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개성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58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파일:정사인.jpg|width=300px]] || || 성명 ||정사인(鄭士仁) || || 생몰 ||[[1882년]] [[12월 7일]] ~ [[1958년]] [[7월 26일]] || || [[출생지]] ||[[경기도]] [[개성특별시|개성군]] 송도면 고려동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정사인은 1882년 12월 7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고려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 음악교사로 있으면서 [[신영순]]·이상춘(李常春) 등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애국가(愛國歌) 등 애국적 창가들을 교육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애국가」, 「영웅의 모범」, 「구주동란」, 「대한혼」과 같은 창가와, 목사 이경중(李敬重)이 간도지방에서 가져온 창가와 한말의 애국창가들을 모아서 「창가집(唱歌集)」제1권 40부를 인쇄하여 한영서원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에게 보급하여 가르쳤고, 다음에 제2권 99부를 인쇄하여 주로 한영서원 학생과 교회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교육하여 보급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1915년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17년 9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죄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조용히 살다 1958년 7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정사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