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전중윤'''}}}[br]'''全仲潤'''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전중윤 회장.jpg|width=100%]]}}} || ||<|2> '''출생''' ||[[1919년]] [[8월 30일]] || ||[[강원도]] [[김화군]] 임남면 달전리 [br] (現 [[강원도]] [[철원군]] 임남면 달전리) || || '''사망''' ||[[2014년]] [[7월 10일]] (향년 94세)[*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 [[농심그룹]]의 창업주 [[신춘호]]와 마찬가지로 90세 넘게 장수했다.]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본관''' ||[[정선 전씨]][* 49세손 성산백파] || || '''종교''' ||[[개신교]][* [[https://blog.naver.com/donghlee1001/222245622563|#]] ] || || '''아호''' ||이건(以建) || || '''학력''' ||[[선린인터넷고등학교|선린상업학교]] {{{-2 (졸업)}}} [br] [[경희대학교/대학원|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2 ([[경영학]] / [[석사]])}}} || || '''배우자''' ||이계순 || || '''자녀''' ||장녀 전혜경 [br] 차녀 전문경 [br] 삼녀 전유경 [br] 사녀 전완경 [br] 오녀 전세경 [br] 장남 전인장 [br] 차남 전인성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양식품]]의 창업주이다. == 생애 == 1919년 [[강원도]] [[김화군]] 임남면 달전리[* [[정선 전씨]] 집성촌이다.][[http://www.cheorwonnews.com/mobile/view.asp?group_name=212&intNum=28294|#]]에서 태어났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선린상업학교]], [[경희대학교/대학원|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선린상업학교 졸업 후 [[조선총독부]] 체신국 보험과에 임용되어 [[공무원]]이 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보험]]계에 뛰어들었고 1957년 5월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에 참여해 1961년 5월까지 부사장을 지냈다. 당시 동방생명 강의수 사장은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의 [[장인]]으로 1963년 별세하면서 동방생명과 동화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를 매각했는데 당시 삼성에는 안국화재(현 삼성화재)가 있어 한진에 동양화재를 재매각한다.[* 메리츠화재는 한진 [[조중훈]] 회장 4남 [[조정호(기업인)|조정호]] 회장이 물려받고, 조정호 회장 부인이 LG창업주 [[구인회(기업인)|구인회]] 회장의 삼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 씨의 차녀다.] 하여튼 그렇게 보험업계에서 떠나 1961년 [[삼양식품]]을 창립하였다. 국내 최초로 [[라면]] 사업을 하기 위해 당시 처음 라면을 창시했던 일본 [[닛신식품]]에 기술 판매를 제의했으나 거절당하자 라이벌사였던 [[묘조식품]]에 문의하고 오쿠이 키요즈미 사장의 결단으로 라면의 면 제조기술은 원조를 받았으나[* 사실 경쟁사들도 많고 밀가루 면을 기름에 튀기는 것일 뿐이라 어찌 보면 스프보단 간단하기도 했다.], 묘조식품 임직원들의 반대로 [[스프]] 제조기술은 얻지 못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일본 공항에서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이 몰래 스프 제조기술 서류를 전해준다. 그렇게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하였는데, 당시는 닭고기 양념스프였으나 한국 사정에 맞게 변화되어 현재는 소고기 양념스프다. 1982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2010년 삼양식품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명예회장으로 재직하다가 2014년 7월 10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장지는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삼양목장에 마련되었다. 한국 최초로 라면을 보급하여 식품 업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업적으로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 산업포장, 동탑, 은탑, 금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 [[박근혜]]와의 인연 == 1979년 현금 5억 원을 포함하여 11억여 원을 들여 '명덕문화재단'을 창설하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이듬해인 1980년 7월, 전중윤 회장을 비롯한 재단 설립 관계자 전원이 사퇴하고 재단은 [[박근혜]]에게 넘어간다. 이 재단은 이후 '한국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동명의 재단과는 다르다.]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박근혜는 2012년까지 줄곧 이 재단의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25일 재단 이사회 결의로 해산되었고, 재단 자산 13억원은 [[육영재단]]에 넘어갔다. 한마디로 전중윤 회장이 11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자산 규모의 재단을 뜬금없이 연관도 없던 박근혜에게 넘긴건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11억은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55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덕분에 이 한국문화재단 관련 인물들은 32년간 정치인 박근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참고로 전중윤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 임기중 전씨 종친회 회장이었다. 광우병 사태 당시 네티즌들이 일본계 회사라고 착각하고 [[농심라면]]을 공격하고[* 참고로 [[신춘호]] 창립자는 형인 [[신격호]] [[롯데]] 회장과 사이가 틀어져 죽을 때까지 의절하고 지냈다. 농심도 롯데란 브랜드명을 쓰지 말라고 해서 농심이 된 것.] [[삼양라면]]을 추켜세운 것과 비교하면 꽤나 대비되는 일이다.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446|한국문화재단 관련 참고 기사]] == 여담 == [[검정고무신]]의 단역 등장인물인 라면 업체 사장의 모티브가 전중윤 회장으로 보인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업인]][[분류:김화군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2014년 사망]][[분류:정선 전씨]][[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출신]][[분류:경희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삼양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