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기자조선 국왕)] ---- ||<-2>
{{{#gold '''기자조선 39대 국왕'''[br]{{{+1 '''章平王 | 장평왕'''}}}}}} || || {{{#gold '''시호'''}}} ||장평왕(章平王) || || {{{#gold '''성'''}}} ||자(子) || || {{{#gold '''씨'''}}} ||기(箕) || || {{{#gold '''휘'''}}} ||윤(潤) || || {{{#gold '''생몰'''}}} ||기원전 3세기 ~ 기원전 232년 || || {{{#gold '''재위'''}}} ||기원전 251년 ~ 기원전 232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기자조선]]의 39대 국왕으로 시호는 장평왕(章平王)이고 휘는 기윤(其潤)이다. 현문왕의 [[태자]]였으며 그가 죽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의 존재는 족보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등 조작의 가능성이 있어 실존은 인정받지 못한다. == 생애 == 기원전 3세기 경 현문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자로 책봉 받았다. 기원전 251년, 현문왕이 죽자 즉위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그는 북호(北胡)[* [[연(춘추전국시대)|연]](燕)을 뜻하는 건지는 불명.]가 칭신하지 않자 친정하여 그들을 정벌하려 했으나 도리어 패배하여 큰 손실을 봤다고 한다. 만약 북호가 연나라를 말하는 것이라면 족보의 기록은 실제 사서와 1세대 차이나는 셈이다. 기원전 232년에 사망했고 왕위는 아들인 부(否)가 이었다. == 기타 == 그의 아들인 종통왕 부는 한국사상 최초로 이름이 전해지는 [[부왕(고조선)|부왕]]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 참고 == *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p81r_0020_0020_0020_0130|우리역사넷]] [[분류:기자조선의 국왕]] [[분류:기원전 23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