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탈리아의 대외관계)] [include(틀:튀니지의 대외관계)]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100%]] || [[파일:튀니지 국기.svg|width=100%]] || || [[이탈리아|{{{#ffffff '''이탈리아'''}}}]] || [[튀니지|{{{#fff '''튀니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와 [[튀니지]]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여러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 역사적 관계 == === 고대 ===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자리를 잡을 무렵 튀니지 일대는 오늘날 레바논 해안지대에서 이주해온 [[페니키아]]인들이 [[고대 카르타고]] 공화국을 세웠다. 카르타고 공화국은 북아프리카 각지를 기반으로 삼아 시케리아([[시칠리아]]), [[사르데냐]] 및 [[이베리아 반도]]의 해안지대를 차례차례 지배했다.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이후 카르타고와 로마 공화정은 시칠리아의 메세니아 문제로 제1차 [[포에니 전쟁]]을 치렀다. 1차 포에니 전쟁 전후로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는 고대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는데, 해당 섬들은 오늘날 이탈리아의 영토이기도 하다. 이후 로마 공화정은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직접 남하해오면서, 이른바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루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 공화정 역사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로 자세한 내용은 [[고대 로마]], [[한니발]] 문서 등으로 참조가 가능하다.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 공화국이 패한 뒤, 튀니지 일대는 로마의 [[속주#북아프리카|아프리카 속주]]로 편입되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카르타고 주민들은 [[라틴어]]를 받아들이고 로마화되면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서기 4세기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튀니지 일대도 기독교가 급속히 보급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속주 일대의 소작농들 사이에서는 [[도나투스파]] 신학이 퍼지면서 카르타고나 [[렙티스 마그나]], [[카이사레아]] 등등 대도시의 지주층들이 믿는 여타 기독교 교파와 대립하였고,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지면서 튀니지 일대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 최후의 곡창지대였던 아프리카 속주는 명장 보니파키우스가 방어하면서 수도 로마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었으나 [[갈라 플라키디아]]의 오판으로 [[아에티우스]]과 보니파키우스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s-2.3|보니파키우스가 제거되면서]]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베르베르인들의 침공에 조금씩 무너지던 아프리카 속주는 [[반달족]]들이 침공에 순식간에 무력하게 무너졌는데, 자세한 기록 정황은 남아있지 않으나 [[도나투스파]]를 믿는 소작농들이 기득권층에 맞서 반달족 침략군들을 지지하면서 아프리카 속주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달족들은 비옥한 카르타고와 그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반달 왕국]]을 세웠다. === 중세 ===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반달 왕국은 튀니지 일대를 지배하면서 [[시칠리아]], [[사르데냐]], 이탈리아 남부 일대를 지배했다. [[동로마 제국]]은 영토회복을 실시하면서 반달 왕국을 침공하였으나 한 차례 실패하였고, 이후 [[벨리사리우스]]를 보내 반달 왕국을 멸망시키고 수복하는데 성공하였다. 벨리사리우스는 반달 왕국을 멸망시킨 이후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로 북상하여 [[동고트 왕국]]과 전쟁을 치루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 다시금 이탈리아 반도와 튀니지 일대가 로마 제국의 영토로 묶이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 최고의 장군 중 하나로 꼽히는 [[이라클리오스]]가 바로 아프리카 속주 출신이다.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7세기 이후부터 우마이야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튀니지 일대의 주민들이 [[이슬람교]]로 대거 개종하고 [[아랍어]]를 받아들이면서 [[이탈리아 반도]]일대와 튀니지 일대는 정체성에서 차이점이 많이 생겼다. 이탈리아 반도 역시 [[롬바르드족]]들이 쳐들어오면서 동로마 제국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튀니지와 알제리에 기반을 잡은 이른바 사라센 해적들은 이탈리아 해안 지대 각지를 약탈하기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당시 방어를 위해 뭉친 어민들이 모이는 과정에서 중세 이탈리아의 교역도시 [[아말피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시칠리아, 사르데냐는 튀니지 일대와 함께 [[아랍]]문화권에 잠시 속했다. 이에 시칠리아에는 [[시칠리아 토후국]]이 세워졌다가 [[노르만족]]들에 의해 멸망하고 [[시칠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 19세기 ===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튀니지 지역은 수많은 [[프랑스인]], [[이탈리아인]]들이 이주 및 정착했다. 튀니지는 근대화정책을 실시했지만, 19세기말부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의 지배당시에 이탈리아인들이 튀니지에 많이 정착했다. === 20세기 === 튀니지는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1942년 11월부터 1943년 5월까지 아주 잠시 동안 튀니지를 지배하기도 했다. 독립 이후, 튀니지는 친서방정책을 실시했고 이탈리아와도 수교했다. 튀니지의 독립 이후,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이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1980년대]]에는 [[로마 시장]]과 [[튀니스]] 시장이 [[제3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실질적으로는 [[고대 카르타고|카르타고]]가 [[로마 공화국|로마]]에 의해 멸망하면서 종식된지 '''2,000년이 훨씬 지난데다''', 해당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2세기]]에는 종전 협정을 맺어야 전쟁이 끝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만, 이탈리아와 튀니지의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이벤트]]로 해당 합의를 맺었다.] === 21세기 === 양국은 여러차례 교류가 활발하다. 튀니지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와의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며 튀니지 관광지에는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관광하러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탈리아어]]는 튀니지에서 [[프랑스어]]와 함께 주요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이탈리아/문화|이탈리아 문화]]는 튀니지에서 [[프랑스/문화|프랑스 문화]]와 함께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튀니지에 많이 존재한다. 양국간에 교류, 협력이 활발하기 때문에 이탈리아내에는 수많은 튀니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 관련 문서 == * [[이탈리아/외교]] * [[튀니지/외교]] * [[이탈리아/역사]] / [[튀니지/역사]] * [[고대 카르타고]] / [[고대 로마]] / [[제3차 포에니 전쟁]] * [[이탈리아/경제]] * [[튀니지#경제|튀니지/경제]] * [[이탈리아인]] / [[마그레브 아랍인|튀니지인]] * [[이탈리아어]] / [[아랍어]] / [[아랍어 방언]] / [[천주교]] / [[이슬람교]] / [[순니파]]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프리카 국가/북아프리카 국가]] [[분류:이탈리아-튀니지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분류:나무위키 아프리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