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의 인물, rd1=장표(후한))] 張表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자는 백달(伯達). == 행적 == [[익주]] 촉군 [[청두시|성도현]] 사람으로 [[양희]], [[정기(촉한)|정기]], [[양태]] 등과 함께 이름이 알려졌고 장중한 의표와 태도를 갖췄으며, 처음에는 명성과 관위가 양희와 같았고 후에 [[상서(관직)|상서]]까지 올랐다. 249년 [[마충]]이 사망하자 안남장군이 된 것과 동시에 그의 후임으로 249년부터 253년까지 내항 [[도독]]이 되었으며, 장표는 당시의 명사로 청렴과 명망이 ~~[[콩라인]]~~ 마충을 뛰어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염우]]가 되었으며, 258년 후장군을 지냈고 양희보다 먼저 사망했다.[* 양희보다 먼저 사망한 점을 고려하면 258년에서 261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부친 == 장표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다른데, 익부기구전에서는 [[장숙]]의 아들, [[화양국지]]에서는 [[장송]]의 아들이라 했기에 [[배송지]]는 이에 대해서 자세하지 않다고 했다. 중국의 연구자인 임내강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상충되는 기록에 대해서 장표는 본래 장숙의 아들이었다가 장송이 일찍 죽었기에 후사가 없어 양자로 보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류:촉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