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 [include(틀:라인 동맹 구성국)] ---- ||<-3><#fff> {{{#009900 {{{+1 '''작센 왕국'''}}}[br]'''Königreich Sachsen'''}}} || ||<-2> [[파일:작센 왕국 국기.svg|width=100%]] || [[파일:작센 왕국 국장.svg|width=100%]] || ||<-2><#009900> {{{#fff '''국기'''}}} ||<#009900> {{{#fff '''국장'''}}} || ||<-3><#fff> {{{#009900 '''위치'''}}} || ||<-3><#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German_Empire_-_Saxony_%281871%29.svg.png|width=250]] || ||<-3><#009900> [[1806년|{{{#fff '''1806년'''}}}]] {{{#fff '''~'''}}} [[1918년|{{{#fff '''1918년'''}}}]] || ||<-3><#fff> {{{#009900 '''역사'''}}} || ||<#009900><-2> {{{#fff '''성립 이전'''}}} ||<#009900> {{{#fff '''멸망 이후'''}}} || ||<-2><#fff> [[작센 선제후국|{{{#009900 '''작센 선제후국'''}}}]] ||<#000000> [[바이마르 공화국|'''{{{#fff 바이마르 공화국}}}''']] || ||<-3><#fff> {{{#009900 '''지리'''}}} || ||<#009900> {{{#fff '''위치'''}}} ||<-2>독일 [[작센]] || ||<#009900> {{{#fff '''수도'''}}} ||<-2>[[드레스덴]] || ||<-3><#fff> {{{#009900 '''인문환경'''}}} || ||<#009900> {{{#fff '''언어'''}}} ||<-2>[[독일어]] || ||<#009900> {{{#fff '''종교'''}}} ||<-2>[[루터파]] [[개신교]](국교)[br][[가톨릭]](왕실 종교) || ||<#009900> {{{#fff '''민족'''}}} ||<-2>[[독일인]] || ||<-3><#fff> {{{#009900 '''정치'''}}} || ||<#009900> {{{#fff '''정치체제'''}}} ||<-2>[[입헌군주제]] || ||<#009900> {{{#fff '''국가원수'''}}} ||<-2>[[왕]]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왕국]]이었으며 수도는 [[드레스덴]]이었다. 1910년 기준으로 면적 14,993 km², 인구 481만 가량이었다. [youtube(r5Pj6US8Zk4)] 작센 왕국의 국가 'Gott segne Sachsenland', 지크프리트 아우구스트 말만(Siegfried August Mahlmann, 1771~1826)이 작사하였고, 곡조는 [[God Save the King|영국 국가]]의 곡조를 빌렸다. == 역사 == [[베틴 가문]]이 다스리던 왕국이었으며, 오늘날 [[작센]] 영역과 대체로 비슷하다.[* 1990년 작센 주를 재구성하면서 구 작센의 영역과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동부 극히 일부 지역은 지금 [[폴란드]]이다.] 신민의 95%는 [[프로테스탄트]]였는데, 정작 [[왕실]]은 [[가톨릭]]이었다. 1697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아우구스트 2세]]로 선출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 개종 과정에서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인 [[아내]]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의 크리스티아네가 평생 별거를 선언하고[* 남편이 폴란드의 왕이 되면서 크리스티아네도 [[왕비]]가 되었지만, 평생 폴란드에 발 한발자국도 딛지 않았고 국왕 대관식에까지도 참석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퇴위하라고 반발한 흑역사도 있다. 이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아우구스트 2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는데 별칭이 '강건왕'(der Starke)이였다.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다름아닌 무시무시한 [[여성]] [[호색한|편력 때문이였다.]] 확인된 아우구스트 2세의 '''[[사생아]]만 300명이 넘고''', 심지어 애인 중 올제스카라는 여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근친상간|그의 사생아]]'''였다는 악소문도 돌았다. 게다가 자신을 지원해 준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1세]]에게 선물이랍시고 [[포르노]]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정작 표트르는 화를 내기는 커녕 유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실 [[표트르 대제]]도 성격이 별나기로 유명했다. 항목 참조.] 러시아뿐만 아니라 당시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게는 [[누드]] 그림을 선물했는데, 일단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표면상으론 화를 냈지만 조용히 아우구스트의 선물을 받아들였다.(...) 