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국의 성씨)] ||<-2>{{{#!wiki style="margin: -15px -10px" || {{{#!wiki style="margin: -0px -5px" }}}'''{{{#000 {{{+1 浙江 徐氏[br]절강 서씨}}}}}}''' ||}}} || || '''{{{#ece5b6 관향}}}''' ||[[중국]] [[저장성]]|| || '''{{{#ece5b6 시조}}}''' ||서해룡(徐海龍)|| || '''{{{#ece5b6 중시조}}}''' ||[[서학(명나라)|서학]](徐鶴)|| || '''{{{#ece5b6 집성촌}}}'''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문명2리(대명리)|| || '''{{{#ece5b6 인구}}}''' ||758명^^(2015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동남부 해안에 있는 [[저장성]](절강)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귀화 성씨이다. 시조는 중국 [[명나라]] 저장성(절강) 출신인 서해룡(徐海龍)이며, 중시조는 서해룡의 증손자인 [[서학(명나라)|서학]](徐鶴)이다. 서학은 [[명나라군]] 무관으로 유격파총(遊擊把摠)에 임명되어,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던 해 [[조선]]에 지원군으로 파병되어 [[왜군]]과의 전투에서 여러 전공을 세웠다. 서학은 1598년 정유재란 이후 명나라로 철군하지 않고 [[경상북도]] [[성주군]]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렸다. 이후 후손들이 한국에서 약 400년 간 절강서씨(浙江徐氏)의 혈맥을 이어오고 있다. == 집성촌 == 서학이 정유재란 후 명나라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정착한 곳으로, 후세까지 이어서 살아온 절강 서씨의 집성촌이다. 현재는 절강 서씨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서학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시문용]]의 후세들도 본래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절강 시씨(浙江施氏)들이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맏질마을,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꽃질마을로 옮겨가면서 현재는 절강 서씨들만 거주하고 있다. 마을 명칭은 ‘대명(大明)마을’로 서학과 시문용이 고국 명나라를 생각하며 지었다.[* 대국의 대(大)자, 명나라의 명(明)자] 같은 시기에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대구광역시]] [[중구(대구광역시)|중구]]에 정착하면서 지어진 [[대명동(대구)|대명동]]과 지명 유래가 같다. 이 마을 입구에는 1834년에 조선 사림들이 서학과 시문용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풍천재(風泉齋)’와 이듬해 1835년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마을 뒤편 군성산에는 서학과 시문용 두 장수가 고국인 명나라의 중흥을 기원하며 북망사배(北望四拜)를 올린 장소인 ‘대명단(大明壇)’(1636년)이 있으며, 절강 서씨 중시조묘인 서학장군묘(徐鶴將軍墓)가 있다. == 인물 == * [[서학(명나라)]](徐鶴): 절강 서씨 중시조. 명나라 무관(武官) 유격파총(遊擊把摠) 역임. * 서헐세(徐歇世): 서학의 장남. 조선 종8품 문관(文官) 승사랑(承仕郞) 역임. * 서종길(徐宗吉): 서학의 손자. 조선 정3품 문관(文官) 통정대부(通政大夫) 역임. * 서의필(徐義必): 서겸세(徐士世)의 장남. 효행으로 명성을 떨침. * 서가행(徐嘉行): 조선 종3품 무관(武官) 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 역임. * 서응명(徐應明): 조선 종9품 문관(文官) 참봉(參奉) 역임. * [[서반석]]: 성우. [[분류:절강 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