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리비아의 역사)] [include(틀: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 ||||||<#009246><:>{{{#fff {{{+1 '''이탈리아령 리비아[br]Libia Italiana[br] ليبيا الإيطالية'''}}} }}} || ||<-2>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width=130]] || [[파일:이태리령 리비아 국장.png|width=60]] || ||<-2><#009246><:> {{{#fff '''국기''' }}}||<#ed2939><:>{{{#fff '''휘장''' }}}|| ||||||<:> [[파일:이탈리아령 리비아.png]] || ||<-3><#009246><:> {{{#fff '''1934년 ~ 1943년''' }}} || ||<-2> {{{#fff '''성립 이전''' }}} || {{{#fff '''소멸 이후''' }}} || ||<-2> '''{{{#fff 이탈리아령 트리폴리타니아}}}''' ||<#c8102e> '''{{{#fff 리비아 영국군 정부}}}''' || ||<-2> '''{{{#fff 이탈리아령 키레나이카}}}''' ||<#002395> '''{{{#fff 페잔-가다메스 프랑스 군정부}}}''' || ||<#ed2939> {{{#fff '''위치''' }}} ||<-2>[[리비아]]|| ||<#ed2939> {{{#fff '''수도''' }}} ||<-2>[[트리폴리]] || ||<#ed2939> {{{#fff '''정치체제''' }}} ||<-2>[[입헌군주제]]|| ||<#ed2939> {{{#fff '''국가원수''' }}} ||<-2>이탈리아 국왕|| ||<#ed2939> {{{#fff '''정부수반''' }}} ||<-2>총독|| ||<#ed2939> {{{#fff '''언어''' }}} ||<-2>[[이탈리아어]], [[아랍어]]||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 왕국]]이 [[리비아]]에 건설한 [[식민지]]다. 이탈리아령 북아프리카라고도 부르며 국내 프로파간다에서는 4번째 해안이라고도 하였다. == 역사 == 1911년, 이탈리아 왕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만 제국은 저항했으나, 발칸전쟁 중이었던데다 강대국들도 이탈리아를 지지했기 때문에 꺾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1912년 로잔 조약에서 [[오스만령 트리폴리타니아]](현 리비아)와 [[지중해]]의 [[도데카니사 제도]]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사실 도데카니사 제도는 리비아를 할양하는 조건으로 이탈리아가 오스만에 반환해야 했으나, 발칸 전쟁이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가 1차 대전으로 서로 적국이 되면서 이탈리아가 완전히 눌러앉게 되었다.] [[이탈리아 왕국군]]은 리비아에 주둔했다. 그러자 기독교도가 자신들을 통치하게 된다는 것은 이슬람을 믿는 현지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마르 무크타르가 이끄는 게릴라가 이탈리아군을 괴롭혀서 초기 이탈리아의 영향권은 북부 해안 부분에 그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는 이탈리아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영토를 일부분 할양하였다.[* [[영국]]은 이때 [[케냐]]의 일부를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에 할양했다.] 이후에도 [[영국]]은 두 차례에 걸쳐 [[이집트 왕국]]과 [[앵글로-이집트 수단]]의 영토를 이탈리아에 할양하였다. --그런데 어차피 다 사막이라 지하자원 말고는 별 의미가 없다.-- 이탈리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와 [[국가 파시스트당|파시스트]]들이 집권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리비아의 남부를 점령하기 위해 [[이탈리아 왕국군|군대]]를 파견했고, 그 결과 1931년 리비아 전체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며 리비아 게릴라 지도자 오마르 무크타르는 처형되었다. 1934년에는 이탈리아령 트리폴리타니아와 이탈리아령 키레나이카로 통치하던 리비아를 통합된 식민지인 이탈리아령 리비아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리비아에 강압책과 동화정책을 실시하였다. 리비아의 해안 도시에 [[이탈리아인]]의 이주를 장려해 많은 이탈리아인들을 이주시켰다. 동시에 식민통치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 [[무솔리니]]를 이슬람의 수호자라고 선전했다. 또 리비아 북부가 [[로마 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 부분도 선전에 써먹었고, 로마 시대의 유물들을 대거 발굴하기도 한다. 1939년에는 [[국가 파시스트당]] 리비아 지부인 [[무슬림]] 릭토르[* 로마 시대 집정관의 경호원을 [[릭토르]](Lictor)라 불렀다.] 협회가 생기면서 리비아인들에게 [[파시즘]]을 장려했다. 1940년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의 편을 들어 뛰어들었다. 그해 9월 이탈리아는 [[영국군]]이 주둔한 [[이집트 왕국]]을 침공했다가 패배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치 독일]]이 개입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과 [[나치 독일군|독일군]]은 패배했고, 리비아는 [[영국]]과 [[자유 프랑스]]가 분할 점령했다. 이후 리비아는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을 위한 기지가 되었다. 1947년 이탈리아는 이곳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으며 영국과 프랑스에게 양도했다. 1951년 영국과 프랑스는 리비아를 독립시켰고, [[리비아 왕국]]이 수립되었다. == 이탈리아의 리비아인 학살 == 이탈리아 왕국은 리비아를 점령하는 전쟁 도중 게릴라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겨자가스]] 공격을 하고 225,000명의 리비아 민간인이 이탈리아군에 의해 죽었다. [[오마르 무크타르]]의 항쟁을 다룬 영화 사막의 라이온이 유명하다.[* 무크타르 역은 [[안소니 퀸]]이 맡았다.] 점령 이후 이탈리아 측은 리비아의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거주민을 옮기기 위해 '''우물을 시멘트로 매립시켜버리는'''[* 리비아는 대부분의 국토가 사막이라서 식수가 부족하다. 그 식수 공급터를 끊었으니...] 행각을 저지르는가 하면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을 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학정으로인해 이탈리아의 리비아 통치 기간 동안 [[키레나이카]]의 인구 25%가 사망했다. [[분류:리비아의 역사]][[분류:이탈리아의 식민지]][[분류:이탈리아-리비아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