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인물]] 李桓 (? ~ 236)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인물. == 행적 == 양주 여릉군의 도적으로 동야의 수춘, 남해의 [[나려]] 등이 반란을 일으킬 때 이환도 노합과 함께 234년 겨울 11월에 반란을 일으키자 235년 여름에 [[손권]]은 [[여대(삼국지)|여대]]에게 조서를 내려 [[유찬#s-2]], [[당자#s-2]] 등을 지휘해 병사를 나누어 이들을 토벌하도록 했는데, 236년 2월에 [[오찬#s-2]]의 공격을 받아 붙잡히고 참수되어 그 머리는 건업으로 보내졌다. 손권이 여대에게 조서를 내리면서 여대의 공적을 칭찬했는데, 그 조서 중에 이환은 흉악하고 교활하면서 이미 투항했지만 또 모반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235년 이전에도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창작물에서 == 웹게임 삼국야망에서 3등급에 해당하고 장수도감에 따르면 산월의 도적으로 동안이었다고 나와있다.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에서는 반백의 사내로 등장해 여릉에서 반란을 일으켜 동시에 석양, 파구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의 주모자로 [[손려#s-1]]가 [[팽단]]을 제압하고 석양을 거쳐 여릉으로 가는 길에 손려와 마주쳐 일기토를 벌인다. 손려와 싸우다가 도망가서 구덩이로 유인하고 군사들을 시켜 암기로 공격했는데, 손려를 구덩이에 빠뜨리는 것은 성공했다. 암기로 손려를 죽이려는 와중에 손려가 쏜 탄궁의 돌을 맞아 구덩이에 빠졌으며, 이환은 자신을 죽이라고 했다가 손려의 공격에 기절해 사로잡혔다. 본래 [[태사자]] 휘하의 소장으로 [[정보(삼국지)|정보]]를 포함한 [[손책]]군의 12명의 장수로 싸웠다고 하며, 손책 사후에 여릉태수에 취임한 조랑을 대신해 여릉태수의 직위를 수행했다고 한다. [[조랑]]이 [[손봉]]을 보호하기 위해 반란을 묵인한 사정에 대해 들은 손려가 손봉의 후견인이 되기로 하면서 풀려난다. [[분류:삼국시대(중국)/인물]][[분류:236년 사망]][[분류: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