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청계천의 교량]] [include(틀:청계천의 교량)]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통교.jpg|width=100%]]}}} || || {{{#fff ''' 장통교 '''}}} || [목차] [clearfix] == 개요 == {{{+1 長通橋 / Jangtonggyo}}} [[청계천]]의 [[교량|다리]]이다. [[청계광장]] 기준으로 청계천의 4번째 다리이다. == 이름 == ‘장통교(廣通橋)’는 장통방(長通坊)의 다리란 의미이다. ‘장통(長通)’ 뜻은 ‘길게(長) 통한다(通)’이다. [[조선시대]]에 [[북악산]], [[인왕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지금의 [[광화문광장|광화문]] [[동아일보|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우회하여 흐르다가 [[남산(서울)|남산]] 기슭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합쳐졌던 곳이 장통방 언저리였다. 여기서 큰 물줄기가 되어 길게 이어진다는 뜻의 ‘장통’이 동네와 다리 이름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0&cp_code=cp0223&index_id=cp02230073&content_id=cp022300730001&search_left_menu=|#]] 이외에 줄임말인 ‘장교(長橋)’를 비롯하여 ‘장창교(長倉橋)’, ‘장찻골다리’, ‘장추교(長楸橋)’, ‘장추골다리’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장창교와 장찻골다리는 장통교 주변에 [[재래시장]]의 [[창고]]들이 길게 늘어서 붙은 이름이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장통교(長通橋)|#]] 장추교는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 장추골다리는 《[[수선전도]]》에 나오는 명칭으로 유래는 알 수 없다. 일반 백성들은 주로 장교라고 많이 불렀다.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장교동(長橋洞)의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 위치 == 원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4길 (관철동)과 [[중구(서울)|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종로구 종로12길 (관철동)과 중구 남대문로10길 (삼각동) 사이에 있다. 쉽게 말하면, 종각 젊음의 거리의 큰 길 바로 남쪽, 청계천 한빛광장의 바로 북쪽에 있다.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통교 옛 모습.pn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난간없는 수표교.png|width=100%]]}}} || || {{{#fff ''' 장통교 옛 모습 '''}}} |||| {{{#fff ''' 장통교와 수표교. 뒤에 보이는 다리가 장통교이다.[* 미국의 한 대학한국학연구소에서 보관 중이던 것을 근・현대 사료수집가 김영준씨가 2005년 1월 16일 [[KBS]] 《[[TV쇼 진품명품]]》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https://news.v.daum.net/v/20050110071426104?f=o|#]]] '''}}} || 처음 지은 시기는 확실하게 모른다. [[교량|다리]]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와 '기해개조(己亥改造)'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보아 2번에 걸쳐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 단, 저 [[신미|신미년]]과 [[기해|기해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통교 1953.png|width=100%]]}}} || || {{{#fff ''' 1950년대 장통교 '''}}} ||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7월 12일 [[홍수]]로 가운데 두 칸이 유실되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907130020920202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9-07-13&officeId=00020&pageNo=2&printNo=3196&publishType=00020|#]] 그리고 1958년 복개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0년대에 진행된 [[청계천]] [[복원]][[공사]] 때 재건되었지만 원래 자리보다 약간 동쪽으로 옮겨져 세워졌고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과 [[삼성건설]]에 의해 준공되었다. == 구조 == === 조선시대의 모습 === === 현재의 모습 === * 길이 22m, 너비 11.8m, 높이 3.7m로 재질은 전부 [[화강암]]이다. ===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조대왕 능행반차도 1.pn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조대왕 능행반차도 2.png|width=100%]]}}} || ||<-2> {{{#fff '''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atcUrl=keyword&recommendIdx=3117|사진 출처 - 한국관광공사.]]] '''}}} || 다리 북쪽 밑 벽면에 〈정조대왕 능행반차도〉가 [[타일]] 형식으로 붙어있다. 