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인도의 역사)] ||||||<:> {{{+3 '''인도-스키타이'''[br]'''Σάκαι'''}}}[br]''Sákai''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43px-IndoScythianKingdom.svg.png]] || ||<:> 존속기간 ||||기원전 2세기 ~ 기원후 3, 4세기 || ||<:> 주요 도시 ||||[[탁실라]], 마투라, [[상갈라]] || ||<:> 국가원수 ||||왕(바실레우스) || ||<:> 주요 국왕 ||||마우에스(기원전 85?~기원전 60) || ||<:> [[언어]] ||||샤카어[* 스키타이의 동부 일파 언어. 훗날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어]]로 발전], 코이네 [[그리스어]][br][[산스크리트어]] || ||<:> [[종교]] ||||[[그리스 신화|그리스 종교]], [[불교]] || ||<:> 종족 ||||[[스키타이|사카인]], [[그리스인]], 인도 아리아인 || ||<:> 성립 이전 ||||[[박트리아|박트리아 왕국]], [[인도-그리스 왕국]] || ||<:> 멸망 이후 ||||[[서사트라프]]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그리스어]] ||Σάκαι (''Sákai'') || ||<|2> [[산스크리트어]] ||शाक (''Śaka'') || ||설명[br]{{{#!folding [ 펼치기 · 접기 ] 단, 기원전 인도에서는 [[데바나가리 문자]]가 쓰이지 않았고 [[브라흐미 문자]]와 함께 서북부 한정으로 카로슈티 문자가 쓰였다.}}} || || 고대 [[페르시아어]] ||𐎿𐎣 (''Sakā'') || ||<|2> [[한자]] ||塞 (새) || ||설명[br]{{{#!folding [ 펼치기 · 접기 ] 현대 [[중국어]]로 '사이'(Sāi)라고 읽지만 백스터-사가르의 재구에 의하면 [[상고한어|상고 중국어]]로는 '스으끄'(sˤək-s, Sək)에 가깝게 읽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시대에 인도-스키타이 왕국들 중 가장 유명한 나라를 '계빈'(罽賓)이라고 부르며 교류했는데, 지금의 [[간다라]] 혹은 [[카슈미르]]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 || [[영어]] ||Indo-Scythians/Sakas ||}}} [목차] [clearfix] == 개요 == 기원전 2세기 전후 [[월지]]에게 쫓겨온 [[스키타이]]의 일파인 [[사카족]]들이 세운 국가군(群). 주로 [[펀자브]], [[라자스탄]], [[구자라트]] 지역에서 활동했고, [[서사트라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clearfix] == 역사 == 중국 [[한나라]]의 기록에 의하면 [[월지]]는 원래 [[난주]]에서 [[하미]]에 이르는 [[간쑤성]] 일대에 거주하는 부족이었는데 기원전 165년경 [[흉노]]에 의해 본래 근거지를 버리고, 천산북로를 따라 일리 강 유역으로 도망쳤다. 그 지역에는 [[스키타이]]의 일파인 [[사카족]]들이 살고 있었고 이 샤카족(Sakas)들은 이렇게 밀려오는 [[월지|월지족]]들의 침입에 못 이겨 [[박트리아]]로 이동했다. 보통 중앙아시아와 인도 지역의 [[스키타이]]들을 사카족이라 한다. [[석가모니]]가 왕자로 있던 [[샤카족|샤카(shakya)족]]과는 다르다. 기원전 130년 경 월지가 다시 박트리아의 사카족 영역을 침입하기 시작했고, 사카족 인도 서북부 지역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그 지역에는 이미 한 차례 사카족들에 의해 쫓겨났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박트리아 계열의 종족]]들이 [[인도-그리스 왕국]]들을 세운 상태였다. 하지만 갈 곳이 없던 사카족들은 이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의 국가들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인도-스키타이 왕국의 시초이다. 그리스인들의 뒤를 이어 인도에 침입하여 정착한 사카족들은 인도-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존의 그리스인이 차지했던 영토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기원전 130년경 처음 인도에 등장한 인도-스키타이는 후에 대략 다섯 개의 국가로 나뉘었다. 이전 [[인도-그리스 왕국]]의 영향으로 지도자의 얼굴을 새긴 화폐를 사용했고, 간다라 미술의 영향으로 조각 문화도 발달하여 그리스계 복장에 스키타이 특유의 개방적인 양식을 조화롭게 발달시켰다.[[https://www.livehistoryindia.com/history-of-india-2000-years/2020/04/11/north-in-turmoil-the-saka-and-pahlava-waves-150-bce400-ce|참고자료]] 기원전 50년경에는 [[갠지스 강]] 유역과 참발 계곡의 여러 왕국들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타바하나 왕조]]가 강력하여 그 지배는 지속되지 못했다. 거기다 서북쪽 [[아프가니스탄]]과 [[카슈미르]] 지역에서 월지 계열의 [[쿠샨 왕조]]가 일어나 인도-스키타이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결국 인도-스키타이는 같은 계열의 [[서사트라프]] 세력에 통합되어 완전히 흡수당했다. 경우에 따라 [[서사트라프]]를 인도-스키타이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인도-스키타이계 왕조는 서기 409년 [[굽타 왕조]]의 찬드라굽타 2세에게 최종적으로 멸망한 것으로 본다. [[분류:4세기 멸망]][[분류:그리스-인도 관계]][[분류:그리스-파키스탄 관계]][[분류:아시아의 왕국]][[분류:인도의 역사]][[분류:파키스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