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손오 장굉의 손자, rd1=장상(손오), other2=손오의 유격장군, rd2=장상(삼국지), other3=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rd3=장상(삼국지연의))] 張爽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관료. == [[정사 삼국지]] == 권학종사를 지낸 인물로 220년 [[조비]]가 [[헌제]]를 [[선양]]을 빙자한 [[폐위]]로 [[존호]]를 칭해 [[연호]]를 고쳐 [[황초]]라 하면서 [[위(삼국시대)|조위]]의 [[황제]]에 즉위했는데, 이에 [[유비]]가 발상해서 상복을 입고 ~~멀쩡히 살아있던~~ 헌제의 [[시호]]를 추존해 효민황제라 [[추존]]했다. 또한 여러 곳에 길조들이 있다고 하자 [[의랑]] 겸 양천후 [[유표(촉한)|유표]], 청의후 [[상거]], 편장군 [[장예]], [[황권]], [[사마(관직)|대사마]]속 [[은순(촉한)|은순]], [[익주]] 별가종사 [[조작]], 치중종사 [[양홍(촉한)|양홍]], 종사좨주 [[하종(촉한)|하종]], 의조종사 [[두경]], 권학종사 [[윤묵]], [[주군(촉한)|주군]][* 선주전 원문에는 [[초주]]가 참가했다고 되어 있으나 초주전에서는 초주가 권학종사가 된 것은 유비가 죽은 [[건흥]] 연간에 [[제갈량]]이 명한 것이며 초주의 나이를 상고하면 당시에는 겨우 20대 초반이라 이런 중대사항에 참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고증하고 있다. [[화양국지]]에는 상서로운 도참을 말할때 "[[주군(촉한)|주군]](周群)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적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심가본은 "부친 군" 두 자가 베끼다 잘못되어 거꾸로 된 것(...)으로, 응당 "신 군의 부친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라고 하는 것이 화양국지의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여기서 나오는 초주의 이름은 주군이 와전된 것으로, 글을 베끼다 군(群) 자를 놓치고, 다시 초(谯) 자를 잘못 더한것이라고 했다. [[중국어 위키백과]]에 제공하는 화양국지본에서도 같은 이유로 '주군'으로 적고 각주로 '(화양국지의) 각 구본(舊本)과 삼국지에는 동일하게 '초주'라고 적혀있다. 고찰하건데 당시 초주는 아직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尚未入仕), 이 표 안에는 주군(周群)이 밝혀져 있다. 당시 전사(傳鈔)하면서 잘못 쓰여 주군이 초주가 되었다. 이곳을 개정하니 상세한 주를 그대로 따른다.'라고 교정했다.] 등과 함께 황제가 되기를 권했다. == [[삼국지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제갈량]]이 꾀병을 부려 자신의 집에 오게 했는데, 제갈량이 유비의 허락을 받는 동안에 바깥에서 안한장군 [[미축]], 청의후 상거, 양천후 유표, 별가 조조, 치중 양홍, 의조 두경, [[태상|태상경]] [[뇌공#s-1]], [[광록훈|광록경]] [[황권]], 제주 하종, 학사 윤묵, 사업 [[초주]], 대사마 은순, 편장군 장예, [[소부]] [[왕모#s-2]], 소문박사 [[이적(삼국지)|이적]], 종사랑 [[진밀]]과 함께 대기했다가 [[계획대로|제갈량이 유비의 허락을 받고 병풍을 치자 쏟아져 나와서 즉위를 청하니]] 유비는 ~~낚인 것을~~ 한탄하면서 [[한나라]]의 황제에 즉위하여 [[촉나라]](계한)를 건국한다. == 창작물에서의 등장 ==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43, 무용 21, 지모 54, 정무 54, 인사 62, 외교 57의 능력치로 165년생으로 나온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장상, version=81)] [[분류:촉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