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초계 정씨]][[분류:북구(포항)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 성명 ||정기복(鄭基福) || || 본관 ||[[초계 정씨]] || || 생몰 ||[[1919년]] [[10월 2일]] ~ [[2007년]] [[12월 10일]] || || [[출생지]]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청하면 미남리[br](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청하면]] 미남리)[* [[초계 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정백용]]·[[정재선(1898)|정재선]]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지 ||[[경상북도]] [[포항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 생애 == 정기복은 1919년 10월 2일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에 유학 가서 [[니혼대학]] 예술학원에 재학했다. 그러던 1940년 10월, 일제의 민족차별에 분개한 그는 당시 [[도쿄]] [[주오대학]] 학생인 이진기(李振基)와 동지적 결합을 맺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그후 동지포섭에 힘을 쏟아 1941년 10월에는 [[메이지대학]] 학생인 심달윤(沈達潤)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다. 이들은 동지적 유대를 강화해가면서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한 토론을 갖고 조선민중의 지도자로서 수업을 쌓았다. 이때 그는 [[태평양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이를 독립의 기회로 삼을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처한 불리한 상황을 대중들에게 알리며 패전기 일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고, 그는 1943년 3월에 체포되어 국내로 이송된 뒤 모진 고문을 겪다가 1944년 2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이후 포항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7년 12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기복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