원래 [[작센 선제후국]]이었으나 1806년 왕국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대프랑스 동맹에 붙었다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편을 드는 등, 줄타기를 잘못한 죄로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자국군에게 버림받고 [[프로이센 왕국]]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처지가 되었다. 프로이센은 러시아에게 [[포젠]] [[대공국]]을 할양하는 대신 대토보상으로 작센 전체를 합병하고 싶어했지만 [[오스트리아 제국]]를 비롯한 타국의 견제로 인해, 1815년 [[빈 회의]]에서 프로이센에게 국토의 60%를 잃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1866년 [[보오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편에 가담했으나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패배한 후 프로이센 주도의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작센 왕국은 작센 자유주(Freistaat Sachsen)로 개조되었고, 이 이름은 [[동독]] 통치기(1952년~1990년)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군사 == [include(틀:역대 독일의 군사조직)] [[파일:작센 제4보병연대 1대대 군기.jpg|width=20%]] ▲ 작센 제4보병연대 1대대의 군기. 작센 왕국군(Königlich Sächsische Armee)을 보유했다. 작센 선제후국 시절의 군대를 기원으로 하며 1806년 작센이 왕국으로 승격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군대가 되었다. 작센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작센군은 [[라인 동맹]] 군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폴레옹의 몰락 직전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동맹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후 [[독일 연방]]이 설립되자 작센군은 연방군의 일원이 되었다. [[보오전쟁]]이 발발한 1866년 당시에는 약 32000명의 군대를 보유하여 연방 내에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바이에른에 이어 4번째로 거대한 군대 규모를 자랑했으나 프로이센군에 패배했고, 이후 프로이센군이 주도하는 북독일 연방군에 편입된다.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되자 작센군은 [[독일 제국군]]에 흡수되어 제12군단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작센군은 자체적인 전쟁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평시에는 프로이센이나 타 영방국 또는 제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다만 전시에는 프로이센군의 편제에 속하게 된다. 1899년 작센군 소속으로 독일 제국군 19군단이 추기적으로 창설되면서 총 2개 군단 규모로 늘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끝으로, 1918년 제국 멸망과 함께 해체되었다. == 왕사(王史) == [include(틀:역대 작센 국왕)]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1806-1827) - 별명은 정의왕(der Gerechte). * [[안톤(작센)|안톤]] (1827-1836) - 별명은 친절왕(der Gütige)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836-1854) * [[요한(작센)|요한]] (1854-1873) * [[알베르트(작센)|알베르트]] (1873-1902) * [[게오르크(작센)|게오르크]] (1902-1904)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1904-1918) === [[작위 요구자/유럽/독일|왕위요구자]] === ( ) 안은 가문의 수장 재위기간. 작센 왕가의 수장은 마이센 [[변경백]](Marfgraf von Meißen)이라는 직함을 쓴다.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1918-1932) *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1932-1968) -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의 차남이지만, 형이자 [[세자]]인 게오르크가 공화정이 된 이후 [[예수회]]에 들어가 탈속하는 바람에 후계자가 됐다. * 마리아 에마누엘 (1968-2012.7.23.) -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장남. [[안할트]]의 아나스타시아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다. * 알베르트 (2012.7.23.-2012.10.6.) -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차남. 평민 엘미라 헨케와 결혼했지만 역시 자녀가 없었다. ==== [[베틴 가문]]의 분열 ====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의 두 아들 모두가 자녀가 없자 후계자 문제가 시급했는데, 첫 번째 후보는 세 [[누이]]들 중 유일하게 왕공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코하리 분파]에 시집간 막내 [[여동생]] 마틸데(1936-2018)의 외아들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요하네스(1969-1987)였다. 