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www.kbl.or.kr/225020.jpg]] || || '''이름''' || 정재헌(鄭載憲) || || '''생년월일''' || [[1973년]] [[11월 5일]] ([age(1973-11-05)]세) || ||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출신학교''' || 교동초 - 춘천중 - [[강원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강원대사대부고]] - [[명지대학교|명지대]] ||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센터(농구)|센터]] || || '''신체조건''' || 194cm || || '''프로입단''' || [[1995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대우증권 농구단]] 연고지명 || || '''소속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대우 제우스]] (1997-1999)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신세기/SK 빅스]] (2000-2003) [br] --[[서울 SK 나이츠]] (2003)--[* 2003-2004 시즌 전 [[오성식(농구)|오성식]]과 트레이드.] [br]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오토몬스/피버스]] (2003-2005) || [목차] == 소개 == 194cm의 단신이지만 몸빵과 주먹, 뜬금 [[3점 슛]]을 주무기로 초창기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대우]]의 골밑을 지키던 센터. 특히 당대 최고의 외국인 센터였던 [[제이슨 윌리포드]]의 몇 안 되는 천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 선수 시절 == === 대학 시절 === [[강원사대부고]] 시절 동기 [[김희선(농구)|김희선]]과 같이 팀의 중심이었지만, 팀 성적이 워낙 별로라 주목받지 못하고 대학 중위권인 [[명지대]]에 진학하여 진성호 감독의 스파르타식 지도를 받았다. 선배 [[박상관]]이 졸업한 뒤 주전센터로 등극한 정재헌은 93학번 후배 [[윤제한]](192cm), 94학번 [[박재일]](190cm)과 함께 [[명지대]]의 골밑을 지켰다. 이들 단신 빅맨들이 지키던 명지대의 골밑은 비록 높이는 낮았으나 활동량에 있어선 최고 수준이었고, 특히 정재헌은 조성훈, 최훈석 등의 3점슛 실패를 롱 리바운드로 잡아내는데 귀재였다. 조성훈-정재헌이 다니던 시절 [[명지대학교|명지대]]는 [[연세대학교|연세]]-[[고려대학교|고려]]-[[중앙대학교|중앙]]의 3강구도를 위협하는 팀이 되었고, 4학년때이던 [[1995-96 농구대잔치]]에선 삼성전자 등 실업팀들을 제치고 8강까지 진출했다. === 실업-프로 시절 === 신생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대우증권]]의 창단멤버로 입단, [[1996-97 농구대잔치]]까지 팀의 주전센터로 뛰었고, KBL 원년시즌에도 외인 네이트 터브스(196cm)과 함께 팀의 골밑을 사수하며 KBL 원년시즌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7-98 시즌엔 골밑 파트너가 백인센터 알렉스 스텀(202cm)으로 바뀌었지만 정재헌의 활약은 더 좋아졌고, 동시에 원래 거칠었던 디펜스는 더욱 거칠고 지저분해졌다. 그 유명한 [[제이슨 윌리포드]]와의 충돌이 바로 이 시즌의 일로, 경기 중 충돌과 몸싸움까지야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쳐도, 윌리포드 얼굴에 침을 뱉은 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는 비신사적인 행동이었다. 난장판 경기가 끝나고 승리팀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게 된 정재헌은 "용병들이 다신 국내선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 겁니다"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농구팬들의 분노와 실망은 엄청났다. 당시 스포츠신문 대부분이 [[제이슨 윌리포드|윌리포드]]가 더 잘못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댄 반면, PC통신 게시판들은 정재헌의 더러운 플레이와 심판의 무능력을 비난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 사태의 원흉 정재헌은 비매너 플레이에 대한 징계로 달랑 50만 원의 벌금에 1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1998-99 시즌엔 장신 포워드 외인 카를로스 윌리엄스(198cm)를 파트너로 맞아 루키 센터 [[이은호]]와 번갈아가며 평균 20분 가량 출전했고, 장신 외국인선수가 외곽을, 단신 토종선수가 골밑을 맡는 다소 특이한 조합으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대우]]는 98-99 시즌 정규리그 3위에 오른다. 하지만 플옵 6강전에서 6위팀 수원삼성의 센터 [[버넬 싱글턴]]에게 골밑을 완전히 털리며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공익근무요원 복무로 한 시즌을 빠진 후 00-01 시즌에 복귀하지만, 그새 성장한 팀 후배 이은호에게 밀려 후보신세가 되고, 01-02 시즌 이후엔 그 이은호마저도 새로 영입된 [[조니 맥도웰]]에게 밀리며 걍 다같이 벤치워머가 된다. 이 시점부터 대부분의 구단들이 [[파워 포워드|4]], [[센터(농구)|5번]] 자리 모두를 외국인선수로 기용하는 상황이 되면서, 토종 빅맨, 특히 정재헌 같은 단신에 평범한 운동능력의 빅맨들은 4번 포지션의 테크니션 외인들(ex> [[마르커스 힉스]], 리온 트리밍햄 등)을 막지못하면서 아예 자리를 잃었다. 02-03 시즌 종료 후 FA가 된 정재헌은 연봉 7천만 원에 [[서울 SK 나이츠]]와 계약하고, 03-04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오성식(농구)|오성식]]과 1:1 트레이드되어 다시 이적하게 된다. 울산 모비스에서도 외인들은 물론 회춘한 노장 [[이창수]]조차 밀리며 출전시간이 아예 실종됐고, 04-05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플레이 스타일 === "돌쇠"라는 별명답게 플레이가 무척 투박했다. 주전급으로 뛰던 프로 첫 3년간 평균 파울이 3.6 → 3.7 → 3.5개일 정도로 거친 수비를 자랑했고, 공익 소집해제 후 복귀시즌엔 평균 12분 출장하는데 평균 파울은 3.3개였다.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73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2005년 은퇴]][[분류:파워 포워드]][[분류:센터(농구)]][[분류: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은퇴, 이적]][[분류:서울 SK 나이츠/은퇴, 이적]][[분류: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은퇴, 이적]][[분류:강원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출신]][[분류:명지대학교 출신]]