為阿慈个也. 慈之弟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尚父萱, 二子将軍能哀, 三子将軍龍盖, 四子寳盖, 五子将軍小盖, 一女大主刀金.” >《이비가기》(李碑家記)에는 “[[진흥왕|진흥대왕]]의 [[왕비]] [[사도부인|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白𪀚夫人)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찬|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阿慈个)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尙父) [[견훤|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후삼국시대)|용개]](龍蓋)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蓋)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李磾家記云, “萱有九子, 長曰神劒 一云甄成, 二子太師謙腦, 三子佐承龍述, 四子太師聦智, 五子大阿干宗祐, 六子闕, 七子佐承位興, 八子太師青丘, 一女國大夫人, 皆上院夫人所生也. >《이제가기》(李磾家記)에는 “견훤에게는 아들 아홉이 있으니, 맏이는 [[견신검|신검(神劍)]] 혹은 견성(甄成)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태사]](太師) [[견양검|겸뇌(謙腦)]], 셋째는 좌승(佐承) [[견용검|용술(龍述)]], 넷째는 태사(太師) [[견금강|총지(聰智)]], 다섯째는 [[대아찬|대아간]](大阿干) 종우(宗祐), 여섯째는 이름을 알 수 없고, 일곱째는 좌승(佐承) 위흥(位興), 여덟째는 태사(太師) 청구(靑丘)이며, 딸 하나는 국대부인(國大夫人)이니 모두 상원부인(上院夫人)의 소생이다” >----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 특성 == [[견훤]]의 조상이 [[신라]]의 [[정복군주]]인 [[진흥왕]]과 이어진다고 적고 있다. 정확히는 아자개가 진흥왕의 현손[* 증손자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자개와 진흥왕 간의 격차는 300년에 가깝기 때문에[* 진흥왕의 사망은 576년이고, 아자개는 9세기 말 ~ 10세기 초에 활동하였다. 장남 견훤이 [[867년]]에 태어난 점을 고려하면 늦게잡아도 847년경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니 현손으로 보기는 무리다.]아자개가 진흥왕의 후손을 사칭한 것이거나 후대의 숭조사상으로 인한 가필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