같은 [[베틴 가문]]이고 [[귀천상혼]] 출신도 아니어서 상당히 이상적인 후보였지만 등산하다가 요절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코하리 분파도 요하네스의 부친 [[https://en.wikipedia.org/wiki/Prince_Johannes_Heinrich_of_Saxe-Coburg_and_Gotha|요하네스 하인리히]]가 사망한 2010년 단절되고 말았다. 그래서 코하리 가문의 권리는 같은 가문 출신인 [[불가리아]]의 [[시메온 2세]]에게 돌아갔다.] 차선책으로 마리아 에마누엘은 아피프(Afif) 가문[* [[레바논]]의 [[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으로, 안나와의 결혼 이후인 1972년에 작센-게사페 가문으로 바꾸었다.]에 시집간 둘째 여동생 안나[* 첫째 여동생 마리아 요제파는 독신이었다.]의 맏아들 알렉산더를 1997년에 후계자로 정하고 아내와 남동생 부부, 누이들과 귀천상혼 출신 사촌 3형제의 동의를 받았다. 일단 구 작센 왕국 헌법과 1997년 마리아 에마누엘에 의해 정해진 계승법에 의하면 여계 후손이 귀천상혼 후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작센-게사페의 알렉산더가 앞서지만, 5년 후에 귀천상혼 출신 [[사촌]]들이 이의를 제기, 반발하고 동생 알베르트도 동조하여 합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마리아 에마누엘이 알베르트보다 3개월 일찍 사망하면서 알베르트와 알렉산더가 각각 마이센 [[변경백]]위를 자칭하며 대립 왕위계승자가 되었고, 2012년 10월 알베르트도 사망하면서 직계가 끊기고, 귀천상혼 라인인 뤼디거[*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의 3남 에른스트 하인리히 왕자의 차남인 티모 왕자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집 딸이어서 아버지가 왕실에서 절연당했다. 티모에게는 위로 형, 남동생이 1명씩 더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미혼으로 사망했다.]가 알베르트의 다음 왕위요구자가 되었다. 뤼디거는 2022년 사망하였고, 지금은 뤼디거의 장남 다니엘이 알렉산더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귀천상혼 배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뤼디거를 건너뛰고 또 다른 [[육촌]]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 가문]]의 가톨릭 분파이다.]의 [[가주]] 카를 프리드리히가 왕위요구자가 된다. 원래 알렉산더의 어머니 안나의 결혼 역시 당초에는 귀천상혼으로 간주되었지만, 나중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알렉산더를 후계자로 정했다. 두 후보 모두 엄밀히 따지면 귀천상혼 계통에 해당하기에 남계인 뤼디거를 지지하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마리아 에마누엘의 후계자 지명을 유효한 것으로 간주해 알렉산더를 정통으로 보느냐, 알렉산더를 귀천상혼 계통으로 간주해 남계인 뤼디거에게 우선권을 주어 뤼디거의 계통을 정통으로 보느냐의 문제로 논란이 있는 것이다.] 마리아 에마누엘 입장에서는 요하네스의 요절이 여러모로 뼈아팠다. 독일의 다른 [[왕조]]들은 엄밀히 말해 작센 왕실이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살리카법|여계 후손인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 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개싸움~~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 계통의 종가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대공가]]가 작센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도 조만간 단절될 예정이라는 게 함정--[* 단절 후 명목상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위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작위)|공가]]에서 계승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2015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의 [[당주]] 안드레아스와 [[작센마이닝겐]] 공가의 수장 콘라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의 수장 미하엘 이렇게 세 [[가문]]의 수장이 공동으로 알렉산더의 가문 구성원 지위를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기에 대공가가 단절되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에서 작센의 왕위계승권 주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작센-게사페 가문 * 알렉산더 (2012-) : 1954년생으로 [[바이에른]]의 기젤라와 결혼, 슬하 3남 1녀. * 작센(귀천상혼) 가문 * [[https://en.wikipedia.org/wiki/R%C3%BCdiger,_Margrave_of_Meissen|뤼디거]] (2012-2022) * 다니엘 (2022-) : 1975년생으로 슬하 1녀 1남. [[분류:개신교 국가]][[분류:독일의 역사]][[분류:라인 동맹 구성국]][[분류:독일 연방 구성국]][[분류: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분류:유럽의 왕국]][[분류:1918년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