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dimg.donga.com/6825183.1.jpg]] 鄭奉守 [[1935년]] [[7월 15일]] ~ [[2001년]] [[7월 5일]] (향년 65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육상]]인. 별명은 '[[독사]]'. 본관은 [[동래 정씨|동래]](東萊)[* [[http://aks.ai/GC03201953| ]]]. 선수 시절보다는 코치로서 1990년대 한국 마라톤의 부흥기를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 금메달의 주인공 [[황영조]],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과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이봉주]]도 그가 육성한 이들이다. === 일생 === [[http://www.marathon.pe.kr/pds/jungbongsoo.html|1998년에 경향신문에 연재한 정봉수 감독의 일대기]] [[1935년]] [[7월 15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現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집안의 3형제 중 막내로 [[http://aks.ai/GC03201953|태어났다]]. 7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울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달리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고 이후 시온중학교 재학 중에 실력이 상승해 시온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도 대회에 경상북도 대표로 뽑혔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대구로 피난간 후 1953년에 군에 징집되면서 체육 특기병으로 선발됐다. 휴전 이후에는 보충대에서 육상을 다시 시작해 활약을 보였고 군 복무 와중에 춘천대학교 법학과 야간부를 졸업하기도 했다. 1963년에 육군 대표팀 코치로 선발 받아 육군 본부로 전출된 뒤 군에 뿌리박으며 1972년 육군 육상단 감독, 1978년 [[육군3사관학교]] 육상부 감독을 거쳐 1982년에 [[국군체육부대]]의 전신인 '육군체육지도대'가 창설되자 초대 육상단 감독이 됐다. 이후 1983년에 '88올림픽 꿈나무대표팀' 감독을 거쳐 1987년부터 [[코오롱그룹]]에서 마라톤단을 창단하자 초대 감독에 취임해 그가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배워 온 [[식이요법]], [[웨이트 트레이닝]], [[지형]]을 이용한 [[인터벌 트레이닝]] 요령을 적용시켜 [[황영조]], [[이봉주]], 권은주 등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키워냈다. 1996년부터 [[당뇨]] 합병증과 [[중풍]]으로 쓰러져 건강이 악화됐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선수 지도에 온 힘을 기울이다가 1999년에 코치 인선을 둘러싼 내분으로 인해 )[[이봉주]]와 [[권은주]] 등 선수 전원이 떠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지영준]][* 2003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서 1위와 1초 차로 2위에 오른 데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17위에 올랐다. 그 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임진수]], [[김옥빈]] 등의 젊은 유망주를 키우는 데 주력하며 불철주야 열심히 일했다. 2001년 7월 5일 밤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정봉수, version=38)] [[분류:1935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육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육상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육상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