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5><#806600> [[교황|[[파일:교황 문장.sv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204_innocenzo_VII.png|height=125]] || || 제203대 [[보니파시오 9세]] || → ||<#806600> '''{{{#FFF 제204대 인노첸시오 7세}}}''' || → || 제205대 [[그레고리오 12세]]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cb400 0%, #ffe100 20%, #ffe100 80%, #ccb400)" '''[[교황|{{{#670000 제204대 교황}}}]][br]{{{+1 인노첸시오 7세}}}[br]Innocentius VII'''}}}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인노첸시오7세.jpg|width=100%]]}}} || || '''교황명''' ||인노첸시오 7세 (Innocentius VII) || || '''본명''' ||코시모 데 미글리오라티[br](Cosimo de' Migliorati) || ||<|2> '''출생''' ||[[1339년]] || ||[[파일:나폴리 왕국 국기(1282-1442).svg.png|width=25]] [[나폴리 왕국]] 술모나 || ||<|2> '''사망''' ||[[1406년]] [[11월 6일]] (향년 66~67세) || ||[[파일:교황령 국기(754-1803).svg|width=25]] [[교황령]] [[로마]] || || '''재위기간''' ||[[1404년]] [[10월 7일]] ~ [[1406년]] [[11월 6일]] || || '''문장''' || [[파일:인노첸시오7세문장.svg.png|width=100]] || || '''언어별[br]명칭''' ||[[라틴어]]: Innocentius PP. VII[br][[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VII[br][[영어]]: Pope Innocent VII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04대 [[교황]]. == 생애 == 그는 1404년 [[콘클라베]]로 선출되었으나, 그의 선출 소식이 알려지자 기벨린파에서 콘클라베 결과에 대한 반발로 폭동을 일으켰으나[*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교황령]]을 중심으로 교황권을 지지하는 [[구엘프]](Guelph)파와 [[신성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황제권을 지지한 [[기벨린]](Ghibelline)파로 나뉘어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인노첸시오 7세는 강성 구엘프파 지지 지역인 [[나폴리 왕국]]의 술모나 출신이다.] [[나폴리 왕국]]의 [[라디슬라오]] 왕이 급히 [[로마]]로 군대를 파견해 폭동을 진압했다. 인노첸시오 7세는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 휘하의 콘도티에로[* 중세 시대의 이탈리아 [[용병]] 지휘관을 나타내는 명칭.]였던 자신의 조카 루도비코 미글리오라티를 자신의 측근으로 앉혔는데, 이는 훗날 교황의 큰 실책이 된다. 1405년 루도비코는 교황과의 회담이 끝나고 자신의 밑에 있는 용병들을 이용해 기벨린파의 열렬한 지지자 11명을 자신의 집에서 살해한 뒤 시체들을 산토스피리토 병원 앞의 거리에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살인 사건은 로마에서 엄청난 논란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루도비코는 물론 미글리오라티 가문과 연관된 교황청 관계자들과 심지어 인노첸시오 7세마저도 잠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피신을 하는 와중에 약 30명 정도의 구엘프파 지지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노첸시오 7세는 또다시 나폴리 왕국의 라디슬라오 왕에게 도움을 청했고, 라디슬라오 왕은 1406년 1월에 교황 관계자들을 추격하던 기벨린파들을 진압했다. 한편 인노첸시오 7세는 [[아비뇽 유수]]로 말미암아 발생된 [[서방교회 대분열]]을 끝내고자 [[프랑스 왕국]]의 왕과 유명 신학자들, 그리고 [[아비뇽]]의 [[대립교황]] [[베네딕토 13세(대립교황)|베네딕토 13세]]까지 초청해 서로 협의를 하는 의회를 계획했으나 1405년 루도비코의 만행으로 인해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베네딕토 13세는 인노첸시오 7세의 목적에 동감해 자신과 인노첸시오 7세가 동시에 퇴위를 해 새로운 단일 교황을 선출하자고 제안했으나 인노첸시오 7세는 온갖 핑계를 둘러대며 이를 거절했다. 베네딕토 13세는 대분열의 걸림돌은 인노첸시오 7세의 의지박약이라고 비판했다. [[분류:1339년 출생]][[분류:1406년 사망]][[분류:나폴리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인 교황]][[분류:15세기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