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전국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인물, rd1=장의(동음이의어))] [include(틀:사기)] [include(틀:귀곡자의 제자)] 張儀 (? ~ 기원전 309년) [목차] == 개요 ==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종횡가]] 중에 한 명. [[소진(전국시대)|소진]]의 '''합종책'''에 대항하여 '''연횡책'''을 기획한 전략가이다. == 생애 == 친구였던 [[소진(전국시대)|소진]]과 함께 [[귀곡자|귀곡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학업을 모두 마치고 귀가한 이후,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열심히 유세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로 가서 그곳의 재상과 술을 마셨는데... 재수없게도 그 자리에서 초나라 재상이 아끼던 귀중한 벽옥(碧玉)이 없어지고 말았다. 재상의 빈객(賓客)들은 모두 장의를 의심하며, ''''장의 이 자는 매우 가난해서 품행이 좋지 못하다. 재상의 벽옥을 훔친 것은 반드시 장의 소행일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에 여럿이 장의를 붙들어 매고는 곤장 몇백 대를 호되게 쳤는데[* 당시의 곤장은 20대 정도만 맞아도 죽는다. 아마도 중국 특유의 과장으로 추정. 혹은 회초리로 치는 태형을 곤장으로 오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매질을 해도 자백은 커녕, 자신의 범행을 철저히 부인하여 의미가 없었는지 때리던 매를 그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처참한 장의의 모습을 본 그의 아내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책을 끊고, 유세 따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농사나 지을 것이지... 괜히 송사리가 용 노릇하겠다고 하니까 험한 꼴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자 장의는 아내의 이 말을 듣자, 생뚱맞게도 이렇게 물었다. >"내 혀가 아직 있는지 없는지 보시오?"(視吾舌尙在不?) >"혀가 있네요." 웃으며 말하자, >"그럼 됐소"라고 말하였다. 그 무렵 소진은 조나라 왕을 설득해 합종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진나라가 제후들을 공격해 합종을 깨트리지 않을까 염려해 적당한 인물을 진나라로 보내 막기로 했다. 그는 장의에게 사신을 보내 은근히 자신에게 오기를 권유했다. 솔깃한 장의는 소진이 있는 조나라로 가 그를 만났으나 소진은 일부러 그를 늦게 만났으며, 대접도 대청 아래 앉게 하는 것으로 푸대접을 했고 식사도 마부나 첩이 먹는 음식을 주며 이리 꾸짖었다. >"자네처럼 재능이 있는 자가 이토록 곤궁하니 보기가 딱하군. 내가 자네를 추천하여 부귀를 누리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자네는 거두어 쓰기에는 부족한 인물일세." 그리고 장의를 돌려보냈는데, 옛 친구에게 이런 치욕을 당한 장의는 조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진(통일왕조)|진(秦)나라]]로 떠났다. 그 후 소진은 가신에게 일러 은밀하게 장의를 도울 것을 명령했다. 가신은 명령대로 장의에게 금전과 편의를 대주되 누가 시킨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마침내 진나라의 [[혜문왕]][* [[상앙]]을 죽였던 그 태자가 맞다.]을 알현한 장의는 좋은 인상을 얻어 객경의 벼슬을 얻었다. 소진의 가신이 하직하고 떠나려고 하자 장의는 깜짝 놀랐는데, 이때 가신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소진이 일부러 장의를 격분시켜 진나라로 보내 벼슬을 하게 한 후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 합종의 맹약을 깨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 설명을 했다. 이에 장의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이 또한 제가 배운 술책 중에 있던 것인데, 미쳐 깨닫지 못했구려. 저는 분명히 소진에 미치지 못하오. 이제 갓 등용된 제가 어찌 조나라를 칠 계획을 꾸미겠소. 돌아가거든 소군(소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해 주시오. 소군이 살아있는 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꾸밀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오." 장의는 진나라의 재상이 된 뒤 초나라 재상에게 격문을 써서 보냈다. > "지난날 그대와 술을 마셨을 때 내가 그대의 벽옥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그대는 나에게 매질을 가했다. 그대는 그대의 나라를 잘 지키라. 나는 그대의 성을 빼앗을 것이다."