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일본사]]에서 유명한 3명의 [[악녀]]. 현대에 와서는 [[중국 3대 악녀]]와 같은 전통적 관점에서의 악녀들이 재평가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 목록 == === [[호조 마사코]] === 北条 政子 (1157년 ~1225년)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부인]]. [[이즈(일본)|이즈 반도]]의 [[호족]]이었던 [[호조 도키마사|호죠 토키마사]]의 [[딸]]이다. 남편인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외도]]에 심하게 질투하여 그 [[첩]](亀の前; 카메노마에)의 거처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증오하는 첩을 내쫓기도 하였으며, 또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자신이 낳은 아들]]을 [[쇼군]] 자리에서 끌어 내려 억지로 출가시킨 후, 죽음으로 내모는 매정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섯살 손자조차 성난 불길 속에서 태연하게 죽여 버리는 잔인함, 또한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온 의모(牧の方; 마키노카타)를 시골로 추방해 버리는 등 어려 악행이 유명하며, 그 외의 여러 의문사 및 암살의 연출자가 아닌가의 소문이 돌았다. 또, 일본에서 꽤 인기있는 역사적 인물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요시츠네]][* [[언더독 효과]] 혹은 약자 및 패배자에게 동정심을 표하는 심리를 나타내는 일본어가 호간비키(判官贔屓)인데, 이는 형에게 이용만 당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요시츠네의 관직명 호간(判官)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역사적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혹은 [[사카모토 료마]]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1, 2위를 다투는 구도이다.]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서 악녀로 불렸을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요시츠네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긴 했어도 형에게 반역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당시 [[미나모토]] 집안[* 정확하게는, 카마쿠라 쇼군을 세습하는 [[카와치 겐지]] 계통의 집안을 의미한다. [[미나모토]](源)라는 글자 자체는, 한국의 김씨나 이씨처럼 다양한 본관의 여러 가문들이 공유하던 한자독음이었다.]의 동량(후계자)을 독점하려는 요리토모가 요시츠네가 황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고깝게 여겼고 호조 마사코 역시 이를 부추겼다는 의혹이 있다. 거기다 요리토모가 사망한 이후, 카마쿠라 막부의 헤게모니는 외척이었던 호죠 가문이 장악하는데, 토사구팽-누명-숙청이 반복되던 카마쿠라 막부 초기의 정변 속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초대 쇼군]]의 적통마저 [[멸족]]되어 실권을 [[찬탈]]당하기까지 했으므로[* 초대 쇼군의 직계이 아닌, [[카와치 겐지]] 방계의 동량들 또한 대부분 요리토모에 의해 숙청당했기 때문에 유력한 카와치 겐지의 인물은 진작에 죄다 사라진 뒤였다.(...)] 여기에 대한 [[일본사의 음모론]]까지 더해지면서 더더욱 미움을 받기 쉬워진 것도 있다. 마사코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 부분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C%A1%B0_%EB%A7%88%EC%82%AC%EC%BD%94#%ED%9B%84%EB%8C%80%EC%9D%98_%ED%8F%89%EA%B0%80|한국어 위키피디아 문서]]에 의하면 <[[아즈마카가미]](吾妻鏡)>, <구칸쇼(愚管抄)>[* 죠큐의 난 당시 활동하던 천태종 승려 지엔(慈円)이 지은 사론서. 지엔(1155-1225)은 마사코(1157-1225)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로 겐페이 전쟁에서 조큐의 난으로 이어지는 혼란상을 몸으로 겪은 인물이기도 하고, 구칸쇼에 아즈마카가미와는 충돌하는 내용이 종종 기술되어 있어 교차검증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등에서 마사코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고, 무난한 고평가의 흐름은 무로마치 시대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마사코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서 수입한) [[유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는 [[에도 시대]]로 보여지는데, 외척 가문(호죠)이 본가(카와치 겐지)를 멸문시킨 행위가 일본 유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저평가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본 3대 악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 [[히노 도미코]] === 日野富子 (1440년 ~ 1496년)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정실부인]]이자 일본 희대의 악녀. 3대 악녀 중에서도 끝판왕으로 취급받는다.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의 시작인 [[오닌의 난]]의 원인제공자 중 한 명이다.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 지위 및 권력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치부와 권력강화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인해 대표적인 악녀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http://indoor-mama.cocolog-nifty.com/turedure/2012/05/post-3a86.html|#]] === [[요도도노]] === 淀殿 (1569년 ~ 1615년) [[전국시대(일본)|전국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인물. [[아자이 나가마사]]와 [[오이치]](お市) 사이의 장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도요토미 츠루마츠]]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불륜|바람기]] [[탁란|상대인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그런 소문을 흘린 사람들을 처벌한 것. 둘째 아이인 히데요리를 [[출산]]한 후 히데요시의 양자로 지금까지 후계자로 여겨지던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자살로 몰아 히데쓰구의 일가를 몰살시킨 것 등으로 악녀로 평가 받는다. [[https://okwave.jp/qa/q7138413.html|#]] 지금은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등쌀에 인생 말아먹은 전국시대의 피해자로 보는 면도 생겨서 3대 악녀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처벌이나 히데츠구는 요도도노가 아니고 히데요시가 전부 한 것이다.[* 요도도노가 히데요리를 낳자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당시 후계자였던 히데쓰구를 처형한 데다가 그 자손까지 전부 숙청했다.][* 사실 이외에도 히데요시에게는 [[네네]]라는 정실이 있었는데 아이는 낳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명하고 내조를 잘 하는 [[여성]]으로 오다 노부나가도 그녀를 칭찬하고 [[바람(관계)|바람]]을 피우던 [[호색한]] 히데요시를 욕했을 정도였는데 하필 그녀가 출가를 하고 요도도노는 히데요리의 모친으로써 권세를 누린 데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은 네네를, 서군은 요도도노를 업고 싸웠다는 점도 있어서 욕을 먹은 것도 있다. 한마디로 [[첩]]이 적자를 업고 정실에게 개겼다는 것 때문에 평가가 낮았던 것. 하지만 현재는 당대의 역사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런 거 없다는 게 대세가 되었다.] == 기타 == '3대'에는 들지 않지만 [[시라카와 천황]]의 [[황후]] [[후지와라노 도쿠시]]도 [[호겐의 난]]을 유발해 [[헤이안 시대]]를 몰락으로 이끈 [[만악의 근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카스가노츠보네]]를 3대 악녀 중에 대신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정작 카스가노츠보네도 실제에 비해 악행이 과장되었다.[* 오히려 카스가노츠보네는 실책도 있긴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보좌하며 막부의 기틀을 다진 명신에 가깝다.] [[에이코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나 [[오오쿠(만화)|만화 오오쿠]]에서 카스가노츠보네가 곱씹어보면 --[[오오쿠(만화)/등장인물#s-1.1|개뻘짓]]-- 섬뜩한 쓰레기로 등장하는건 그냥 각색이다. == 관련 글 == * [[중국 3대 악녀]] * [[조선 3대 악녀]] * [[악녀]] [[분류:일본의 역사]][[분류:일본사/여성]][[분류:일본사/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