재질은 [[도자기]]이며 타일의 개수는 무려 5120개이다.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으며 매년 3월마다 임직원들이 [[벽화]]를 청소한다. == 교통 == === 지하철 === *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2번 출구 (도보 4분) * [[서울 지하철 2호선]] [[종각역]] 3번 출구 (도보 7분) * [[서울 지하철 2호선|서울 지하철 2 ·]][[서울 지하철 3호선| 3호선]]: [[을지로3가역]] 1번 출구 (도보 9분) === 버스 === * [[https://place.map.kakao.com/12373416|이 곳]]을 참조. == 여담 == == 대중매체에서 == === 〈야인시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ilrkVPfOoU)]}}} || || {{{#fff ''' 부천판타스틱스튜디오의 장통교. 57초부터 나온다. '''}}} ||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배경 중 하나로 나왔다. 1부 2화에서 [[종로]] 패와 [[충무로|혼마치]] 패가 [[수표교]]에서 패싸움 할 때, [[최동열]]([[정동환]] 분)과 [[신마적(야인시대)|신마적]]([[최철호]] 분)이 지켜보는 곳으로 처음 나왔다. 다만, 수표교에 밀려서인지 1부에서는 등장이 많지 않다. 오히려 2부에서 나오는 장면이 더 많다. 명동패와 술 마신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김영철(배우)|김영철]] 분)이 [[삼청동]] 집에 갈 때 이 [[교량|다리]]로 건너갔고[* 그 때 [[백의사]] 단원들이 김두한을 미행했는데, 이를 눈치 챈 김두한이 이들을 때려눕혔다.], [[공산당]] 주먹 [[금강(야인시대)|금강]]([[나한일]] 분)이 여기서 [[무술]] 수련을 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정진영이. 장통교로 지나갈 줄 알았지. 사방을 둘러봐도 도망갈 길은 없다. 총 버려라. 벌집 나기 전에 총 버려, 이 새끼야!!!''' >-----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 [[조선청년전위대]] 대원들이 대한민청 본부를 습격했다가 실패하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돌아갈 때 이 다리로 건넜다. 그러나 그들이 장통교를 건너갈 것을 예상하고 매복하고 있던 [[신영균(야인시대)|신영균]]([[윤용현]] 분)이 이끄는 별동대에게 사로잡혀 끌려간다. [[6.25 전쟁]] 이후에는 희한하게 동대문상인연합회 건물 앞에 놓인 다리로 나온다. 시라소니 린치사건도 이 다리 앞에서 벌어졌고, 이를 따지러 [[맨발의 대장(야인시대)|맨발의 대장]]([[임주완]] 분)이 [[흥인지문]]에 찾아갔다가 도망친 다리도 여기였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115화로,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김영호(배우)|김영호]] 분)가 김두한을 협박하러 [[서울특별시의회|국회의사당]]에 갈 때 이 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이었다. 촬영장이었던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의 장통교는 실제와 싱크로율이 비슷했으나, 아무래도 세트이다보니 실제보다는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 2012년 3월에 촬영장이 철거될 때 같이 헐려 사라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LW-XnPo_PE8)]}}} || || {{{#fff ''' 〈야인시대〉 55회에서 등장한 장통교. 5분 49초부터 나온다. '''}}} || 합성물에서도 꽤 나온다. 바로 [[자동차]]가 폭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극 중 저 장면은 [[김두한(야인시대)/행적#s-3|중년 김두한]]([[김영철(배우)|김영철]] 분)이 [[좌익]]의 [[적색테러|암살]]을 피하려 차를 타고 이리저리 도망가다 그만 자동차가 청계천으로 떨어져 폭발하는 내용이다. 다만, 다른 폭발 장면들도 많기 때문에 이 장면이 많이 쓰이진 않는다. 이쪽은 말 그대로 자동차이기 때문에 대개 [[난폭운전]]이나 [[졸음운전]]의 결과물로 쓰인다.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폭☆8, version=398, paragrap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