[* 훗날 장의는 이 경고대로 유독 초나라에게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치명적인 손해를 안긴 것으로 톡톡히 복수를 했다.] 그리고 그는 이후 소진의 [[연(춘추전국시대)|연(燕)]] · [[조(전국시대)|조(趙)]] · [[한(전국시대)|한(韓)]] · [[위(전국시대)|위(魏)]] · [[제(춘추전국시대)|제(齊)]] · 초(楚) 등 6국이 세로로 합하여 진나라에게 대적하는 합종책에 대항해서 오히려 위(魏) · 조(趙) · 한(韓) · 제(齊)나라 등의 제후국을 설득하여 '''진나라를 중심으로 이 나라들을 전부 가로로 연이어지게 하여 동맹관계를 맺는 연횡책을 제시해 합종책을 완벽히 깨버리게 된다'''.[* 마침 중간에 소진이 제나라에서 암살당했기 때문에 거리낄 필요가 없었다. ] 허나 혜문왕이 죽은 뒤에 장의는 권력에서 밀려났다. 태자 시절부터 장의를 싫어했던 [[무왕(진)|무왕]]은 장의를 멀리했고, 제후들은 무왕과 장의 사이가 벌어진 것을 알고 다시 합종했다. 결국 장의는 위나라로 떠났으며[* 장의의 측근 장수였던 위장(魏章)도 함께 쫓겨난다.], 그곳에서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재상이 되었지만 겨우 1년 만에 사망했다. 다만 최근 연구 결과 장의의 경우, 실제로는 소진(기원전 310년 활동)보다 앞서서 활동했으며, 진나라의 천하 통일 시기와는 100여 년 정도의 거리가 있다. 또 혜문왕 때 [[쓰촨 성|촉]]으로 영토를 넓히는 것을 반대하고, [[주나라]] 방면을 정벌할 것을 주장했으나 혜문왕이 파, 촉 정벌을 주장한 [[사마착]]에 의견을 따르고 장의에 의견은 따르지 않았는데, 이것이 되려 배후지와 후일 통일의 기반을 확보하는 탁견이 된 지점도 있다. == 미디어 믹스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037.jpg|width=100%]] || || 삼국지 12, 13 || 삼국지 10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통솔력 19/무력 32/지력 94/정치 96/매력 13. 능력치만 보면 훌륭한 내정요원으로 보이지만 특기 배분이 심히 비범한데, 내정, 전투, 계략, 일기토 계열 특기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전 장수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설전 계열 특기를 모두(면박까지!) 가지고 있는 장수이다. 그리고 나머지 특기는 명사와 간첩. 즉, 간첩 마냥 슥 들어와서 말만 잘하는 유명인사라는 걸 나타내는 특기 배분이다. [[삼국지 11]]에 개사기 [[고대무장]]으로 등장하는데 특기는 [[논객]]. 무려 지력 93의 개깡패 논객이다. [[인상여]]보다 지력은 높지만 성격은 냉정[* 삼국지 11의 설전에는 분노 게이지가 있는데, 성격에 따라 분노 시 효과가 달라진다. 냉정의 경우는 공격력이 약간 올라가고 매턴 재고가 가능하며 상대방이 화술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다만 매턴 재고를 해봤자 운이 없으면 좋은 설전 카드가 나오기는커녕 최악의 경우 오히려 전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겨우 3턴 동안 무적 효과, 그것도 화술 커맨드에 무참히 씹히는 대담 성격보단 이것저것 붙은 부가 효과가 많아 좀 나은 편이다.]이라 그럭저럭. 매력은 '''4'''로 밑바닥을 긴다. --이런 매력으로 세객노릇은 어떻게 했는지-- 논객 보유자 중 유일한 90대 지력 소유자다. 심히 개사기 캐릭터 [[삼국지12]] PK에서도 등장하는데 자신의 혀를 가리키는 일러스트를 가지고 나온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75/22/93/94 병과는 궁병 전법은 허유엄살. 친구인 소진보다 정치는 조금 높지만 나머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삼국지 13]]에서는 그냥 논객머신. 동맹이고 뭐고. 일단 보내면 무조건 일은 저질러준다. 외교의 달인답게 보내주면 알아서 다 체결해주고 온다. 설파의 장인답게 군락 하나 뺏어 오라고 보내면 싹싹 털어버린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설) 표시가 아닌 (파) 표시로 나온다. 장의가 들어가면 부락을 방어하기 위한 지장 한 명을 보내서 응전하는데 장의는 상대를 모조리 발라버린다. 심지어 그 친구인 소진이나 제갈량, 주유, 사마의, 육손, 방통, 강태공 여상이나 장자방 장량조차도 일정 확률로 이기는 경우가 있다. 능력치는 75/22/93/94에. 상업2 / 문화4 / 설파9 / 교섭9 / 언변9 이다. 중국 사극 <대진제국2>에서는 혜문왕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 한때 진나라의 장군이었다가 떠난 공손연이 주도한 합종책에 맞서 뛰어난 외교력으로 진나라를 강국으로 이끌지만 혜문왕 사후에는 무왕이 '저거 중용하긴 싫은데 공이 많고 아버지가 총애했으니 명분없이 버리지도 못하겠고'라 고민하면서 냉대받던 중 시기하던 세력의 기습으로 아내가 죽은 후 진나라를 떠난다. 어머니도 죽은 후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들린 객잔의 주인이 공손연이라 함께 술을 마시고 장의가 혜문왕을 처음 만날 때를 떠올리며 노는 것으로 극에서 퇴장한다. [각주] [[분류:춘추전국시대의 재상]][[분류:기원전 30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